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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2771 한길수가 작성한 루즈벨트 대통령의 친일행적 보고서(출처 미상)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1925년 4월 30일 쿨리지(Coolidge) 행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미국 정부가 자기 나라 국민과 일본에 일본군이 하와이를 점령하는 예비단계로 미국 태평양 연안 지역을 급습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얼마나 손쉽고 혹은 얼마나 어려운지를 찾으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재치 있는 일이 아니다." "미국인의 악몽, 특히 캘리포니아의 친구들을 조사하라." "일본이 태평양 서안의 군사 자원 및 재산에서 지배적 강국이라는 주장과 미국이 동부에서 같은 지위를 차지해야 하며 이해 관계의 충돌은 필수불가결 하다고 지적하는 강경 외교론자나 분쟁 야기꾼들의 주장보다 더 단순한 논리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위험한 분쟁 야기꾼들은 그들이 특전을 누리는 무역 시장이라고 불리 우는 시장을 일본이 잠식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일본과 세계 시장 여러 곳에서 경쟁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전쟁의 명분인가?" "나는 종종 모든 전쟁은 경제, 무역 경쟁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유물론자들은 정신병원에 수감되어야 한다."

    2772 "미감리교 감독 웰치(Herbert Welch)가 보낸 편지(1940. 2. 15|| 수신인 미상) "

    한길수의 편지를 요청하는 내용을 포함한 2월 8일 미국 의회 회의록에 나는 관심을 기울여 왔다. 나는 내가 조금 알고 있는 한길수에 관하여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가 해 왔던 너무 무책임한 말들이 소문처럼 번지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무척 놀라고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물론 그가 한 진술은 매우 민감하고 어려운 문제에 관하여 대단히 극단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발언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어떠한 규모의 유일한 미국 기독교회는 장로교와 감리교 두 종파 모두 한길수가 그의 견해를 밝힐 수 있는 완벽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의문을 품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길수가 어쩌다가 이런 식으로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관 해서를 생각해 보면 그의 진술은 일반적인 감리교회에 관해서 개인적으로…(원본판독불가)… 몇 가지 생각해 보게 한다. 진짜 그가 이 문제를 정부 기관에 공표하기 위해 자금을 지원 받았는가. 이 일로 귀하가 관심을 기울이게 되어서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2773 Life지에 실린 재미 일본인 분리 수용소 관련 기사와 사진(1944. 3. 20) : 12장

    캘리포니아 뉴웰에(Newell) 호수 격리 수용소 영창 뒤에서 촬영한 일본인들은 분쟁 야기 꾼들이다. 스스로 "압력을 가하는 사람들"이라 일컫는 이들은 일본의 열혈 애국자들이다. 영창에 약 150명의 수감자들과 함께 이들은 번 오스틴(Vern Austin) 육군 중장이 지휘하는 수용소에서 지난 11월 결국 진압된 폭동의 주모자들이었다. 완력을 써서 폭동을 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한 이들은 미국 내 모든 민간인 격류 수용소들 중 툴레 호수 수용소가 최악으로 손꼽히는데 일조했다.툴레 호수 수용소에 격리된 18,000명의 남, 녀, 및 아이들의 대부분은 일본계 미국인으로 조용하고 조심성 있는 사람들이다. 수감자중 70%는 미국에서 출생하였다. 그러나, 성인 수감자들 모두 미국에 이적활동을 벌이는 불충한 국민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들은 일본으로 송환 명령을 받았거나 혹은 미국에 충성의 서약을 거부하였거나 아니면 국가 안보에 위험한 활동을 벌이는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다. 11만 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은 1942년 3월 서부 해안의 전략지역으로 강제 이주 해야 했다. 결국에 그들은 10여 군데의 격리 수용소에 정착했다. 그 곳에서 미국에 충성하는 일본계 미국인들과 그렇지 않은 수용자들로 구분되어졌다. 미국에 충성하는 일본계 미국인들은 격리 수용소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일부 비 전략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할 것인가의 선택을 해야 했다. 일본에 충성하는 일본계 미국인들은 툴레 호수의 격리 수용소로 보내졌다. 11월 폭동에서 일부 미국인들은 부상을 입었는데 이로 인해 툴레(Tule) 호수의 수용소에 관한 열띤 토론을 많이 촉발시켰으며, 따라서 툴레 호수 수용소는 정치적인 사안으로 남아 있다. 라이프(life)지는 지난 달 그 곳의 사정에 관한 기사를 쓰기 위해 칼 미단스(Carl Mydans) 기자를 보냈다. 칼 미단(Mydans)기자는 16개월을 일본의 강제 수용소에서 보내고 미국으로 송환되었다. 수용소를 운영하는 전쟁 재배치국과 수용소를 경비하는 육군의 동의로 그는 툴레 수용소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그가 촬영한 사진으로 최초로 이런 형식의 기사를 작성하였다.

    2774 "한국우표 발행과 관련하여 미체신부 장관의 보좌관이 한길수에게 보낸 편지(1944. 6. 28|| 발신자 미상) "

    2775 "일본인 전범 관련 신문기사(1946. 11. 12|| 출처 미상) "

    도쿄발 11월 12일- 일본이 진주만 공격 5달 전에 리허설을 했고, 27명의 일본인 1급 피고 중 3명이 결백하다고 조셉 그루(Joseph Grew)전직대사는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을 국제전범재판소에서 했다.전쟁이 개시될 때 억류되었던 그루(Grew) 대사의 진술서는 "나의 견해로는 세 명은 전쟁을 아주 반대했었고 전쟁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라고 밝혔다. 이 진술서는 법정을 깜짝 놀라게 하였지만 웹 재판소장은 재판소가 소송을 철회할 시점인 12월경까지 피고측의 이 제시할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피고측 변호사인 뉴욕 출신의 스미스(Smith)는 법정에서 "소송사건에서 세 명의 피고인을 제거하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 명의 피고는 히로타(Hirota) 전직 수상과 히로타 고히(Kohi Hirota) 전직 외무성 장관, 시게미추 마모루(Mamoru Shigemitsu) 전직 외무성 장관이다.

    2776 한길수가 작성한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점령 관련 보고서(연도 미상)

    "아시아에서 전개될 미래 사건의 경향을 한눈에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한국이 주는 생생한 교훈을 눈 여겨 보아야 한다."극동 전문가윌라드 프라이스(Willard Price)

    2777 "한길수 반대운동 관련 일본인 신문 기사(1945. 2. 26|| 출처 미상) "

    …(원본판독불가)… 우리는 일본계 미국인에 관하여 외국인의 주장에 명성과 위신을 더하기 위한 조작인지의 여부를 알 수 없다.1941년 4월 19일부터 5월 2일까지 호놀룰루에서 열린 해외 한인 회의에서 한길수는 국방 관련 정부기관을 도와 주는 단체들을 대표하는 사절들의 투표로 선출되었다. 그는 1달에 150 달러 연봉 1800달러를 받게 된다.허스트 문서에 따르면, 국무부는 한길수가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밀 요원들의 이름을 밝히는 것을 거부한 데 대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거의 비슷한 죄목으로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으며 투옥되었다.일본계 미국인들은 한길수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하기 때문에 한길수의 활동에 관해 보다 상세하게 알릴 수 있는 사람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일 것이다.

    2778 미국무부에서 한길수에게 보낸 문건(1945. 9. 18)

    고도 서울에서의 일본군의 항복은 자유를 사랑하는 용감한 국민이 해방되고 있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일본 군벌들의 잔혹한 핍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국민은 국가의 자유와 자랑스러운 문화 유산을 향한 그들의 헌신을 지켜 왔습니다. 이러한 핍박은 이제 끝났습니다. 일본 군벌들은 사라지고 있습니다.절차상의 자격 때문에 일시적으로 남아 있을 지도 모르는 일본인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 한국국민과 미국 점령군은 이러한 일본인들을 그들의 종복으로 이용하고 있다. 해방이 되는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진 어려운 임무에 유념하고 있다. 한국이 자유롭고 독립되어야 한다는데 합의했던 미국, 중국, 영국과 소련의 도움으로,지금 위대한 나라의 건설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한국인 자신들이 책임감과 자유 및 독립국으로서의 직분을 다하고 일본인의 한국 정치, 경제 생활전반에 미치는 통제권이 상실 되려면 필연적으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목표는 마음속에 있지만 신속히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국국민과 동맹국들의 공동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오랜 국기인 태극기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다시 펄럭이면서 미 국민들은 한국의 해방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2779 Washington Daily News에 실린 미일전쟁 관련 기사(1943. 5. 24)

    애투(Attu)섬에 남아 있는 소수의 일본인들을 소탕하는 작전이 오늘 요새를 구하려는 적의 필사적 공격 후에도 계속되었다. 해군은 공식성명서에서 15대의 쌍발 적국 폭격기가 토요일 오후 인근 섬에서 군사 행동을 하고 있는 두 척의 해군 함정을 침몰 시키는데 실패하였다고 밝혔다. 폭격기는 애투(Attu)섬 서쪽으로 630마일 떨어진 파라무시로(Paramushiro)나 알레시안(Aleutian)섬의 키스카(Kiska)에서 출발했을 것이다.지난 주말 육군이 항복 아니면 죽음을 기다리는 일본인을 소규모의 세 그룹으로 나눴던 애투(Attu)섬 육상의 상황은 대개 변화가 없다.

    2780 Chicago Sun에 실린 펠리(William Dudley Pelley) 관련 기사(1942. 8. 4)

    인디애나폴리스, 8월 4일- 윌리엄 더들리 펠리는(William Dudley Pelley) 어제 연방법원의 로버트 발트젤(Robert C. Baltzell) 판사 앞에서 해뜰 날을 맞았다. 물을 꿀꺽꿀꺽 들이키고 종이로 만든 浮채를 계속 부치던 그는 침묵을 멈추고 변론을 시작했다.그를 변호하기 위해 첫 증인으로 소환된 선동 혐의를 받고 있는 두 명의 공범자들 중 한 사람인 실버 셔츠(the Silver-Shirts)단체와 대표는 미국이 외국과의 복잡한 관계에서 벗어나고 병사들이 국내로 귀환하며 행정부가 공화당원으로만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열 혈 애국자로 자신을 묘사했다. 그와 절친한 친구들 중 일부가 유태인임에도 그는 공산주의는 "유태인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음모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가 주도한 실버 셔츠 운동(Silver Shirt movement)와 악명 높은 잡지 ′갈리안(Galiean)′ 이 "뉴딜(New Deal)과 공산주의자들을 몰아내기"위한 정치 미디어로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