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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301 박영갑이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

    4244-11-06(음)追告師範의 내용을 言하오면 교과 책자도 준비치 못하엿삽고 등사판 一座를 구입할여 自印 비용코져 하옵는 바 紙墨債가 극난하여 차지방 피지방과 차인 피인에게 구걸하여다가 수응코져 하는 담락하온 정(재관) 형은 실로 形勝하올 수 無하오이다.소위 發起員 主務員은 형의 통실하시는 바에 虛譽的 인물뿐이옵고 여간 재정은 개인 개인의 기허 찬성을 득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유지키 난하오이다.若금일 차사에 실행이 無하여 失信이 되오면 후일 경영은 절망되는 금일이오 과연 하등 성력으로던지 육개월 一期만 지내시면 민심의 신앙을 多得할 금일이온지라, 然이나 愛我志友는 거개 적수공권이온즉 更問何策이 有하릿가?지금 김성무 씨를 中立하고 대용금도 不報하얏사오니 오제간인들 여차히 無信하고야 후일을 何信이며 차 敎師의 冬具도 완비에 불급하여 時日 우울 중 세상이 어떤 것인지 정신을 難定하오니 통곡하여 哀呼한들 誰가 들은 체나 할 리가 유하오릿가?吾 형제간인 고로 如是한 정세를 양고하옵나이다. 미진한 사정을 추후 연달하올지니 辛酸타 마옵소서. 미주 서신 일도를 양전하옴은 왜인의 검열을 被치 말코져 함이오니 到卽 발부하소서.수청에 농업 기관을 설립함이 필요한 사의를 擧하여 피득보(페테르스부르그)와 미주 양처도 제급하엿사오니 차사가 若不成立이오면 수청에 留在한 제등 幾人은 하등 방침을 갱정하여야 먹고 입고 지내올 모양이오이다. 음 칠월에 경영한 바를 금일에야 제출하옴은 惟其師範의 다망한 故이더이다.4244 음 11 초 6일 朴永甲.

    302 이갑이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

    건기 4245 2월 3일도산(안창호) 형 전(창 제6호)本年 일월 팔일에 부치신 편지는 去月 삼십 일일에 받았었고 거년 십이월 이십 사일에 부치신 편지는 본월 일일에 받았삽나이다. 일월 이십 구일에 修上한 창 제5호서는 차서 도달 전에 하람하시겠습니다.오호서에 말씀한 것과 같이 아화 백원이 우체로 오고 거기 대한 편지는 없음으로 궁금히 생각하였으나 현하 형편이 渴者의 逢水요 虎前投食이라. 물론 편지 보았더라도 先用하겠지만은 편지 보기 전에는 이곳에 오는 물건 줄 알고 염려 없이 이것저것 한푼두푼 깨져

    303 이강이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

    美洲에 抵駕하신 후 第一次 惠書를 奉하야 回上한 書는 入燭되셧는지 願聞이오며, 伊來 旅體候 萬安하시며 閤內 諸節도 均吉하옵신지 幷爲願聞이오며 제는 劣狀이 의구오며 所看 月報는 近果用石板 출간인데 검열국의 검열을 당한 後이야 발행한다 하오매 아마 一朔은 지체한 후에야 발매할 터이외다.정 형(정재관)은 여전히 차처 학교에서 교수하는 중이외다. 至若 금년하야는 遠東 동지의 곤란이 尤甚하야 백원보 씨는 冬服을 不蔽한 中 食價가 如山하야 構築이 막심한 중 상심도 隨以不少하오며 金成武 형은 상금까지 해상셔 逗留하며 미주 통신만 고대하는데 지금까지 조백이 頓無함으로 火從傷動하야 일전 該兄의 信을 據한즉 심사는 상할 대로 상하얏스니 제는 염려되는 것은 該兄 성미가 이상함이외다.弟與鄭兄之事勢로 말하면 제는 지금까지 가사의 冬計는 일분도 無하엿스며 정 형은 양식은 족하나 농군 工錢을 未辦함으로 창피한 지경을 불면할 모양이외다. 박(兄)영순 씨의 俄貨 이백원 惠付 條는 李領이 병중에 在하야 徐(초)・崔(광) 양씨를 請去함으로 半數는 나용하고 반수는 推尋하야 차처에 來抵한 여비를 報給하엿나이다.黃思溶 씨의 信을 거한즉 檀君社 條를 武兄에게 出付하게 한다 하엿스며 원동 동지를 위하야 幾백원 지출한다 하엿스니 속히 실시하도록 하옵소셔. 행이라도 왼경 느즌경으로 想覺지 마시옵고 속히 실시되도록 하옵소셔. 과다의 月數를 遲緩하면 실시가 되더라도 낭패가 불소하야 실효가 別無 할 듯하외다. 深諒速周하옵소셔.現 李領(이갑)의 주선하는 바 피득보(페테르스부르그) 학원일 款은 예산이 太多하야 실시 못될 뿐외라. 실시되더라도 半途以廢가 束至할 터이니 右件에 대하야 小心的 주의로 시작하기를 권고하옵소셔. 弟도 권고하엿소이다.현금 此處에 지방 총회를 조직하야 俄領에(水淸 이외) 在散한 十個 지방회를 관리코져 하야 각 지방으로 發文하엿소이다. 以此下諒하옵소셔.4244년 12월 20일. 제 (이)剛 배상.도산 각하. 金晩植 씨도 수일 전 抵此하엿소이다.

    304 崔正益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샌프란시스코 ; 1912.3.9)

    兄●不以勞攘有捉耶 弟此日復如是已耳 遠東條似於來週月曜日 可以付送矣 休慮如何甲兄處는 以付據若干 如計 兄不必着手於戊貯案可能故先此告知耳實業會社定則 三百卷 今朝付送於●歸矣 諾二枚 合費十五元及 付費一元十戔 初合十六元十戔 便卽計送如何布哇形便 稍稍沈靜樸奉耳 如此便上

    305 申德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뉴욕 ; 연도미상 3.14)

    一次拜握은 없사옵고 多年慕仰하였습니다. 伏詢此勝 體度間旺 吾兄弟事業漸進發展丕仰慕且祝之至一弟 上海에서 申檉兄으로 一年間 同留하다가 昨冬에 渡米次로 西佰里海蔘으로 作行되어 秋●兄을 拜見하니 病勢過動仰謹之 어●디도 치도, 일꾸스까 諸●에도 一次 訪問하온 則 諸兄弟 熱心做去하여 將次發展될 것을 心으로 自信하오니 莫非吾兄任의 惱神之終이 多하여도 弟는 日前에 此地에 到着하였음으로 新到之餘故形便을 未知하옵고 어도에서 아직 工夫하옵기로 料量하옵고 若形便이 좋지 못하오면 西部로 向하겠삽나이다.餘非人●●不備上

    306 백원보가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

    건국 4245년 3월 9일일월 이십 오일 發 下書를 拜承 仰慰이오며 伏審 이래 귀체 更爲萬寧 하시오며 공무는 日益進擴되옵나잇가? 遠仰 頌祝이오며 弟는 객상이 依前而已옵니다.당지 時事는 去 십 이월부터 俄官에서 이상설・이종호 양씨에게 중대한 擔負로 任한 故로 양씨가 韓人 전체의 대표되는 儀貌를 盡코져 하는 동시에 만일 결렬한 점을 外人에게 顯著하면 其 신분이 如何할까 하는 慮가 深興하야 先次에 鄭在寬 형에게 이상설 씨가 謝過하는 至誠으로 委書하며 同心協力키를 懇求하며 又況 路費를 電付함으로 鄭형이 즉 還到하야 친절한 동정을 표하며 一邊으로 兪(진률)・金・崔・車 씨 등의 반대를 반성키로 권고가 十分되엿사오나 항상 능력과 公心이 少한 민족이 재정상 문제로는 여하히 해결키難하야 상금까지 사회 질서를 정돈하야 규칙적으로 진행 실천함은 一件도 無하웨다.李相卨 씨나 鄭(재관) 兄 간에 하등 相論은 유하나 月松(이종호)에게 대하야 자기 등의 指意를 盡提치 못함은 初合하는 시기에 面薄한 故이웨다. 然함으로 정(재관) 형이 幾件 문제를 제출하되 시행이 잘되지도 안코 질서를 정돈키 猝難한 경우에 況是 정(재관) 형이 此地에 체류하는 여비를 장차 堪當 無路한 형세이옴에 팔・구일 전에 정(재관) 형은 還家하엿소이다.권업회 事勢는 장차 희망이 多하오나 良能 幾人이 其事를 任치 못하면 無人의 欽을 不禁일까 하노이다. 금번 정 형만 아니 와스면 위선 당지 인심을 여하 수습하며 장차 外邨에 何以波及하리오? 여하간 혈족간에 忿寃이 極하든 惡氣가 稍滅한즉 萬行이오며 신문은 인허를 如何不給하는지 不知期日이온즉 悶愁이외다.弟는 時年 유월부터 무직업 空遊하면서 여비를 不少히 負하엿사온데 장차 何境을 又 당할런지 심려가 되온데 음 이월(양 사월)간으로 某處 某事에든지 종사코져 행하겟사오며 당지 통신은 可合한 其人이 初無한즉 윤능효・황공도 양씨로 가급적 통하기를 부탁하고 離發하겟소이다.신한민보는 발송하는 본처에서 당초에 不發하나익가? 海港으론 (俄京으로 경과한 후) 김성무 씨 名에 一枚가 到하고 更無하오며 목허우 崔充耶, 주소 不知處 金元植 등 名으로서 보내는 것이 본항 郵函 一三七로 來하오니 민보사에 교섭하시와 英文이든지 俄文이든지 써서 보내는 곳에 國漢文 간으로 분명이 同書하야 俄京 支社人이 無誤케 지도하시면 紛錯이 無할까 하노이다.金成武 씨는 음 십 일월 晦間(양 십 이월 晦)에 밀산으로 還去하야 아즉 여하케 循環한다 하오나 支那人의 債負를 속히 還報치 못하면 하등 낭패를 당할 뿐만 아니라 오제의 기초하는 營謀가 虛地에 歸치 안케소잇가? 김성무 씨에게 관한 文籍은 밀산으로 직접 送處케 하시옵소셔.당지 제씨는 皆個 安過하옵나이다. 餘는 보체 공무에 安享키를 앙축.不備 上. 弟 백원보 拜謝.4245년 3월 9일.

    307 이갑이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

    건기 4245년 1월 25일도산(안창호) 형 惠鑑(昌 제오호)사호까지 修上한 弟函은 次第 하람하셧는지 기간에 포와(하와이)行을 作하신 줄 알고 잠간 동안 體候를 궐하였더니 向者에 英道의 書를 보고 또 이번의 민보를 인하여 지금껏 포와(하와이)로 啓駕치 아니하신 줄 알고 비로서 數字를 修上하나이다.그런데 어찌하여 그 동안 직접 통신이 도무지 업사나잇가? 영도의 편지를 보온즉 美洲 일의 내용이 말 못되는 경우에 잇는지라 그럼으로 편지하여도 답답한 말씀뿐인 고로 아니 하시는 듯하오나 그럴지라도 이곳에서 보낸 서류(소년학원 취지서)에 대하여는 좌우간 회답하셔야 할 것 아니오닛가?이곳에서는 미주의 내용이 그러함을 알지 못할 때에 그와 같이 經營한 바이나 이미 그곳 형편이 그러한 이상은 정지하는 것이 또한 면치 못할 事機인즉 조금이라도 이곳 일을 위하여는 停心하지 마시고 그 서류는 第觀其宜하옵소서.듣기 좋지 않은 말씀이지만은 이곳 형편을 대강 말씀하오리다. 제의 병은 조금도 差減이 없고 날로 더하여 가는 모양인데 近日은 일기가 심히 추움으로 더욱 꼼짝할 수 없어 戶外를 못 나간 지 거의 수십 일이오, 三時茶도 어떤 날은 누은 자리에서 먹는 체하나이다.치료하는 것을 말하면 추워서 병원에 왕래하기도 難할 뿐 아니라 비용도 어찌할 수 없음으로 전기 목욕 등은 다 폐하고 간호원 一人을 手數料 매월 이십원에 계약하고 집에서 매일 마찰을 행하는데 이것도 벌써 一朔이 거의 다 되었는데 수수료 支撥{{지발(支撥) : 支出함. 支放이라고도 한다.}}할 도리가 없는지라 그럭저럭 한 달이나 채우고 해고하여야 하겠소이다.그런데 치료의 효험은 도무지 없고 너무 답답하여 일삭 전에 다른 의사에게 진찰을 또 하여 보았소. 그 의사도 病熱症은 前 의사와 똑같고 역시 이 지방 기후가 대단히 利치 못하니 더운 지방으로 가서 치료함이 가하다 하며 이 지방에 있어서는 아무리 치료하여도 낫지 못할 뿐 아니라 점점 더할 터이오, 더운 지방으로 가면 같은 치료라도 배나 더하리라 하는지라.두 의사의 말이 다 如出一口로 이러하고 또 스스로 징험하여 보아도 日寒이 심한 때에는 병이 특별히 더한지라, 百爾思之하여도 도미하여 치료함이 可한고로 금월 십이일에 최정익 형에게 대하여 도미 여비 미화 오백불을 전보로 환송하여 달라고 전보하였더니 此에 대하여는 여하간 소식이 없고 昨日에 俄貨 백원이 우체로 도착하였는지라, 이것이 전보에 대한 돈인지 그 전에 보내신 것인지 알지 못하와 지금 편지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외다.경제 상황으로 말하면 어떻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전자 편지에 말씀함과 같이 安熙濟 씨가 한 달 전에 이곳에 도착하여 內地에 통신할 일은 피차간 完滿히 타협되여 귀국만 안전히 하면 所料에 過히 相反이 없을 듯하오나 回還 여비가 없어 지금껏 發程치 못하고 있소이다.그 동안에 옷가지 其外 여간 물품 있는 것은 다 전당포에 送하여 三時 茶水를 겨우 계속하여 가다가 그도 다 핍진하여 正할 수 없는 경우인데 近隣에 담배말이 하는 동포 이적성 씨가 자기의 매일 수입되는 分錢(푼돈)으로서 식료품을 時時 지급하여 여차히 延命하여 가는 것이 벌써 이주일이나 거의 되였는데 그도 또한 밑천이 점점 삭아드감으로 매일 扶支 못하기 되엿든 차에 어제 돈 백원이 와서 정말 생명을 회복하는 靈砂{{영사 : 수은을 고아서 결정체로 만든 약제. 곽란・토사 등에 쓰인다.}}가 되엿소이다.그런데 目下 급한 것이 過限支撥치 못한 家貰金이 십육원이오, 간호원 수수료가 이십원이오, 急錢 대용한 것이 십여 원이오, 식구의 당장 穿帶할 의복 전집표가 亦이십여 원이라.此를 共計하여도 약 칠팔십원이오, 안(희제) 씨의 회환 여비도 少하여도 일백 이삼십원을 要할 터인즉 사세가 맹랑하오이다. 하도 할 도리 없어 日前에 安定根 군에게 일백 오십원만 대용하여 달라고 전보하였더니 좀 기다리라고 回電이 왔으나 此亦 如意히 될른지 믿지 못하겟소이다.此가 幸히 되면 안(희제) 씨의 회환비는 釋置되겠소이다. 설령 못되더라도 이번 온 돈 백원으로서 除百事하고 안(희제) 씨는 회환케 하겠스며, 또 안(희제) 씨가 회환한 후 약 삼개월 가량이면 내지로부터 다소 변통이 될 터이라. 伊時에 도미하기로 생각하고 其前에는 차지에서 안심하여 지낼 터이오나 이곳 일을 위하여 조금도 염려마옵소서. 向者 최(정익) 형에게 오백불 청구한 所以로 말하면 제의 現下 병세가 水陸間 獨行하기 난함으로 同留 徐超 군과 동행코져 하여 二人의 여비와 기타 다소 消暢을 幷하여 다액이 됨이오, 또 어떤 돈이던지 순환하여 보내시면 제가 波去한 후에 조처하려 함이러니 이것이 다 貴地의 내용을 알지 못한 소치라. 후회한들 쓸 데 있사오릿까?차로부터 미주까지 가는데 여행상 주의할 사항과 紐育(뉴욕)에 상륙하는 절차와 一人의 여비 액수와 여행권은 何를 요하는 여부(형及영도의 사용한 여권을 부송하였스면 仰好) 그곳의 일체 형편을 이 편지 보는 那時에 상세히 회시하옵소서.李剛 형 意外에 其 大夫人 喪事를 奄遭하여 비통 奈何오? 치타에서 奔哭할 여비도 업슬터인데 한푼 보내지 못하니 참 딱하오이다. 북경 조형은 현금 상해에 재한 愛民 군에게 다소 동정을 표할가 하여 갔나이다. 상해에서 부친 편지 一度를 앙정하나이다.신채호 형은 현금 海埠에 있는데 매우 민망히 지내는 모양이외다. 차(정석) 형의 近信 一度를 앙정하나이다. 林案은 사실상 불능이 되여 豫料와 같지 못하였소이다. 기 내용의 상세는 일후 面陳하오리다. 只此惟祝 兄體萬旺耳.건국 기원 4245년 1월 25일. 제 이갑 배상.

    308 金弼淳(Philip)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만주 通化縣 ; 1912.3.11)

    사랑하는 동샌 도산(DoSan)에게내가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주소를 기억하지 못하는 바람에 하와이에 있는 내 친구 한명에게 편지의 봉투 아래 작은 메모를 보냈단다.어제, 나는 이 편지를 부칠 수 있는 주소를 알아냈어. 내가 여기에 온 것은 1월 초, 적십자회 사업에 대한 희망에서였지. 하지만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았단다. 몇 명의 친구들이 이 곳에 머물면서 그들은 도와주자고 해서, 난 이 곳에 2년 이상 머물기로 결정했지. 그리고 병원을 지으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이곳에는 아주 많은 동포들이 있는데도 아직 작은 병원이 하나도 없단다. 게다가 의료진들도 전혀 없어. 난 내년 6월 즈음에 우리 가족들을 이곳에 데려올 계획이란다. 이곳에서나 다른 곳에서 우리의 목적을 위해 할 수 있는 더 좋은 일을 제안해 준다면 매우 고맙게 여길꺼야.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은 우리 동포들에게 매우 친절하단다. 우리 동포를 깊게 동정하고 있지.이곳은 6000명의 사람들과 800개의 집이 있는 작은 도시야. 하지만 도시 외곽쪽에는 빈 대지가 많이 있단다. 아마 많은 수의 우리 동포들이 있을 수 있을꺼야. 모든 것이 훌륭하고 좋아. 하지만 집과 가까운 곳에 별로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한가지 있어. 600에서 700쯤 되는 지역 내에 철도가 없는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나라의 다른 지역에서 들어오는 모든 것이 귀하고 비싸지. 이제 이 끝도 없는 넋두리는 좀 접어두고 다음 사항에 대해서 좀 알아봐주길 바란다.1. 메스 아보트 알칼로이달(Messrs Abbott Alkaloidal and Co)사의 정제 및 알약의 가격 리스트2. 뉴욕, 시카고 등 다른 도시에서 얻을 수 있는 안경 카달로그나 가격 리스트3. 메스 몬토구마리 워드(Messrs Montogumary Ward and Co)의 카달로그만약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들을 바로 확보할 수 없으면 그들에게 엽서를 보내서 가격 리스트와 카달로그를 나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해주렴. 아마 그들은 엽서를 받자마자 나에게 정보들을 보내줄꺼야. 빠른 시일 내에 내 부탁을 들어주길 바란다. 그럼 정말 고마울꺼야.네 안부인(Mrs. Aun)과 아기에게도 안부 전해주렴.너를 사랑하는 형이

    309 정지영・김창운・전효택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북미 ; 1912.3.31)

    본인 등 정지영 김창운 전효택은 각하의 체후 안녕하옵심을 문안이오며 또한 앙고할 말씀은 다름 아니오라 본인 등이 북미실업주식회사 고본 응모에 대하여 그 시에는 각하의 간곡한 권면말씀을 박절히 거절할 수 없을 뿐더러 본인 등 생각에도 힘써 고본을 오는 기한에 판납코자 하와도 저번 곤란를 인하와 그 시에 가서 허언되기가 十상 八, 九는 되겠사오니 기위 본인 등이 응모한 고수를 타인에게 전매하시옵소서. 본인 등은 이 편지한 날부터 주식회사에는 아무 상관없기로 작정하였소이다.

    310 崔正益이 安昌浩에게 보낸 서신(샌프란시스코 ; 1912.4.3)

    (宅四號)三月卄九日 兄函은 拜承仰喜오며 會館事는 兄敎대로 아니할래야 할 수 없는 事勢를 當하였사오니 그대로 通行하오리다. 過히 闗意마시고 着手한 働役이니 마치시옵소서. 憂愁한 놈은 아무리 絶處하고자 하오나 가끔 찾아오니 딱하오며 布哇事는 黃兄書에 疑點을 少解한 모양으로 왔다하니 幸이오며 또 ●●白曰記 까닭에 其疑點이 兩氏前에 ●●하지 않는지 알 수 없사오나 今番 公債分●에 對하여 一證據를 보니 消融이 不少한 모양이오나 在美 千世●(천세●)氏가 二千元을 보내았더니 餘費實十一元을 送하여 千氏가 그대로 民報社에 義助하였으니 公債收合을 八千元만 잡고라도 三千六百元이 飛去白雲間한 모양이니 李來洙의 應訟費도 또 不少할지라. 如何間 韓人經濟上에 大捉失이 되었으니 可絶이오며 또 日前 團報炅評에 記事를 본즉 美州서 費用한 金額의 半數를 不爲計送할 모양이옵니다.甲兄 答電이 尙無한 것을 보니 姑不發程인가 보오다. 遠東으로 送코자 하는 金額은 半數가 먼저 되고 남 數는 來月初生에나 될터이오니 何處로 先送하는 것이 可하오잇가? 海港이나 溜●에 何處든지 一●以此月에 先送할 밖에 수가 없습니다. 該地情形을 參深하시와 指敎하심을 狀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