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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2951 한길수가 에드워드 도드(Edward H. Dodd Jr.)에게 보낸 편지(1954. 11. 8)

    사본

    2952 SUNDAY STANDARD-TIMES에 실린 한길수 관련 기사(1945. 2. 25)

    문제는 한국의 전후 위치가 어떻게 될까 이다. 이 문제는 중한민중대동맹 워싱턴대표 한길수가 제기한 질문으로 그는 한국이 일본 압제자들을 물리친다면 한국은 자주적이며 자유로운 국가로 재건립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는 대서양 헌장(The Atlantic Charter)이 중국, 필리핀 군도 및 브라질에 적용된 것처럼 한국에도 적용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어떠한 정치적인 부대조건이나 경제적 속박이 2천 6백만 명의 한국인의 목을 죄지 않는 자유로운 국가를 의미합니다." 한국은 또한 "일본이 한국에서 한 모든 투자의 징발을 마무리 짓기를 바란다"고 한길수가 말했다.수많은 관리들과 작가들이 지난 해 한국인이 주체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계속 물었다고 그는 덧붙여 말했다. 이 문제는 부분적으로 친일 세력의 "무분별한 보고" 와 일본이 과거 수 십년 간 한국을 상대로 벌여 온 선전활동이 미국과 다른 곳에서 영향을 계속 미치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소수의 재외교민과 연락을 드물게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길수는 주장했다. 한국은 일본보다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1600년이나 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단일 언어를 쓰고 있다. 교육 수준은 아시아에서 최고이며 전체 아시아 대륙에서는 두 번째이다. 전체 인구 중에서, 69%가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를 읽고 쓴다. 한국은 한국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천연자원이 충분하여 거의 자급자족하고 있다. "한국이 주체적으로 통치할 수 있을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일본에서 일자리를 구했으며, 일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과 했던 일을 알아내어 "압제자보다 뛰어나고자" 하는 수단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 밑에서 취업하려 했다. 일본은 지난 해 거의 20만 명의 한국인이 일본 본토에 거주하는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 당국에 따르면 한국민들은 일본화 되지 않았다. 그들이 일본 산업에서 습득한 지식은 후에 전후 한국에 대단히 중요할 것이라고 한길수가 주장했다. 한길수는 유엔 관리들이 현재까지 한국에 관한 전후 경제 정책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책임감 있는 앵글로-어메리칸 재정부에서 흘러나오는 일부 추측과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일본이 한국에 투자했던 투자들을 만회하기를 바라는 희망사항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수백만 달러의 미국 달러들을 압제국 일본이 한국을 강력한 육, 해 공군 기지로 건설하는데 충당했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미국 투자가들이 금융기관을 통하여 매수했던 채권으로 수백만의 한국인들이 착취당한 것 역시 알고 있다 …" "일본이 한국에 거주하는 수백만의 한국인들을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노예로 삼는 것을 도와 주었던 앵글로 어메리칸(Anglo-American)들은 한국과 그로 인한 그 백성들에 대한 여파에 대한 책임감을 피할 수 없다. "자유국 한국은 동아시아와 태평양지역의 미래 안보와 평화에 관한 심오한 계획에서 절대로 필요한 요소이다. 우리 이웃국인 소련, 중국, 일본에 대한 책임감에 유념하는 한국은 충분히 국제적으로 협력할 것이다. 이러한 이해와 선의의 정신으로 우리는 안전하고 번영하며 평화로운 전후 세계를 기대한다.

    2953 SANJOSE EVENING NEWS에 실린 한길수 관련 기사(1955. 1. 12)

    문제는 한국의 전후 위치가 어떻게 될까 이다. 이 문제는 중한민중대동맹 워싱턴대표 한길수가 제기한 질문으로 그는 한국이 일본 압제자들을 물리친다면 한국은 자주적이며 자유로운 국가로 재건립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는 대서양 헌장(The Atlantic Charter)이 중국, 필리핀 군도 및 브라질에 적용된 것처럼 한국에도 적용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어떠한 정치적인 부대조건이나 경제적 속박이 2천 6백만 명의 한국인의 목을 죄지 않는 자유로운 국가를 의미합니다." 한국은 또한 "일본이 한국에서 한 모든 투자의 징발을 마무리 짓기를 바란다"고 한길수가 말했다.수많은 관리들과 작가들이 지난 해 한국인이 주체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계속 물었다고 그는 덧붙여 말했다. 이 문제는 부분적으로 친일 세력의 "무분별한 보고" 와 일본이 과거 수 십년 간 한국을 상대로 벌여 온 선전활동이 미국과 다른 곳에서 영향을 계속 미치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소수의 재외교민과 연락을 드물게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길수는 주장했다. 한국은 일본보다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1600년이나 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단일 언어를 쓰고 있다. 교육 수준은 아시아에서 최고이며 전체 아시아 대륙에서는 두 번째이다. 전체 인구 중에서, 69%가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를 읽고 쓴다. 한국은 한국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천연자원이 충분하여 거의 자급자족하고 있다. "한국이 주체적으로 통치할 수 있을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일본에서 일자리를 구했으며, 일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과 했던 일을 알아내어 "압제자보다 뛰어나고자" 하는 수단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 밑에서 취업하려 했다. 일본은 지난 해 거의 20만 명의 한국인이 일본 본토에 거주하는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 당국에 따르면 한국민들은 일본화 되지 않았다. 그들이 일본 산업에서 습득한 지식은 후에 전후 한국에 대단히 중요할 것이라고 한길수가 주장했다. 한길수는 유엔 관리들이 현재까지 한국에 관한 전후 경제 정책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책임감 있는 앵글로-어메리칸 재정부에서 흘러나오는 일부 추측과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일본이 한국에 투자했던 투자들을 만회하기를 바라는 희망사항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수백만 달러의 미국 달러들을 압제국 일본이 한국을 강력한 육, 해 공군 기지로 건설하는데 충당했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미국 투자가들이 금융기관을 통하여 매수했던 채권으로 수백만의 한국인들이 착취당한 것 역시 알고 있다 …" "일본이 한국에 거주하는 수백만의 한국인들을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노예로 삼는 것을 도와 주었던 앵글로 어메리칸(Anglo-American)들은 한국과 그로 인한 그 백성들에 대한 여파에 대한 책임감을 피할 수 없다. "자유국 한국은 동아시아와 태평양지역의 미래 안보와 평화에 관한 심오한 계획에서 절대로 필요한 요소이다. 우리 이웃국인 소련, 중국, 일본에 대한 책임감에 유념하는 한국은 충분히 국제적으로 협력할 것이다. 이러한 이해와 선의의 정신으로 우리는 안전하고 번영하며 평화로운 전후 세계를 기대한다.

    2954 한길수가 미국언론과 라디오 방송국에 보내는 호소문(1955. 8. 15)

    "이승만:신화에 가린 인물"(Syngman Rhee:The Man Behind the Myth)이라는 책이 1954년 4월 처음 출간되었을 때, 수많은 유력 일간지와 잡지들이 이 책에 관해 찬사를 실은 기사를 실었다. 유력한 뉴욕 일간지는 "계몽적이며,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대단히 귀중한 책이라고" 비평했다. "얼마나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이 허위 조작된 내용과 왜곡된 사실 및 인격모독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자료의 중요성 뿐 아니라 그 자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도 특정 자료를 뺐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는가?" 이 책을 꼼꼼하게 평가한다면 이 책의 저자인 로버트 올리버(Robert T. Oliver) 박사가 공산주의자들이 자주 쓰는 기법으로 알려진 진실하게 보일 때까지 거짓말을 일삼는 수법을 택했다. 올리버(Oliver) 박사는 현재 펜실베니아 주립대학(Pensylvania State University)의 교직원이며 많은 저서를 쓴 저명한 저술가이다. 이 책에서 올리버(Oliver) 박사는 한길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근거 없는 말을 썼다. 그는 한길수를 시베리아에서 출생하여 중국과 일본에서 생애 대부분을 보냈으며 1941년 12월 7일 미국에 선전포고 없는 전쟁을 기도했던 악명 높은 일본 도쿄의 흑룡회(the Black Dragon Society)를 대표하였던 사람으로 묘사했다. 더욱이, 이러한 악감정이 있는 거짓말을 근거로, 올리버(Oliver) 박사는 독자들의 마음속에 한길수가 중국의 한국인 공산주의자들과 친분이 있다는 의심을 굳히기 위해 간접적으로 암시와 풍자를 사용했다. 그리고 나서 작가는 수많은 미 국무부 관리들과 중국 국민당 정부의 외교부 직원들의 도움과 협력으로 한길수가 이승만에 대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식의 거짓말들을 빈틈없이 써 내려갔다. 올리버(Oliver) 박사가 코델 헐(Cordell Hull) 전직 미 국무부 장관을 부당하게 비난하고 전직 국무부의 한국 담당 국장인 조지 맥쿤(George S. McCune)과 다른 직원들을 비방하며 중국 외교부의 메세르 숭(T.V. Soong)과 빅토르 후(Victor Hoo) 박사를 맹비난하고 전직 중한민중 대표 한길수의 맹비난은 이러한 사람들이 이승만 박사가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중국 중경에 있는 한국 임시 정부에 대해 미국의 외교적 승인을 얻지 못했다는 그릇된 추측에 근거하고 있다. 올리버(Oliver) 박사는 이들에 대해 강력한 논거를 갖기 위해 비윤리적으로 다양한 문학적 기법을 택했다. 그는 한길수에 관해 허위 정보를 날조하였을 뿐 아니라 진실과 환경을 왜곡했으며 고의적으로 다음과 같은 관련된 중요한 서류를 무시하고 생략했다. 서류 A : 존 스태거(John W. Stagger) 변호사가 한길수에게 1942년 1월 30일 보내는 편지 스태거(Stagger)변호사는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워싱턴 D.C의 구미위원회(The Korean Commission)와 이승만 박사의 법률 고문이었다.스태거(Stagger)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썼다: "구미위원회(the Korean Commission)는 국무부에 의해서 한국임시정부(th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의 공식적인 대표기구로 승인 받았다. 따라서, 당신이 워싱턴의 정부 기관으로의 어떤 연락이라도 공식적인 경로를 통하여 구미위원회(the Korean Commission)에 제출해야 하는 것이 적절한 절차이므로 이에 따라야 한다."이 편지는 만일 당신이 이 문제에서 위원회의 희망사항을 준수하지 않으려 한다면 한국임시정부(th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와 구미위원회(the Korean Commission)가 한국의 대의과 관련된 모든 활동의 중지를 요구 받을 것이라고 충고하기 위해서 입니다." 주의: 코델 헐(Cordell Hull) 국무부 장관은 스태거씨의 주장을 논박했다. 서류 B : 존경하는 제임스 크롬웰(James Cromwell) 한미연합회(the Korean American Council) 회장이 1942년 5월 5일 코델 헐(Cordell Hull) 미 국무부 장관에게 보내는 편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태평양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전략적인 위치는 몹시 불안정했다. 크롬웰(Cromwell)씨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승만 박사가 워싱턴 대표로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미국이 승인만 한다면 한국 및 일본에서 폭력으로 혁명을 일으킬 계획이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자유를 얻으려고 몸부림치고 있지만, 이승만 박사는 국무부가 대한민국의 사실상의 정부를 승인할 때까지 그들을 놓지 않을 것이다." 서류 C: 코델 헐(Cordell Hull)이 1942년 5월 20일 크롬웰(Cromwell)씨에게 보내는 답신 왜 그는 그들의 비현실적인 요구를 허가하지 않았는가에 관한 헐(Hull)의 견해와 이유에 주목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헐(Hull) 국무부 장관이 선언했다: "귀하께서 암시 하셨듯이, 귀하가 대변하는 단체는 이 정부가 먼저 귀하가 대변하는 국가를 사실상의 정부로 인정할 때까지 이 단체가 대변하는 국가가 자유를 얻기 위한 의도로 활동하는 것을 믿기 어렵습니다. 이는 귀하께서 말씀하시는 서비스가 ′판매용′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가격은 미국 정부의 특정 단체가 인정한 것이며, 선불로 국가가 지급한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귀하의 편지에 담긴 그러한 주장과 암시들이 한국 국민들의 정신을 대변하고 있다고 참으로 믿기 어렵습니다." 만일 한 사람이 작가의 오도되고 그릇된 가정의 관점에서 세 가지 서류들을 생략한다면 이는 다름 아닌 이승만 박사와 그의 보좌관들이 한국임시정부(th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에 대한 미국의 승인을 얻기 위한 외교적 협상을 실패 시킨 자들이라는 점을 증명할 것이다. 헐(Hull)씨는 사실상 외교적 공갈협박에 버금가는 "대가"를 왜 그가 치르려 하지 않았는지에 관해 그가 가진 견해와 근거를 분명한 용어로 표명했다. 분명히, 작가가 문학적인 정직함을 사용했음을 알았다면 그는 결코 이러한 서류들의 사용을 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올리버(Oliver) 박사가 이러한 세 가지 서류를 책에 기입하고 인정했다면, 국무부와 중국 외교부, 한길수에 대해 그가 했던 주장의 근거가 결코 사실일 수 없었을 것이다.위에서 밝혀진 사실에 비추어 보아, 다음의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1. 올리버(Oliver) 박사의 이승만 박사에 대한 국무부 정책에 관한 부당한 비난과 허위 진술이 어느 정도로까지 그리고 얼마나 국내와 국외에서 미국 정부의 위신과 고결성을 손상시켰는가?2. 어느 정도까지 작가는 올리버(Oliver) 박사의 영웅 이승만이 저지른 불안정한 판단 활동을 은폐하기 위해 왜곡하였는가? 3. "어느 정도까지 이 책은 진실을 포함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까지 거짓말을 날조하였는가? 1년 이상 동안 올리버(Oliver) 박사는 지치지 않고 이렇게 악의적인 거짓말을 유포해 왔다.1954년 11월 초, 한길수는 올리버(Oliver) 박사와 미드 앤 도드 컴퍼니(Mead. Dodd and Company) 뉴욕지부 사장인 출판업자 에드워드 도드(Edward. Dodd) 2세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올리버(Oliver) 박사에게 1954년 11월 16일 보낸 답신에서, 그가 ′실수′했으며 "틀린 정보를 전해 들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글을 썼다. 그는 "다음 판에서는 실수들을 교정할 것."이라고 한길수를 안심시켰다. 수 개월간의 기다림 끝에, 1955년 3월 초 한길수는 도드(Dodd)와 올리버(Oliver) 박사를 워싱턴 D.C.에서 만났다. 도드(Dodd)는 1954년 11월 나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고 결정했으며 반면 올리버(Oliver) 박사는 다시 "모든 실수"를 수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은 또한 분쟁해결을 논의하였다. 평화로운 해결의 조건들 중의 한가지는 그가 사과편지를 썼다는 점과 이를 한인조사에 실어야 한다는 점이다. 1955년 6월까지 소식두절과 지연이 한층 더 진행됐다. 그래서 6월 3일, 한길수는 펜실베니아 주립대학(Pensylvania State University) 학장인 밀턴 아이젠하워(Milton Eisenhower) 박사에게 호소했으며 박사가 한길수에게 했던 약속에 관해 펜실베니아 대학 직원들과 연락을 취해야 한다고 요청했다.아이젠하워 박사가 이 문제를 올리버(Oliver) 박사와 논의하였는지의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직후에, 올리버(Oliver) 박사는 한인조사 1955년 6-7월 호에 사과 편지를 불만족스러운 "수정과 실수"가 담긴 페이지를 약속 없이 실었다.한인조사는 월간지로 워싱턴에서 한인태평양주보가 발간하였다. 올리버(Oliver) 박사는 공식적인 발행 "구문"이었다.13페이지에는 "수정과 실수"라는 제목아래, 작가는 다음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언급했다. "1954년 4월 도드(Dodd) 앤 미드 컴퍼니와 1955년 3월 헤일 리미티드(Hale Limited)가(런던) 발간한 이승만 대통령의 전기에서 실수가 많은 것 같다." "전기에 편리하게 추가하기 위해 수정본은 책의 한 페이지에 맞는 공간에 인쇄되었다."p. 171, 11번째 줄: "시베리아 출생" 생략해야 한다, "한(Han)은 한(Haan)으로 표기되어야 한다." P. 171, 11~12번째 줄: "일본과 중국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냈다"를 생략한다P. 181,182,196: "한(Han)은 한(Haan)으로 표기되어야 하며 흑룡회(the Black Dragon Society) 언급부분을 삭제한다. 만일 작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설명이 정확하다면, 올리버(Oliver) 박사가 1954년 11월에 수정하겠다고 약속했던 점과 1955년 3월 한번 더 무턱대고 간단히 약속을 지연시키는 수법을 쓴 점은 자명하다. 그가 이러한 약속을 하며 원만한 해결을 마련하는 동시에 올리버(Oliver) 박사는 미국에서 출간되었던 그대로 약속했던 "수정" 없이 영국에서 인쇄되는 "영국판"을 준비했다.이러한 사실은 한 가지 확실하고 피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는 올리버(Oliver) 박사가 희생자의 명성과 위신에 더 큰 손상을 입히고자 하는 의도로 문학적인 "진주만" 공격 작전을 시행하였다는 점이다. 미국의 정의와 페어 플레이의 상호 이익을 바라는 마음에서, 저는 진심으로 올리버(Oliver) 박사의 위험한 문학적 기법을 견제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라고 이 호소문을 평가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귀하의 정보를 위해 다음의 서류를 보냅니다.1. 한길수가 1955년 1월 12일 국무부에 보내는 편지 사본2. 한인조사 1955년 6-7월 호 올리버(Oliver) 박사의 "수정과 오류"가 실린 13쪽 귀하께서 미국의 정의와 페어 플레이 승부 정신을 실행할 것을 확실히 믿으며 저의 호소문을 심각하게 고려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호소문을 보냅니다.

    2955 미국시민자유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이 한길수에게 보내는 편지(1953. 2. 19)

    제가 허친슨씨에게(귀화팀 팀장) 문의 확인하였더니 귀하의 파일이 여전히 조사팀에 있다는 사실을 이전에 알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군요. 그 상황에서는 …(원본판독불가)…귀하의 소송에 흠을 찾기 위해 해당 지역에서 판사의 재정신청이 없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귀하와 부인께 안부를 전해 드리며…(원본판독불가)…

    2956 피터 흄(Peter S. Humm. Jr.)이 한길수에게 보낸 편지(1955. 1. 22)

    항공 우편

    2957 한길수가 로버트 올리버(Robert T. Oliver)에게 보낸 편지(1955. 3. 29)

    2958 한길수가 로버트 올리버(Robert T. Oliver)에게 보내는 편지(1955. 7. 31)

    2959 한길수가 아이젠하워(Milton S. Eisenhower)에게 보낸 편지(1955. 6. 3)

    2960 한길수의 딸 스텔라 한이 미국시민자유연맹의 배식(Ernest Besig)에게 보낸 편지(1955.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