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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321 이강이 최정익・안창호에게 보낸 편지

    오월 삼십일 出付한 海兄(최정익) 書와 오월 일일 出付한 島兄(안창호) 信을 접하야 渴望을 大慰이오며 來敎에 포와{{포와: 하와이(Hawaii)의 음역.}} 분쟁사는 何에 상인됨을 願聞이오니 或有指明이실넌노. 일전에 秋汀(이갑)의 명의로 致電한 것은 想必入燭이실 듯하오며 추정(이갑)이 退還한 후에 伯林에 二週間을 逗留하며 유명한 박사의 진찰을 경과하얏는데 의사의 설명이 신경에 傷치 않은 곳이 無하며 겸하야 폐부가 상하야 難致뿐더러 不治라 하며 진찰이며 치료가 亦 무용에 속함이니 山水 청결한 처소에 숙식이나 가급적 善美케 하라 함으로 金重世 씨가 환국을 권고하얏스며 崔廣・徐超 씨가 還國에 동정을 표함으로 환국하기 위하야 鄙處에 來留하며 각처 동지의 의견을 問한 후에 결행코져 하는데 환국의 이유 사실상 불가능의 조건이 有하니 一日 경비 문제, 二日 一人의 服事 문제, 三 기후의 불리이외다.德醫의 소견과 如하면 別 日만 고대할 뿐인데 外洋에 在하야 범사에 장애 又는 요점이 頓無하외다. 환국하는 방법은 汀(이갑)의 姪兒 중 一人을 招來하야 동행코져 하나이다. 兩兄도 추정 통신에 대하야 상당한 의견을 回示하옵소셔.至若(신한)民報主筆하야는 있는 謙谷 朴(은식) 선생이 奉天 등에 出脚하얏스니 氏를 渡美케 하시든, 氏 亦 不如意 관계가 有하면 최광 씨가 極可할 터이나 氏의 主義는 如何하온지, 不問不聞한 바이니 형언키 難하외다. 申采浩 씨는 십상팔구나 도미를 不悅하는 듯하외다. 以此下諒하옵소셔.敎中 위임장을 刷印중이라 하오니 從速輓送하시며 又는 中總 公函까지 粘連하시되 此人을 미주에서 특별 總代로 정하야 각 금광을 순행케 하오니 凡事 상의하야 조국의 독립을 도모하라 하옵소셔. 此가 來하는 대로 近邊 금광을 순행코져 하나이다.弟도 此役을 任한 후로 前症이 漸重하야 십분만 作之 書之 賭之하면 全身 熱沖하며 정신이 혼미하야지며 又는 時時로 수족이 桑麻하야 짐으로 自恐컨데 李領의 後轍을 續할가 하나이다. 故로 何如間 不久에 此役을 謀免할더이다.수십일 전에 鄙內者가 入來하야 私分上 곤란이 接踵以至할 터 임으로 午夜 염려되나이다.4245 6/29 일 弟 鰲山(이강) 배상. 再. J. Lee Kang 차 錢換 혹 물품 來往에는 V.자를 除하옵소셔. 此字는 영문으로 Mr.라 하는 자와 동일한데 V.자를 用하면 名字로 疑定 힐난이 有할 터이다. 此字의 本字는 J. .如하고 V자는 아니오니 除之하옵소셔. 經海(최정익)・島山(안창호) 兩兄 閣下.

    322 안연식이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

    국조 4245년 4월 23일(음)安(창호) 先生님 閣下伏詢此時에 先生님 旅體候 一向 康寧하시오며 閤內與致務 다 泰平如意하신지 伏慕不任下誠이외다.宗下{{宗下는 일가 친척인 경우에 쓰는 말로 自身을 말한다. 戚下라고도 한다.}} 生은 去春 二月에 茂林을 떠나 哈爾濱을 留할 處로 定하고 當到하엿삽더이 生이 不肖하와 該處 同胞로 未香에 事가 有하쓸거 去 陰 本月 十五日에 哈爾濱을 떠나 俄領 치타에 到留하옵는대 數日後에 此處에서 限三四百里外 金鑛으로 가오니 今番가 오면 來秋로나 或 明秋로는 大處로 나올쳐이외다.餘祝 旅體候 一向 萬康 不備國祖 四千二百四十五年 陰 四月 二十三日 宗下 生 衍植 告白或 通信하실 일이 잇사오면 此處 정교보社로 부쳐 주심을 伏望이외다.

    323 조성환(曺成煥)이 안창호(安昌浩)에게 보낸 서신(北京 ; 1912.6.16)

    제9호(第九號)복유비배(伏惟比排)에 형체만중(兄體萬重)하시고 각지형제(各地兄弟)가 구득안과(俱得安過)하시는지 알고자 하오며 범백(凡百) 공익사업(公益事業)이 날로 진행발달(進行發達)하였는지 『신한보(新韓報)』는 구등기래(久等寄來)하오니 혹정간(或停刊)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작일(昨日)에 이강(李剛) 형(兄)의 통신(通信)을 접(接)하오니 秋汀(추정 이갑) 형(兄)은 병(病)있음으로 인(因)하여 상륙(上陸)하지 못하고 덕경(德京, 베를린)으로 재회(再回)하였사오며 기주간(幾週間) 치료(治療)하다가 다시 아경(俄京, 모스크바)으로 다시 가신다 하오니 호탄호탄(浩歎浩歎)이오며 불건(不健)한 몸으로 수륙구치(水陸驅馳)의 노력(勞力)만 더욱 얻으니 병증(病症)이 더함이 없는지 항상(恒常)궁금합니다. 신형호(申衡浩) 군(君)은 무사상륙(無事上陸)하였을듯하나 지금(至今)까지 소식(消息)없어 못하오니 궁금하나이다. 중국현상(中國現狀)은 별변동(別變動)없사옵고 차관문제(借款問題)가 지금(至今)까지 해결(解決)하지 못하고 점관(墊款)이라 명칭(名稱)한 소차관(小借款) 육백만원(六百萬元)은 성의(成儀)되여 임의 교대(交代)하였으나 이것은 작수차●(酌水車●)이요 대차관(大借款) 육만만원(六萬萬元)은 하시(何時)에도 성의(成儀)될지 모르면 감독재정문제(監督財政問題)로 수차(數次) 상량(商量)하여 자본단(資本團)에 제출(提出)한 칠조(七條)를 약략개정(略略改正)한 것은 전단(全團)이 반대(反對)하고 단민연(團民捐)이 제창(提唱)되어 각성(各省)에서 열심(熱心)히 수연(收捐)하오되 이외 육칠만원(六七十萬)에 연(連)한 성(省)이 다(多)하며 남경(南京, 난징)에서 육십단체(六十團體)가 회동(會同)하여 단민연총회(團民捐總會)를 조직(組織)하고 손문(孫中山, 쑨원)으로 이사장(理事長)을 선거(選擧)하였고 북경(北京, 베이징)서도 철혈지사(鐵血志士)가 단민연회(團民捐會)를 조직(組織)하여 포륜현상(庯倫現狀)의 일발천균(一髮千鈞)의 위급(危急)하여 곡쇄혈루(哭灑血淚)하는 자(者) 다(多)하나 명완(冥頑)한 북인수정특성(北人守錢特性)으로 응자무다(應者無多)하니 기불개탄처호(豈不慨歎處乎)아 제일차개회시(第一次開會時) 오족(吾族) 윤영준(尹永俊) 씨(氏)가 일백원(一百元)을 연조(捐助)하여 대환영(大歡迎)을 득(得)하였고 교회(敎會)에서 사교회(四敎會)가 합동(合同) [미이교회(美以美會), 장로회(長老會), 공리회(公理會), 윤돈교倫敦敎)]하여 미이미예배당(美以美禮拜堂)에서 개회(開會) 할 때에 오학생(吾學生) 백영수(白永燽) 군(君)이 연사(演士)의 연설(演說)이 필(畢)한 후(後)에 [연사(演士) 사법총장(司法總長) 왕총혜(王寵惠), 해군부관(海軍副官) 왕통(王統), 상공차장(商工次長) 왕정정(王正廷), 진포철로총판(津浦鐵路總辦) 왕경춘(王璟春)] 기립(起立)하여 중화현상(中華現狀)의 위급(危急)과 국민연(國民捐)이 구망(救亡)에 제일책(第一策)됨과 아한(我韓)의 멸망(滅亡)이 재정부제(財政不濟)에 많이 있음과 자기(自己)는 망파여생(亡破餘生)으로 학자(學資)가 부담(不贍)하여 다수(多數)한 금액(金額)을 연조(捐助)하지 못함을 대강설명(大綱說明)하고 오십원(五十元)을 연조(捐助)하였더니 만장(滿場)이 용동(聳動)이요 연사(演士)와 내빈(來賓)이 특별(特別)히 백군(白君)과 접흡(接洽)하고 성사(成謝)한 말로 치사(致謝)를 많이 하더니이다. 우리가 중화혁명(中華革命)에 대(對)하여 빈말을 더러하여 동정(同情)을 표(表)하였지만 실지(實地)로는 정신(精神)을 발표(發表)하지 못하였으니 단민연(團民捐)에 대(對)하여 다소간(多少間) 동정(同情)을 표(表)한 것은 불가불(不可不)의 일이되 재미오족(在美吾族)의 전체(全體)로하면 더욱 효력(效力)이 대(大)하겠으나 이것을 얻지못하면 제개인(弟個人)이라도 벽관(壁觀)할 수는 없으되 낭공여세(囊空如洗)하노니 지각심언여훼(只覺心焉如燬)오이다 득채(得債)라도하여 한이백원(限二百元)하고자 하나 만일 이것도 못되면 단백원(單百元)이라도 연조(捐助)하고자 하나이다. 향자(向者) 신한민보(新韓民報)에서도 보고 말씀도들었거니와 중화혁명(中華革命)에 대(對)하여 권연(權捐)하던 일은 어찌 되었는 지는 이것을 지금 주었으면 매우좋을 듯하오이다. 향자(向者) 손목사(孫牧師) 명하(名下)로 보내신 것을 단민연(團民捐)에 보내고자 은행(銀行)에 탐문(探問)하온즉 이것은 향자(向者) 전환(電換)하였던 것이니 또 할수없다 하더이다. 환표(換票)는 부치나이다.島山(도산 안창호) 형(兄)과 같이 보소서.속후차각상(續後此閣上)6월 16일여제재배(爈弟再拜)박은식(朴殷植) 씨(氏)가 북경(北京, 베이징)에 오셨는데 얼마간 계실 듯하오이다.

    324 姜明化가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샌프란시스코 ; 1912.7.9)

    일간 형체 어떠하오니까. 이곳은 다 태평하외다. 그곳에 의무금 내지 아니한 동포에게와 또 기념장 몇개 팔지 못한 것을 알아보아 팔아 수송하옵소서. 中央總會(대한인국민회) 代表員을 速히 薦하여 代議員에게 돌며야할대 金鴻勻(김홍균)氏에게는 已爲許諾을 받았으나 또 한 사람을 더 허락받아야 써서 돌릴터이기로 이곳있는 유성숙 씨와 전학봉 씨 보고 하라고 한즉 다 사양하니, 이곳은 다시 천할사람도 없소이다. 그곳 있는 이병억 씨 보고 한마디 말씀하여 보아 허락 있으면 곧 기별하시옵소서. 貴義務金領証玆以乃呈● 宋兄은 몇번 권면하였으나 그 청원서를 아직 가져가지 아니하였소이다.

    325 백원보가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

    유월 이십 사일 發付하신 丈函은 칠월 이십 일일에 拜承 仰慰이오며 伏審 後來 愼患은 平復하엿사오닛가? 공무 惱勞 중에 康健하시기를 遠祝이오이다. 弟는 여전이온데 兩年間 一分 生利의 道가 全無로 經留하엿슴으로 별별 수치와 곤란을 당하고 欲去未去는 別債에 罹함이오이다.己身事는 노노할 바 無하옵거니와 권업회 내용도 百枚에 一을 不決하야 회명만 一二人에게 姑有한 양이온데 신문 亦 장수를 難期이옵고 도시 형언치 못할 경우이오나 장차 하등 好機가 卒來할는지는 未知이오이다. 申(채호) 박사는 無味로 경과함이 여전이오나 氏의 所欲은 모인의 기과에든지 不入하고 獨行 自恣할 취지이옴에 항상 (북)미・포(와)를 위하야 상론할 시에 忌慮不無이오이다.然이나 차지에셔 씨가 離發할 勢에는 吾제의 指引을 從할 듯하오며 兩 張 씨의 사실로 言하오면 일도 못하고 優遊하는 月松(이종호)의 黨에서 携包코자 하야 별별 怪事가 다하온데 氏 등은 사업이 여하할 지위를 察하고 又 포부를 快暢할 만한 處로 向코져 하는 중 포와(하와이)에셔 수차 제와 신(채호) 박사에게 文士 청빙의 문자가 有함으로 該處로 略通이 已有하엿소이다.然하오나 氏 등 삼인이 모두 차지에 人數가 多하고 장래에도 能事할 地點으로 인정하야 向日 포와(하와이)에셔 초등 교과 부탁하든 것을 依하야 서적 발간의 예산까지 記送하엿사오며 (장)도빈 씨는 미주로 향할 意가 포와(하와이)보다 多하옵간데 겸하야 報筆의 관계가 不無이옵기 向者 포와(하와이)로 委送하는 書를 최정익 씨에게로 경유케 하엿소이다.然이나 포와(하와이)에셔는 문사도 已히 請하고 서적 편집 혹 간행까지 부탁하엿슴으로 속히 결정되기를 要하야 위서함이온데 만일 포와(하와이)에셔든지 미주에셔든지 여비를 速付치 못할 경우에는 悶沓 莫甚이올 뿐만 아니라 차지에셔 경과할 수가 全無하오니 사세를 諒下하시옵고 兩 장(도빈) 씨를 타처로 不歸하시코져 하시면 路費보다 留할 여비를 先히 부송하시옵소셔.일개월에 略略히 써도 미화 십원은 경비가 되오니 挽留하는 弟로 곤란 중 우 곤란을 면케 조처하옵소셔. (정)재관 형은 日間 치타로 향하엿소이다.桂太郞이 哈埠를 往할 시에 該地 예배당에 회집한 한인 累 십명을 提囚하는데 최 목사의 父子도 入하엿다 하드니 여하케 되엿사온지 確報를 姑未聞이오이다. 餘는 在續後 不備 上. 白弟 (백)元甫 배상.建元 4245년 7월 22일.장기영 씨는 차지에 來留한지 현금 一朔餘요, 장도빈 씨는 월송(이종호)의 만류로 初에는 留하엿사나 월송(이종호)의 囊탁이 공허함으로 數三朔餘의 식비도 未報한 현상이오니 事勢를 遠慮하시옵소셔.兩 張(도빈) 氏가 차지를 離發코져 하는지 수십여 일이온데 제가 姑만류이오며 (장)기영 씨는 수청에서 반년 苦經함과 此에 來함이 皆是 弟의 청함이오이다. 申(채호)・張(도빈) 양형에게 付書도 未到하엿사옵거니와 張道斌 씨가 上函한 것도 未覽하엿사오닛가?{편지 봉투} 島山丈 旅軒 安昌浩 氏

    326 玉○敬(C.K.Oak)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샌프란시스코 ; 1912.8.1)

    惠函을 伏讀하온지는 오랬사오나 遠洋을 건너 갑자기 文明 아래 눌리움으로 此事彼事에 마음이 씨우워上答할 여가가 없었나이다. 欣慕之 餘에 惠書를 받사오니 拜面이나 不異이오나 친이 뵈옵고져 함 마지 않노이다. 方今은 新韓民報社에서 事務를 보며 夜學이나 할까 하노이다. 前途에 對하야 캄캄하오니 좋도록 引導하옴을 伏望이옵고 餘不備白 伏祝旅候 萬安

    327 이강이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

    月前에 上書한 것은 入燭되셧는지 回音을 奉치 못하야 궁금하옵내다. 李領은 尙今까지 此處에서 逗留하옵는 바 거취를 未定이오며 병세는 來時와 同然한 모양이외다. 新韓(민)報의 改刊은 雀躍之喜를 不勝하옵내다.Keri 哥의 歐洲行을 因하야 坐視키 不忍하야 各處에서 떠들다가 공연히 被捉만 당하는 中, 此處에서 弟與學生幾人이 一週夜半을 捉囚되엿소이다. {其後 鄭 兄이 人을 帶同以來하야 멀리 송별하얏스나 셩불셩(成不成)을 難辦이외다}{{원문을 보면 { } 부분은 두 줄을 그어 지워 버렸음.}}故로 정(재관) 형은 姑留此處이나 불원간 東歸코져 하나이다. 此處 월보(대한인정교보)는 勢窮力盡하야 俄國 교회에서 보조하기 전에는 장구치 못할 뿐외라. 弟는 前症이 日甚하야 일차 西醫의 진단을 受하얏는데 의사의 所言이 사무를 停止하고 혈기를 補하지 아니하면 不久에 危境에 臨할가 恐한다 함으로 가급적으로 弟도 사무를 정지할 의향이 不無하나 然이나 月前에 鄙內者가 자기의 패물 等屬을 放賣하야 차비를 쟉만하여 가지고 入來하얏는데 以此束縛으로 사무정지의 事도 단행키 極難하외다.海港 勸業會 事는 月松(이종호) 兄의 昔約으로 十常八九 烏有에 烏有에 歸할 터이라 하며 業報도 不久할이라 하니 내외 국인에게 失信이 當何如乎잇가? 만히 쓰여야 상쾌한 것이 업겟기로 굿치나이다.4245년 8월 1일 愛弟 Lee ckang(이강) 배상.伏頌大安이오며 弟亦依舊하외다. 李領도 진퇴가 別無하외다. 弟 搬移한 新番地를 記呈하나이다. 四二四五 시월 삼일 제 剛 배상.

    328 崔正益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샌프란시스코 ; 1912.8.2)

    敎事謹悉而 徐載弼氏에게 贊同하는 意答書케 하나이다. ●費는 大略 每朔 六七十元이면 綽●하오니 計開컨대 一 英字(니너타입)每番에 五元 一朔 二十元 우리 신문 한 페지치고 말이오. 已往에 半페지씩 할테니 二元內外가 들었오. 二 英字記者 月給 四十元三 其他 圖函寫眞 每朔 十元以內 此則豫算뿐 以上과 ●한제 英字記者는 李文益으로 雇磚하여 徐氏의 製送하고 論說以外에 內地 通信 翻譯과 其他英文에 關한 書記와 會務까지도 兼察할 수 있사오니 李源益을 請來하여 英字報가 되겠나이다. 此는 弟의 愚見뿐이오니 羅省에 到하시니 李源益氏의 편지를 同封하오니 보시고 休緘에 寘하고 다시 보시지 마시고. 李氏의 起草하여 보신 英文들은 그대로 西人의 校正을 지내야 發送于뉴욕케 할 듯 하였나이다. 이런 일을 보려니 李氏를 請來하는 것이 大必要하오다. 旅費만 有하면 잡아올 듯한데 있어야지오. 답답하오다.여보 論說材料 많이 豫備하여 보내시올 때 취재타가 [멀리서 꿈꾸다가 빠우는 당치 마시오. 하여 달라는 것도 너무 많아서 미안하오다.李源益의 寫字機는 面常已賈入一坐하여야 되겠는대 朱元氏가 捉助를 發起하자 하기로 막었소이다.●亦是 提議하여 보시면 어떠할런지요. 弟의 辭任은 否決되었다 하나 不得已 再次하기로 豫定이오며 此英字 執事로 曾往 鄭七來氏의 議條가 有하니 黃兄이 渡去하면 布哇의 同情도 得來할 듯하외다.

    329 李甲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러시아 페테르스부르그 ; 1911.8.18)

    伯林(베를린)서 하신 편지 보옵고, 今日에는 倫敦(런던) 가셨다는 편지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없다고 崔 牧師로 相談하는 中, 吾兄 下書가 왔사옵니다. 亡手披讀하는 중 旅館은 確定치 못하였다 하였사오니 몇 날이나 계시겠는지, 至今 越洋할 路費 不足할 듯하온 즉, 牛約 가는 般便을 보와서 편지로 通寄하실 만하오면 편지로 하시옵고, 牛約 갈 배가 時急히 있사오면 弟에게 電報라도 하시와 路需 不足이 얼마나 되옵던지 此處서 區送하게 爲計하오니, 輪般(런던)가는 일자를 보와서 편지로 하시던지 電報로 하시든지 兩 度間 無礙케 하시옵소서. 許旣之事는 崔 牧師가 歸去하여 제 父親과 相論하고 다시 書信으로 相通하여 美洲로 가게 하던지 至今 兄은 도치 후 去할 수 없사온즉 許旣로난 遲滯할 것이 없을 듯하옵나이다. 此弟 所祟는 入院할 때 比하면 少有差減인 듯하나 病院費가 太多하여 數日 前 退院하여 調攝하나 病院에 있는 것만치 하오리까? 過히 念慮는 마시옵소서. 崔 牧師는 弟와 같이 留하옵는데 數日 後 歸去할 貌樣이올시다. 餘惟希 兄體大安耳

    330 金聲權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롬폭 ; 1912.10)

    二十五日 賜函은 伏悉이오며, 行李는 姑居到部하오니 甚慮이올시다. 其間에 某邊에 直到하였삽는지 願聞입니다. 有事無事●隨時賜誨하심을 希望하옴에 餘祝座庇中寶眷●綏不備不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