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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흥사단

    콘텐츠/미주흥사단 [] 에 대한 전체 1490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411 "흥사단보(興士團報) 제24권 1938. 3 4 5월 합본"

    興士團報 제二십四권 제三 四 五호 합부 건국기원 四二七一 「一九三八」년 三 四 五월 합부호 목차 페이지 우리의 뜻 우리의 혁명 운동과 임시정부 유지책 一‥四 도산 선생은 가시다 四‥五 본단 창립 二십五주년 기념식 九‥십 도산 선생 추도회 五‥九 흥사단 주의 실현의 당면 문제 십‥십九 지난 일 二○‥二二 단우회 소식 二二‥二三 단우 소식 二三

    1412 "흥사단보(興士團報) 제24권 1938. 6 7월 합본"

    興士團報 제二십四권 제六 七양호 합부 건국기원 四二七一「一九三八」년 六 七월호 합부 차례 페이지 우리의 뜻 一‥四 동지 여러분에게 四‥五 지난 일 五‥六 소식 六‥七 단우회 소식 단우 소식 동맹 적금부

    1413 "흥사단보(興士團報) 제24권 1938. 11 12월 합본"

    흥사단보 제二십 四권 제 十一 十십二 양호 합부 건국기원 四二七一「一九三八」년 十一 十二월호 합부 우리의 뜻 정의돈수 이 말씀은 십여 년 전에 동지들께 하신 말씀인데 한 번 더 읽어 심폐에 새겨두자. 기자 조선 민족의 사활에 관계되는 문제-무정한 조선의 사회를 유정하게 만들어 무정으로 거꾸러진 조선을 유정으로 다시 일으키자. -쉬운 듯하면서 어려운 관계가 옅은 듯하면서 깊은 문제.

    1414 흥사단보(興士團報) 제25권 1939. 3~6월 합본

    흥사단보 제二十五권 제三 四 五 六 합부 건국기원 四二七二 「一九三九」년 三 四 五 六월 합부 우리의 뜻 도산 선생 서세 一주년 소상 제일을 당하여 뜻 없는 세월은 사정없이 흘러서 불같은 고난 중에 부대끼는 二천만 남녀를 차마 잊지 못하시사 가슴에 넘치는 한을 품고 무도한 원수의 노옥에서 선생의 가신 날이 벌써 一년이 갔습니다. 잔인한 원수의 가혹한 계엄으로 선생의 묘문에는 인적을 끊었으매 성긴 가시 거친 풀이 묘상에 덥혔다던 하거늘 자비의 춘신만이 오히려 선생을 어여삐 보사 황목공산에 꽃수레를 보내셨다니 슬프다. 선생의 외로운 혼은 지금 이를 보고 웃으시는가 우리를 생각하여 울으시는가! 선생은 이미 가시었도다. 영원한 곳으로! 그러나 과거 一년에 우리는 선생을 공석에서만 뫼신 것이 이미 五六차가 남습니다. 어찌 그뿐이리까. 종일토록 소망 없는 길을 가되 앞이 캄캄하여 보이지 않는다고 낙망에 빠져 우는 저녁에 선생을 여러 번 만나셨고, 도모하던 일이 그릇되어 평생의 정력이 허지로 돌아가는 때에나 나무를 지고 불을 찾아가는 길에서도 선생을 만나셨고, 게으름의 올무에 걸려 일지 못하는 시간, 거짓의 함정에 발길을 디디는 시간에도 선생 뵈었습니다. 또는 조선 사람으로 조선 사람의 가해를 보는 시간, 자기의 주장을 펴고자 자기의 단체를 어지럽게 하는 시간에도 선생을 뵈었습니다. 원수의 악독이 동포에게 믿는 시간, 세계의 공리가 눈을 감는 시간에도, 소약국 민족이 악수를 청하며 동정의 우방이 후원을 허할 때에도 우리는 선생을 뵈었습니다. 영과 영이 고요히 접촉하는 시간에 감화가 있고 주의를 정하고 「애인 여기」의 활동을 일으키는 생물이라 하여 二천년 전에 가신 야소(예수)의 영생이 비로소 의미가 있나니 선생의 가신지 一년 소상제일에 우리는 다시 마음에 굳게 작정하고 무실, 역행, 신의, 용감을 심폐에 심고, 입으로 외우고, 손과 발로 실천하여서 선생의 이상으로 용기 있게 활동하는 투사가 되게하여 一년 전에 가신 선생의 영생을 광영이 가득한 우리 조선에 실현케 하고 계속케 하고 발전케 함이 우리의 뜻이오. 우리의 일이외다.

    1415 흥사단보(興士團報) 제26권 1940. 1 2월 합본

    흥사단보 제二십六권 제一. 二 호 합부 건국기원 四二七三년 一. 二월호 합부 우리의 뜻 꾸준하게 나아가자. 四二七二년을 보내면서 나의 소감 건국기원 四二七二년도 오늘로 마지막이다. 내일이 오면 四二七二년의 모든 일은 이미 역사의 한 도막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이 한 해의 역사가 만일 광휘에 차인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얼마나 장중 보물과 같이 귀중히 여길 것이냐. 우리는 시시로 그것을 끄집어내어 볼 것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기분을 바꾸어 용기를 뽐내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해 역사가 과연 광휘있는 그것이었던가 우리의 기분을 일신케하고 용기를 줄만한 그것이었던가. 그것을 스스로 물어볼 때에 누구나 고개를 좌우로 흔들게 될 것이니 우리는 참으로 내일을 맞이할 참 면목이 없는 자이다. 이것이 어찌 이 해의 그믐날에만 떠도는 생각이리요마는 이때를 당할 때마다 그 누구인들 이 생각에 마음 무겁지 않을 자 있으랴. 우리는 건전한 인격과 신성한 단결을 지으려고 손을 들어 신과 사람 사이에 맹약하고 무실 역행 신의 용감의 정신이 없으면 나는 죽은 사람과 같다는 그 절실한 각오를 꾸준하게 실천을 하여왔나 회고하여 보면 누구나 말하기를 그리하지 못하였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렇다면 우리는 새해를 맞음에 부끄러운 것이다. 우리는 해외에 있어 보람 없이 한 해 두 해를 보내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 해를 맞이함에 있어서 남보다 더 우렁찬 소리로 새해를 만세 부르고 새해부터 행할 모든 일에 프로그램을 획책하여야 할 것이니 여기에 부동하는 의지력과 불굴하는 투쟁심이 요구되는 소의가 있다. 아홉 번 넘어져도 열 번 일어날 기운이 우리의 가장 큰 무기이다. 이 무기를 굳세게 부여잡고 우리는 떳떳하게 기정한 우리의 주의와 정신 밑에 용감히 꾸준히 나아가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욕스럽게 넘어진 것만으로 부끄러하는 자는 유부요 거기서 치를 갈고 일어서는 자는 용사다. 우리는 유부가 되어 새해에 무릎에 엎대어 울 것인가 용사가 되어 새해에 손을 잡고 웃을 것인가. 무릇 강한 자 이기고 사는 것이 이 불합리한 세상의 역사의 교훈이었거늘 우리는 모름지기 유부의 심리를 버리고 용사의 기개를 본받아야 되겠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용사의 기개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결코 크고 어렵고 먼 데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고 쉽고 가까운 데서 얻어지는 것임으로 우리는 서로가 배울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것이다. 一. 거짓을 버리고 실지로 꾸준한 지조를 가지는 것이요. 二. 게으름을 버리고 하겠다고 결심한 일에 꾸준히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요. 三. 교사함을 버리고 반복을 고쳐 동지와 사회 제반 공작에 신의를 확수하기로 꾸준히 노력할 것이오. 四. 겁나함을 고쳐 용감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오. 五. 동지를 애호하며 꾸준히 엉키는 단결의 힘을 기르는 것이오. 六. 꾸준히 사회봉사의 성의를 가질 것이다. 이것은 도리어 평범하고 비근한 말일지도 모르나 이것을 잘 이행하는 자는 우리가 경배할 용사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로서 우리는 지나온 자취를 숨김없이 회고하여 보기로 하자. 이리하여 그 어느 모퉁이에 허위, 나타, 교사반복, 나약 등 어느 것이 있으면 자기를 자기 앞에서 폭로하여 마음에 자편을 가하여야 될 것인 줄 안다.

    1416 흥사단보(興士團報) 제26권 1940. 3~7월 합본

    흥사단보 제二십六권 제三 四 五 六호 우리의 뜻 안도산 선생 대상제문 三월 십일은 본단의 단부요 우리민족의 영수 안도산 선생이 적에게 피해 순국하신 후 만二년 되는 대상일이올시다. 선생이 우리 민족의 인격개조와 국권광복을 위하여 일생을 국궁 진췌하시다가 그 뜻을 다 펴지 못하시고 그 사업을 우리에게 끼쳐주시고 먼저 가셨습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는 선생의 서세를 슬퍼하는 가운데 선생의 뒤를 잇기 위하여 선생의 생전의 철저한 주의주장과 위대한 인격본령을 우러러 사모합니다. 삭고하오니 선생이 처음 산문에 나오실 때는 이조 말엽에 있어 조정이 탁란하고 국권이 방락되었습니다. 당시 선생이 약관에 계셨지만은 때를 밝히 보시고 금수강산이 귀족 정치에 단송되는 것을 분개하사 쾌재정에서 관료의 전횡을 통론하시고 국민공치를 제창하시니 이것이 우리나라 민권창조의 제一성이요 이로부터 선생의 명성이 국내를 진동하였습니다. 다음 한성풍운에 들어오사 각 정당과 같이 국권탈회를 동사하시는 가운데 근본적 병폐가 민족사상과 인격이 부패한 데 있는 것을 동실하시고 개연히 민족 개조의 뜻을 품으시고 드디어 대성학교를 창립하신 동시 우수분자를 망라하여 청년학우회를 조직하여 우리 민족의 고유 도덕을 부식하시고 아울러 신지식을 관수하시니 대개 선생은 一대 정치가요 一대 교육가이었습니다. 오호라. 큰 집이 벌써 기울어지도다. 외나무 작대기가 어찌 홀로 고이고 있으리오. 거국상하는 연작화당에 고식을 탐하며 허당부연에 국시를 정하지 못하고 원수는 제아전승 여위를 가져 한일 합명을 위협하거늘 선생이 대사가 이미 그릇된 것을 보시고 이에 「거국행」을 지어 갈 뜻을 말씀하시고 강화에서 목선을 타시고 중국으로 전왕하사 청도회의에서 당대 준걸도 또한 큰 뜻이 없는 것을 보시고 감개무궁하사 수연히 홀로 떠나실 때에 나누어주는 황금을 좋은 말씀으로 사양하시니 대개 선생의 염결이 이 같습니다. 선생은 그리로서 아령(러시아령) 각지를 만유하시고 미주 고택으로 돌아오시니 때는 一천九백십一년 가을이올시다. 선생은 일찍이 미주에 오셔서 공립협회에 창립자가 되셨고 이 때 다시 미주에 돌아오셔서 미주 한인사회 광정에 노력하시더니 一천九백십二년에 큰 자극을 받으시고 이에서 의왕에 주장하시던 민족개조를 다시 생각하시고 우리의 살 길은 여기 있는 것이라하사 그 이듬해 곧 一천九백십三년 五월 십三일에 동지 십여 인과 같이 흥사단을 창립하시고 무실 역행 신의 용감의 四대 정신으로 건전한 인격을 짓고 신성한 단결을 이루어 우리 민족의 전도 대업의 기초를 준비하기로 투사 훈련의 수양주의를 세웠습니다. 선생의 밝히 보신 바는 원수가 본래 우리 민족의 약점을 타서 우리 민족을 속박하였으니 우리가 원수의 속박을 벗고 국권을 광복하려면 그 일이 먼저 우리 민족의 약점을 고치는데 있다는 것이올시다. 선생의 수양주의가 우리 민족 부활의 진리가 되는 것이 금일 중국의 신생활 운동과 같지만은 우리 민족 다수의 사상이 성공에 급하여 요행을 바라며 역행에 게을러 이 진리를 믿는 자가 적었습니다. 그 후 수년에 선생은 재미동포와 감고를 같이하시더니 一천九백십九년에 三一운동을 당하여 국민회의 사명을 띠시고 상해로 가서 내무총장으로 취임하여 임시정부 건설에 비로소 대계를 베푸시고 그 후 십여 년 간을 상해에 계신 것은 차마 환란동지를 떠나지 못하심이니 선생의 시종 여일이 이와 같습니다. 一천九백三십一년 九一八사변 이후 선생이 시기가 온 것을 보시고 장차 생평장도를 펴기를 꾀하시더니 그 이듬해 四월 二십九일에 상해 법조계에서 불행히 원수에게 피포하셨고 한국 대전 감옥에 삼년 금고를 입으셨고 그리고는 다시 오시지 못하시고 거금 三년전 三월 십일에 마침내 원수의 해를 입어 순국하시니 아아 선생의 일생은 간란고통이오 분투희생이올시다. 선생이 그 주의 주장의 실현을 위하여 일생에 가지셨던 인격과 본령은 진실로 근세 우리 민족 가운데 위대한 인물이올시다. 그 생활로부터 범사에 평범과 실제를 힘쓰시고 하시는 일에 취미를 가지시고 낙심이 없으시며 사삭력은 계통이 있어 두야불철하시고 몽혼에 매시니 대개 선생의 역행이 이와 같습니다. 대도관용은 늘 동포를 측은히 보시고 동지를 애호하사 아무런 그르침에도 일찍이 바라신 일이 없습니다. 이같은 자혜인애는 사람으로 하여금 애연히 친할 수 있지마는 오직 불의를 미워하심은 우뢰의 위험을 발하사 원수 이등박문(伊藤博文)이 세리로 달램을 거절하시고 정운복의 반족무신을 꾸짖으니 이것이 이른바 위무불굴이요 부귀불요이올시다. 선생이 가신 후 三년 이래 우리 민족운동의 진상을 돌아보건데 모든 실패가 적의 침해보다 자체 부패에 있는 것이 많습니다. 허위 겁리와 교사반복은 서로 면목을 망실하고 이로 말미암아 단결과 조직이 없고 전쟁은 아직까지 동포사회에 그칠 따름이니 요컨대 우리가 선생의 뜻을 이어 그 사업을 완성하여 우리 민족을 수화 중에서 건져내려면 반드시 선생 주의를 실현한 연후에 있습니다. 선생이 일찍이 말씀하시대「한 사람이라도 믿을 그 사람이 있어야 믿는 그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있다. 」하셨으니 이 지리환산하고 부패 문란한 가운데서 믿을 만한 사람을 얻으려면 우리가 먼저 무실역행으로부터 신의 용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늘 이를 힘쓰면 선생의 주의를 실현할 수 있고 우리 민족의 약점을 고쳐서 적의 속박을 벗고 국권을 광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대상을 당하여 참을 수 없이 동으로 바라보니 대보산에 봄빛이 저물었고 망우리에 석양이 비치었습니다. 다시 어디로 좇아 선생의 성음 소모를 찾을 터인고. 비량감개가 끝이 없지마는 이 같은 비상시기에 있어 스스로 저상함이 선생의 바라시는 바가 아니므로 삼가 정신을 가다듬어 선생의 뜻을 이어 최후까지 분투노력하기로 결심하고 이 글을 써서 천추에 계신 영령께 고하나이다.

    1417 흥사단보(興士團報) 1945. 6월호

    경앙하는 동지 여러분의 몸이 항상 건강하시며 하는 사업이 날로 진흥되사 마음에 만족부터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이 무재하고 활동력 없는 지제가 본 단의 이사부의 주임으로 형세에 의하여 수년을 지내는 동안에 본 단에 볼 만한 발전으로 여러분의 기대에 만족을 드리지 못하고 이제 물러가게 됨에 스스로 죄송함이 많습니다. 물러가 진심으로 평상 단우의 一인으로 성충을 다하여 여러분과 같이 단을 받들고자 하오며 마지막으로 한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는 세속과 시세의 충동을 받아 맺은 마음을 풀지 말아야 할 것이요, 공을 위하여 싸운 감정을 사사로이 갚는 일을 피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보다 서로 삼가고 존경하여 무례에 이르지 않게 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말이 많으면 실수하기 쉽고 실수가 잦으면 오해를 일으키기 쉽고 오해가 쌓이면 시비를 일으키고 시비가 잦으면 감정이 생기고 감정 끝에는 의가 상하는 법이니 이로 인하여 불화가 생기는 때는 단체나 개인의 전도가 막히는 법입니다. 고어에 이르기를 집이 화목하여야 모든 일에 성공이 있다 하였으니 우리 앞에 많은 일을 성취하기를 우리가 힘쓰려 하면 무엇보다 우리가 먼저 마음을 합하고 같은 보조로 정대한 진로를 밟자함이외다. 여러 해 만에 이사장의 멍에를 벗으면서 이암

    1418 흥사단보(興士團報) 1947. 5월호

    단우 제군에게 본단 사업이 앞으로 전진 되는대로 노력하는 일꾼이 있어야 합니다. 과거 수년 간은 임창모, 조원두, 강영문 제군이 희생적으로 노력하였습니다. 금년 초에 강영문 군이 국민회 총무의 영임을 맡게 되매 본 단 사무를 볼 일꾼이 없음을 깊이 느꼈습니다. 국내에서 본 단 발전 사업이 시작됨으로 우리의 일이 많게 되었습니다. 재미 단우는 지식의 힘과 경제의 힘을 아울러 쓸 시기가 온 줄로 생각합니다. 이런 때에 전임 서무원을 둘 형편이 되지 못하여 우선 김성락, 송종익, 함병찬 三인이 사무를 분담하여 진행하려 합니다. 반장들과 단우들은 의무 복무에 주의하여 성실하기를 바라고 각자가 자기 할 바를 힘쓰면 부족한 서무부 일에 큰 도움이 되어 무삼 진전이 있을 줄 믿습니다. 본 단 사업을 연구하여 제의도 하고 계속하여 힘쓰심으로 본 단의 발전이 크기를 바랍니다. 一九四七년 五월 一일 흥사단 이사부장 한장호

    1419 흥사단보(興士團報) 1948. 10월호 - 미주흥사단위원부 단보 제1호

    미주 흥사단 위원부 단보 제일호 동지 제군이 기망하던 바와 같이 우리 흥사단 본부는 국내로 들어갔습니다. 본래부터 우리 흥사단은 태평양 월편에 있는 삼천리 강토를 아름답게 개척하려는 우리 흥사단이었고 따라서 조선에 청년 남녀를 단합하여 장래 신 국가 건설에 완전한 재뢰를 만들어 놓기로 결심한 우리 흥사단입니다. 지금부터 삼년 전에 우리 조선 민족은 몽외의 해방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푸로베순)에 걸리어 있습니다. 현하 국내 정세가 이러한 것도 불구하고 우리 흥사단 본부에서는 벌써부터 단우 모집에 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특별히 미주 기타 해외에 산재한 동지 제군에게 고하는 말씀은 이미 목적지로 들어간 우리 흥사단 본부를 향하여- 모든 일이 다 우리 흥사단에 철리와 같이 실천되게 하여 달라고 진심으로 묵도하며 더욱이 도산 선생이 생존하여 계실 때에 가졌던 그 애단심 그 자각 그 결심 그 단우들이 다시 되어지기를 바라며 미주 위원부로서 국내 본 단에 발전을 위하여 해외 同志 제군으로 더불어 앙망하는 바입니다. 재미 단우들에 과거를 바라보고 참담한 장래를 추측하니 무어라고 말할 수 없는 유감이 없지 아니 있습니다마는 한 번 더 생각을 달리하여 깊이 생각하면 우리 단체 하나만은 보전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 단우로서의 마땅히 할 책임이라고 봅니다. 과거 삼십오 년에 긴 역사를 가진 우리 흥사단은 우리 민족 중에 가장 긴 역사를 가졌다고 봅니다. 특별히 미주에 계신 동지 제군에 향단심과 구국주의에 끌고 넘치는 열성으로 지나간 삼십오 년을 한길같이 본 단을 위하여 성력을 다하여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 단은 분명히 재미동지 제군의 끓는 피에서부터 생겨가지고 제군동지에 뜨거운 담으로써 자라나온 금일에 흥사단이외다. 이미 말하여온 바와 같이 많지 않은 미주에 계신 흥사단우로서 본 단을 한 길 같이 지지하여온 그 진리를 찾아보건대 단우 각개가 입단할 때에 본 단에 철리를 정확히 각오한 후에 입단허락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우리 재미 흥사단이 걸어 나온 경로에 의지하여 지나간 십 년 동안에 있어서 흥사단 간부로서 흥사단우 모집에 대 활동을 하여본 일도 있었다. 동사에 단우 입단 문답식을 간단히 하였음으로 묻는 말에 대답은 (예와 아니)라는 것, 이 두 마디뿐이었다. 이렇게 하여 단우를 오늘까지 얻어왔다. 이러한 이유하에서 현하 재미단우중에는 두종류에 단우를 가지게 되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세세한 설명을 붙이지 않고 다 못한 가지로 이무에 한말을 거듭하려하는 것은 도산 선생이 생존하여 계실 때에 가졌던 그 애단심 그 자각 그 결심 그 단우들이 다시 되어지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1420 흥사단보(興士團報) 1948 - 미주흥사단위원부 단보 제3호

    흥사단 미주위원부 단보 제삼호 제위 동지께서 이미 아시는 바와 같이 지나간 十一月 十一日은 고 안도산 선생의 칠십주년 생신 기념일이었습니다. 특별히 기원 사천이백팔십일년부터는 지나보낸 십년동안에 있어서 매년 十一月 九日로 작정하고 또는 단우들만이 그 날을 기념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금년부터는 도산 선생의 생신 기념일을 매년 십일월 십일일로 완전히 정하고 또는 동포제위를 망라하여 선생의 기념 예식을 거행한 결과에 내빈과 단우를 합하여 구십 명이라는 대중이 그날을 의미 신장한 희비 속에서 우리의 영도자 선생을 기념하였습니다. 선생은 가셨지마는 선생의 주의는 날마다 자라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황무지에 던진 한줌의 씨가 떼를 지어 자라나는 그 움을 보는 대중은 자라나는 그 움만을 보고 객관적으로 신기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씨에서 살아나오는 그 맹아를 살리어 열매의 결과를 보기로 결심한 분은 몇 분이나 되겠습니까. 만일 있다고 하면 이분들은 분명히 명예와 추세의 현상에서 초월한 애민 애국하는 버릇을 오래 전부터 수양이 있었어야 될 것입니다. 조선 민족이 소유한 국토는 삼천리나 되는 적지 않은 지방을 소유하였지마는 옛날부터 개척이 없는 이 땅을 평탄하게 개척하여 우리 흥사단에 주의를 심으려면 이상에 한 말과 같이 애민 애국하는 수양이 또한 있었어야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동지 제군은 역부가 되지 않고는 우리 단에서 심어놓은 씨에 싹을 살리어낼 수 없을 것이외다. 현하 국내 정세가 정돈되지 못하여 민생문제가 무엇보다도 절급한 이 시기에 있어서 흥사단우로서 반드시 자아에 기능을 신구 신탐하여 자기가 하는 일에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연구가 있는 방면으로 성과 역을 다하여 우리 단에서 뿌려놓은 주의에 씨를 살리워 내자는 것이 우리 흥사단의 주창입니다. 물론 인생으로 각각 자기가 생각하는 동향이 같지 않고 또한 각각 고유한 개인의 철학이 있으리라고 짐작합니다. 그러나 우리 흥사단우로서 연구하는 철학은 먼저 자아에 기능을 탐구하는 것이외다. 아무리 불과 같이 뜨거운 열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열성만으로 자기가 기원하는바 그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는 그 원인을 신구하여 찾아낼 수 있는 우리 흥사단우들이 되자는 말이외다. 우리가 항상 하고 있는 말과 같이=학자는 강당에서-기술자는 공장에서-농학자는 농촌에서-상업자는 상로에서-체육가는 체육장에서-정치가는 정계에서=이러한 술어가 다 각각 그 직무에 대한 근본지식이 요구되는 것을 명백히 표시한 말이겠습니다. 이러한 경우에서 우리 흥사단우들은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지 각각 자기가 실지로 연구하고 아는 방면에서 실지생활을 하는 동시에 각 부문에 있어서 담책한 일에 역부가 되어 우리가 뿌려놓은 그 개량종의 씨에서 싹이 돋아나오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 흥사단우들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역부라 함은 일에 대한 상하와 귀천을 분별치 않고 일만을 위하여 근로하는 자이외다. 현하 조선민족 전반이 당하고 있는 국내 정세를 생각하면 난중난사를 겸하여 인간의 생각으로 능히 도절할 수 없는 위경에 빠져 있습니다. 사회 환경이 복잡하게 된 이유는 사회학상으로 보아서 먼저 고관직에 열이 팽창하게 되는 것이겠습니다. 동시에 귀천에 별은 날로 증가되고 계급투쟁은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수라장을 만들어 놓게 되는 것이외다. 따라서 개인주의와 사기 취재와 음란은-진정한 사람의 입으로 무어라고 발음을 할 수 없으리만큼 팽창하여질 것이외다. 흥사단우 제군이여. 이러한 위기에 있어서 고관에 직을 얻으려 하지 말고 차라리 호미와 괭이를 쥐고 노동 역작하는 농민들과 같이 땅을 개척할지며 고귀하다는 악마를 돕지 말고 비천하다는 양민을 도울지며 이 밖에 모든 더러운 악핵을 타파할 만한 우리 흥사단의 유일한 무기인 무실역행하는 습관으로 사회도덕을 세우기 위하여 특별히 국내에 계신 동지 제위의 명철한 각오를 믿습니다. 제군 동지는 미리부터 각 사회방면에 있어서 역력한 경험과 풍부한 기본 상식이 있는 이상에 백절불굴의 정신으로-부패한 사회를 정결한 사회로 개조하는 것도-남북풍 모진 광풍에 쓸리워 다니는 우리 주의의 씨에서 뿌리를 뻗게 하는 것도-청천 하늘에 벼락을 맞아 남북에 중동이 끊어진 그땅을 조합하는것도-적청에 색을 합하여-황홍의 색으로 변케하는 것들이다. 국내 동지 제군의 등에 지워진 무거운 짐이라고 봅니다. 임창모 군이 지은 풍월 일수를 등재하나이다. 欲問島山救國方 島山無福島山在 世人讚行島山跡 再入島山問島山 島山去後島山空 島山心誠學不成 若便島山當此日 島山有必驚世聲 美洲 興士團委員部 멀지 않은 앞날에 우리는 또 한번 예수 씨의 생일을 기념하게 되며 따라서 의미심장한 새해를 또 한번 맞이하게 됩니다. 미주 흥사단 위원부는 본 단보를 통하여 해내-해외에 계신 동지 제위에게-구국 성탄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념하며 一九四九年은 우리 민족이 원하는 조선민족의 완전한 해방과 특별히 조선민족성 해방이 있기를 기원하는 바이외다. 미주 흥사단 위원부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