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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자료

    콘텐츠/독립운동가 자료 [] 에 대한 전체 5845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2711 한길수가 미국무부 극동국장 우니센트(John Cater Unicent)에게 보낸 편지(1946. 7. 2)

    2712 "한국내 선거 관련 기사(1946. 11. 11|| 출처 미상) "

    도쿄 주한 미 사령관 존하지(John R. Hodge) 육군중장이 이번 주 한국 최초의 "자유선거이자 민주주의 선거를 부분적으로 혹은 전면적으로 무효 처리한다고 해도 한국에 있는 극소수의 미국인들만 놀랄 것이다.만일 무효처리 된다면, 지난 주 미국이 지원했던 선거가 민주주의 절차를 우스꽝스럽게 흉내냈다고 주장하는 시위의 물결에 의하여 그가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소위 "임시 행정부" 중 45명을 선출하기로 예정되었던 선거는 지주들의 연합과 시가 재정을 지원하는 이익단체, 73세의 정치인을 정신적 지도자로 여기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엄청난 성공을 안겨 주는 결과를 낳았다.가장 왕성한 시위를 벌였던 사람은 우익 연립 위원회 공동 의장인 김기식 박사였는데, 그는 임시정부의 대들보로 미군이 선택한 사람이며 나아가 한국의 차기 정부 대들보가 될 사람이다. 11월 4일 하지(Hodge) 중장에게 보낸 서신에서 김 박사는 새로운 선거를 요구했으며 악명 높은 친일파가 선출되었음을 비난하였고 또한 거대한 규모로 사기를 쳤다고 비난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서울에서 선출된 세 명중 두 명은 일본의 전시노력을 위해 한국인들의 지지를 끌어내는 것을 도왔다고 한다. 또 다른 지방의 당선자들 중 한 사람은 일본 총독의 고문으로 일했다고 한다. 이는 마치 오늘날 미군 총독에게 조언하는 것과 같다. 기자는 방금 한국의 최 남단 지방에서 돌아왔는데, 그곳에서 그는 군 단위와 지방 단위에서의 선거를 목격했다. 직접 본 관찰을 기반으로, 김 박사의 주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위 "좌파"가 떼거지로 체포되는 것을 배경으로 개표가 열렸으며, 여기서 좌파라는 용어는 한국의 남부지방에서는 노동 지도자들, 농민 연합 회원들, 교수들, 의사들, 학생들, 심지어 미국이 지지하는 연립위원회의 명목상의 구성 요소인 인민 당까지 포함한다. 보편적 참정권을 제공하는 법규와는 상반되게, 미군정은 가장에게만 선거가 국한되도록 허가했으며 많은 경우 10가정의 가장에게 허락되었다. 법규에 보장된 비밀 투표는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했다. 수많은 마을에서 후보자들의 이름은 마을 지도자가 선정한 투표자로 대체되었다.또 다른 마을에서는 유권자들은 투표하는 번거로움이 없었다. 대신에, 사환이 성명 직인을 돌아다니며 수거했는데, 이 때 직인은 관리가 작성한 용지에 찍혀 있다. 선거의 교묘한 특색 중 하나는 미군정이 택한 절차이다. 이 절차에 따라, 한 마을의 가장은 두 명을 선출하는데 두 사람은 다시 주민들 중에서 대리인 두 명을 선출하고 이들은 다시 군 후보자를 선출한다. 최종적으로 뽑힌 두 명의 대리인은 2명에서 7명의 지방 대표를 선발한다. 이 절차는 마을이 뽑은 "파괴 활동 분자들"이 제거되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 선거는 매우 급히 진행되어 기자가 방문한 일부 마을에서는 선거 공고문이 선거 하루 전까지도 게시되지 않았다. 아예 선거 개시가 없는 경우도 있었고, 지도자는 친구에게 그저 마을의 선택에 대하여 의논했다. 우연의 일치로, 지도자는 보통 "선출"된다.선거는 이승만을 따르는 두개의 급진당에 큰 승리를 안겨 주었다. 두 급진당에는 한국 민주당과 한국 독립 활성화를 위한 민족동맹이 있다. 두 당은 합쳐서 35개 지방에서 승리했으며 40개의 의석을 차지했다. 이승만과 연계가 없는 다른 급진 우파 정당은 세 명의 대표를 지명했다. 이승만의 승리는 우파적 성향의 임시 정부를 위한 미국의 계획에서 잠시 어긋났다. 임시정부는 김 박사의 지도아래 남한이 피범벅의 혼란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서도 온건한 사회개혁 조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2713 인종연맹(The League of Races)에 대한 안내와 소개문(1945. 5. 7)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사우스 스프링 가(South Spring) 524 본부노스 웨스트 S가(Northwest) 1829, 워싱턴 D.C. 사무실, 미관리들:핀리 윌슨(Finley Wilson), 대통령, 미국, 워싱턴 D.C. 휴 맬베스(Hugh E. Macbeth), 부통령,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마넥 앵클레사리아 박사(Maneck Anklesaria), 장관, 인도, 캘거타한길수(Kilsoo Haan), 재무 담당자, 한국페리 하워드(Perry W. Haward), 법문담당관, 미국, 워싱턴 D.C. 인종연맹은(The League Of Races)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1945년 5월 7일 조직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기구관련 유엔 회의에서 만들어진 세계 헌장원칙 시행의 원칙에 충실한 인종연맹은, 진보적, 인간적이며 형제애적인 조항을 만들어 이를 실행하고, 전 세계에 걸친 교육 과정들을 계속 제공하여, 비록 전쟁이 인간 삶의 한 방식이라곤 하지만 정의와 평등의 화합을 그보다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므로써, 인류가 평화로운 정부를 조직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수단이었던 국가와 민족의 군사력 및 영향력을 영원히 감소시킬 것이다."워싱턴 D.C.존경하는 국무부 장관 귀하"각하:우리는 유색인종단체연맹 관련 메모를 정중하게 제출합니다. 미국 각계의 단체 대표들은 공통의 목적으로 여기에 모였음을 알아챈 우리는 우리 단체들을 한 개로 연합 시키고 이 단체를 유색인종단체연맹으로 칭했다. 인간 삶의 한 방법으로써 전쟁보다 정의와 평등의 평화를 더 매력적이게 만들자는 의지, 몇몇 국가와 사람들의 무장세력과 권위자 필요성을 줄이자는 의지, 그리고 인류의 평화적으로 조직된 정부를 필요불가결한 수단으로 한다는 의지, 그러한 진보적, 인간적, 그리고 우애적인 조항의 계속적인 주입과 수행, 그리고 세계적인 교육과정으로 샌프란스코에서 개회 중인 세계 기구를 위한 유엔회의에서 발의한 대로, 그리고 창설된 대로 세계 헌장을 이행하고자 하는 신념에 전념함.대표 단체는 다음과 같다:1. 미국흑인교회 친목의회 - 6백만2. 엘코스 자선보호회 - 5십만3. 미국침례회의 -4백 5십만4. 전국 변호사협회 -4천5. 흑인여성협의회 - 8십만6. 유색인종클럽연맹 - 3십만7. 전국 의사회 -2만 5천8. 전국 유색인종학교 교사협의회 - 2만 5천9. 세계흑인지위향상협회 - 7십만 명의 미국인10. 인종 혼합의 영화 및 라디오 길드 -5만11. 하나님의 교회 - 6천12. 유색인종 간호사협의회 - 8천 5백

    2714 한길수가 맥아더(Dogulas Mac Arther)장군에게 보낸 편지(1945. 9. 29)

    2715 "한길수와 박상엽의 샌프란시스코회의 참가 관련 기사(The Korean Independence|| 1945. 4. 26) "

    유엔국제기구 회의와 관련하여 한국인들은 마침내 미 국무부에서 공식적인 대리인의 자격이 아닌 신문 기자의 자격으로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았다. 참석자들은 메사르(Messars), 박상렵(Sang Ryup Park), 한길수(Kilsoo K.Haan)로서, 이들은 "한국의 독립"을 대변하고 있다. 실제로, 이것은 "한국의 독립"에도 대단히 영예로운 일일뿐 아니라 한국인 모두에게도 영예로운 일리다. 왜냐하면 이일은 한국사에서 최초로 한국인들이 공식적으로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세계적 규모의 국제 회의에 참석하는 기자로서의 지위를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의에 참석하는 두 명은 반드시 그들의 영예로운 특권을 최대한 활용하여 해외 동포들에게 회의의 성공을 위하여 회의에 관한 실질적이고 분명한 그림을 제시할 뿐 아니라 가능하다면 국제연합의 대리인들로 하여금 260만의 한국인들의 진정한 열망과 결단력을 확실하고 분명히 이해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열망은 한국의 무조건적인 자유와 독립이다. 우리는 "한국의 독립"과 한국의 동포들을 대신해서 미 국무부에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특히 수석 공보담당관인 맥더맛(M.J. Madernott)씨에게 한국인들에게 발표할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해 주신 점을 감사 드립니다.

    2716 미국무부의 러셀(Francis H. Russell)이 한길수에게 보낸 편지(1945. 9. 24)

    트루먼(Truman) 대통령이 1945년 어떻게 기만했는가

    2717 미국무장관 대리 그루(Joseph C. Grew)가 상원의원 페퍼(Pepper)에게 보낸 편지(1945. 6. 11)

    저는 지난해 귀하께서 한국의 입법에 관심을 보였던 것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국무부가 오늘 상원이민위원회장에게 귀하의 법안 730에 관한 호의적인 보고서를 우송하였음을 귀하께 통지하니 기쁩니다. "한국인 입국비율에 따라, 한국인들의 미국 입국을 승인하며 또한 귀화나 그 외의 목적으로도 입국 자격이 있음을 승인한다." 제가 언론에 공개하였던 이 문제에 관한 진술에 귀하께서 관심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복사본을 동봉하였습니다.

    2718 "유엔 극동 담당관인 레이(J. Franklin Ray|| Jr)가 한길수에게 보낸 편지(1945. 10. 9) "

    2719 미 국무부의 한국관련 보도자료(1945. 10. 16)

    No.763 한국의 38선 이남의 미군 통제지대에서 수행했던 군정은 한국 대표자격으로 있는 사람들로부터 한국 문제에 관한 조언을 구하는 방침을 시작했다. 이 방침에 따라, 외국에서 귀국할 기회는 현재 동포들에게 서비스를 지급하는데 관심 있는 한국인에게 열려 있다. 출국허가신청서는 국무부의 비자 담당부서가 받고 있다. 미군이 통치하고 있는 한국으로의 여행과 입국허가는 미국 전쟁성 비자담당부가 출국허가 신청 시 취급하고 있다. 최초 신청자는 허가 받았으며 현재 한국으로 오는 중이다.미국이 통치하는 있는 한국으로 중국 거주민이었던 한국인을 입국 시키는 것 또한 바람직하다고 인식되고 있으며, 해당인 수송은 중국 내 미군 지휘 하에 관리되는 기관의 방침에 따라 준비되어야 한다.

    2720 한길수와 박상엽에 대한 미국무부의 신임장(1945. 3. 26)

    이하의 정보를 제발 관련인에게 전하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