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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병자료

    의병자료에 대한 전체 704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201 메이지 40년 7월에서 동(同) 41년 1월까지한국에 있어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파견과 동국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체결 1건

    강화도(江華嶋) 및 원주(原州)의 폭도 진압과 강릉(江陵)의 불온에 관한 한국주차군 사령관의 보고 이첩의 건 발간일: 메이지 40년 7월에서 동(同) 41년 1월까지한국에 있어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파견과 동국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체결 1건 발신일: 1907-08-11 수신일: 1907-08-12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 제48호 메이지 40년 8월 11일 한국주차군 사령관 보고 8월 11일 오후 0시 5분 발전(發電) 동 2시 30분 착 강화도(江華島) 증파병은 영등포(永登浦)에 있는 소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오전 9시에 인천(仁川)을 출발함. 원주(原州) 파견대는 10일 오후 3시 30분에 동지에 도착함. 진위대는 부근의 폭도 100명과 함께 8일에 탄약과 피복을 휴대하고 그 대부분이 춘천(春川)으로, 일부가 횡성(橫城)으로 이동하였고 연도에서 금전과 식량을 빼앗았음. 진위대 내에는 정리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고 파견대는 그곳에 주둔하여 정찰중임. 강원도 강릉(江陵) 부근에서 폭도가 일어나 본국인[本邦] 우편배달부를 죽이는 등 형세가 불온한 조짐이 있어서 원산(元山)에서 보병 1개 중대를 동지에 선박으로 수송하여 이들을 진정시키도록 하고자 함.

    202 메이지 40년 7월에서 동(同) 41년 1월까지한국에 있어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파견과 동국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체결 1건

    강화도(江華嶋)와 강릉(江陵) 방면의 폭도 진정에 관한 한국주차군 사령관의 보고 이첩의 건 발간일: 메이지 40년 7월에서 동(同) 41년 1월까지한국에 있어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파견과 동국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체결 1건 발신일: 1907-08-12 수신일: 1907-08-12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 제49호 메이지 40년 8월 12일 한국주차군 사령관 보고 8월 11일 오후 5시 발전(發電) 12일 오전 0시 20분 착 어제 강화도(江華島)의 전투에서 발생한 우리측 병사의 전사자는 군조 1명, 일등병 1명, 이등병 3명으로 합계 5명이며, 부상자는 일등병 4명, 이등병 1명으로 합계 5명임. 인천(仁川) 운수부(運輸部) 출장소에 소속된 자로서 전사자는 수부[水子] 1명, 부상자는 선원 1명, 수부 1명으로 합계 2명임. 적의 사상자는 자세히 알 수 없음. 강릉(江陵)을 진정시키기 위해 원산(元山)에서 파견한 보병중대는 군함 갈성(葛成)호와 협의하여 이에 편승시켜 내일 12일 오전 7시 반에 원산(元山)을 출발하여 강릉(江陵)으로 향할 예정임.

    203 메이지 40년 7월에서 동(同) 41년 1월까지한국에 있어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파견과 동국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체결 1건

    기수 제2149호 강릉(江陵) 부근 폭도 진압을 위해 갈성함(葛城艦)의 동지로의 출발에 관한 좌세보(佐世保) 진수부(鎭守府) 참모장 보고 이첩의 건 발간일: 메이지 40년 7월에서 동(同) 41년 1월까지한국에 있어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파견과 동국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체결 1건 발신일: 1907-08-13 수신일: 1907-08-13 발신자: 외무차관 친다 스테미(珍田 捨己) 수신자: 외무차관 친다 스테미(珍田 捨己) 기밀(機密) 수(受) 제2149호 별지와 같은 전보가 있었음을 통첩해 드리는 바입니다. 메이지 40년 8월 13일 해군차관 가토 도모사부로(加藤 友三郞) 인(印) 친다 스테미(珍田 捨己) 각하[殿] 전보 번역문 8월 11일 오후 11시 9분 좌세보(佐世保) 발 해군차관 좌세보(佐世保) 진수부(鎭守府) 참모장 원산(元山)에 위치한 갈성(葛成)호의 함장이 보낸 다음과 같은 보고를 접했음. 만일을 위해 통보함. 강원도 강릉(江陵) 부근에서 시사(時事)에 분개하여 폭도 수백 명이 집합하였고 우리 우편배달부를 붙잡아 갔으나 생사가 불명임. 또한 폭도는 강릉(江陵)을 점령하여 근거지로 정하고 대거 경성(京城)으로 밀어닥친다는 계획을 가지고 격문을 각 군에 보내는 등 형세가 급박해졌음을 동지의 경무고문(警務顧問) 분견소(分遣所)에서 보고해 옴. 이에 관련하여 경찰관 11명을 편승시켜 동지로 회항함. 폭도진압의 건은 해당 지역의 이사관으로부터 요청이 있음. 또한 육군 보병 1개 중대마저도 편승하여 12일 아침에 출항하여 강릉(江陵)으로 향함. 강릉(江陵)지방에는 본국인이 300명 있다고 함.

    204 메이지 40년 7월에서 동(同) 41년 1월까지한국에 있어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파견과 동국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체결 1건

    강화도(江華嶋) 폭도 진압과 문경(聞慶) 및 통영(統營)진영대(鎭營隊) 해산에 관한 한국주차군 사령관의 보고 이첩의 건 발간일: 메이지 40년 7월에서 동(同) 41년 1월까지한국에 있어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파견과 동국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체결 1건 발신일: 1907-08-12 수신일: 1907-08-13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 제50호 메이지 40년 8월 12일 한국주차군 사령관 보고 8월 12일 오전 8시 50분 발전(發電) 동 일 오후 3시 0분 착 어제 11일에 강화도(江華島)의 폭도를 진정시키기 위해 파견했던 아카시(赤司) 소좌가 이끄는 부대는 동일 오후 4시 반에 상륙함. 앞서 파견한 소대는 이미 10일 오전 8시에 강화부(江華府)를 점령했음. 폭도는 사방으로 흩어져서 현재 행방불명[行衛不明]임. 문경(聞慶)의 진위대는 어제 11일 오후 1시에 무사히 해산을 마침. 통영(統營)진위대는 해산을 위해 어제 11일에 대대본부의 소재지인 대구(大邱)를 향해 출발시켰기 때문에, 통영(統營)에 파견해 있는 우리 요새포병은 그곳에 장교 이하 21명을 남겨 두고 기타는 어제 오후에 철수했음.

    205 메이지 40년 7월에서 동(同) 41년 1월까지한국에 있어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파견과 동국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체결 1건

    강화도(江華嶋) 요란에 관한 한국주차군 사령관의 보고 이첩의 건 발간일: 메이지 40년 7월에서 동(同) 41년 1월까지한국에 있어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파견과 동국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체결 1건 발신일: 1907-08-12 수신일: 1907-08-13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 제51호 메이지 40년 8월 12일 한국주차군 사령관 보고 8월 12일 오후 3시 0분 발전(發電) 동 일 오후 5시 3분 착 강화도(江華島)의 오구라(小倉) 대위의 보고에 의하면 지난 10일에 앞서 파견한 소대가 전투를 벌였을 때 입힌 한국 반도(反徒)의 사상자는 적어도 30명은 된다고 함. 거류 관민은 12명이 있으며 그 가운데 순사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기타는 행방불명[行衛不明]임. 이곳의 진위대장도 행방불명[行衛不明]이며 무기와 탄약을 갖고 도망친 자가 한국병을 합해 600명 이상이 된다고 함. 10일 오후 11시 30분에 홍주(洪州) 진위대의 해산을 마침.

    206 메이지 40년 7월에서 동(同) 41년 1월까지한국에 있어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파견과 동국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체결 1건

    강화도(江華嶋) 진정에 관한 한국주차군 사령관의 보고 이첩의 건 발간일: 메이지 40년 7월에서 동(同) 41년 1월까지한국에 있어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파견과 동국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체결 1건 발신일: 1907-08-13 수신일: 1907-08-13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 제52호 메이지 40년 8월 13일 한국주차군 사령관 보고 8월 12일 오후 9시 45분 발전(發電) 동 일 오후 11시 59분 착 강화도(江華島) 파견대는 한국 경무고문부에서 시행하는 동도의 반병[反兵] 및 폭민의 검거와 아울러 오구라(小倉) 대위가 시행하는 해당지역 진위대의 병기와 피복 등의 정리를 원조하도록 하기 위해 보병 1개 중대를 남겨 두고 기타는 원래의 수비지로 귀환시킴.

    207 메이지 40년 7월에서 동(同) 41년 1월까지한국에 있어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파견과 동국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체결 1건

    통영(統營)진위대 해산과 경성(京城) 및 강화도(江華嶋)의 형세에 관한 한국 주차군 사령관의 보고 이첩의 건 발간일: 메이지 40년 7월에서 동(同) 41년 1월까지한국에 있어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파견과 동국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체결 1건 발신일: 1907-08-13 수신일: 1907-08-14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 제53호 메이지 40년 8월 13일 한국주차군 사령관 보고 8월 13일 오전 10시 40분 발전(發電) 오후 1시 42분 착 통영(統營)(진남(鎭南))진영대(鎭營隊)는 13일 오전 2시에 타이코우(대구)에서 무사히 해산을 마침. 강화부(江華府) 성 내에는 무기와 탄약을 휴대하고 있는 폭도가 잠복하고 있어서 이들을 검거중에 있음. 경성(京城) 부근은 정온함.

    208 메이지 40년 7월에서 동(同) 41년 1월까지한국에 있어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파견과 동국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체결 1건

    원주(原州) 및 강화도(江華嶋) 경비에 관한 한국주차군 사령관의 보고 이첩의 건 발간일: 메이지 40년 7월에서 동(同) 41년 1월까지한국에 있어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파견과 동국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체결 1건 발신일: 1907-08-14 수신일: 1907-08-14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 제54호 메이지 40년 8월 14일 한국주차군 사령관 보고 8월 13일 오후 9시 40분 발전(發電) 11시 20분 착 원주(原州) 파견대는 당분간 해당지역 부근에 주둔하면서 횡성(橫城), 안흥(安興), 평정(平正) 부근에 있는 폭도의 정황을 정찰하고 필요하다면 진압에 임하도록 함. 강화도(江華島)의 파견대는 보병 1개 중대를 남기고 기타는 오늘 오후에 원대로 복귀했음.

    209 메이지 40년 7월에서 동(同) 41년 1월까지한국에 있어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파견과 동국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체결 1건

    강릉(江陵) 부근의 형세에 관한 갈성함(葛城艦) 함장의 보고 이첩의 건 발간일: 메이지 40년 7월에서 동(同) 41년 1월까지한국에 있어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파견과 동국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체결 1건 발신일: 1907-08-15 수신일: 1907-08-15 발신자: 외무차관 수신자: 외무차관 기밀(機密) 수(受) 제2169호 별지와 같이 갈성(葛城)함대의 함장으로부터 전보가 있었으므로 이에 통첩해 드리는 바입니다. 메이지 40년 8월 15일 해군차관 가토 도모사부로(加藤友三郞) 인(印) 외무차관 친다스테미(珍田捨己) 각하[殿] 전보역 8월 14일 해군대신 앞 갈성(葛成)호 함장 어제 13일 오전에 도착함. 강릉(江陵)에서 1리의 지점에 있는 안목에 이르러 육전대(陸戰隊)를 상륙시킴. 연안은 이상이 없음. 이어서 육병[陸兵]을 양륙(揚陸)하고 육전대(陸戰隊)는 교대로 귀함(歸艦)함. 또한 오후에 하사관[士官]을 강릉(江陵)에 파견하여 정찰하게 하였으나 동지에는 아직 폭도가 모여 있다거나 봉기도 없어서 본국[本邦] 재류 관민은 무사함. 평창군(平昌郡)에는 관병과 민병 3,000명이 모여 있다는 풍설이 있음. 도우단 우편수취소 직원인 본국인[邦人] 2명은 이미 살해되었음. 또한 의병은 강릉(江陵)을 근거지로 삼을 계획이었으나 일본군이 상륙한다는 사실을 탐지하고 점령 계획을 중지한 것으로 보임. 강릉(江陵)은 본함(本艦)의 회항과 육상병의 내착(來着)에 의해 정황이 정온을 되찾았음. 또한 육병은 오늘 새벽에 진부역(鎭埠驛) 방면에 이르러 폭도의 정황을 정찰하고 임기응변의 대책을 강구하여 상당한 타격을 입힐 계획이라고 함. 이 부근에는 구축함, 수뢰정(水雷艇)이 피박(避泊)할 만한 곳이 없음.

    210 메이지 40년 7월에서 동(同) 41년 1월까지한국에 있어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파견과 동국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체결 1건

    경성(京城) 부근의 형세에 관한 한국주차군 사령관의 보고 이첩의 건 발간일: 메이지 40년 7월에서 동(同) 41년 1월까지한국에 있어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파견과 동국 황제의 양위 및 일한협약체결 1건 발신일: 1907-08-14 수신일: 1907-08-15 발신자: 외무대신 수신자: 외무대신 참1발 제55호 메이지 40년 8월 14일 한국주차군 사령관 보고 8월 14일 오전 11시 21분 발전(發電) 오후 3시 착 어젯밤 이래로 각지 모두로부터 새로운 보고에 접하지 못함. 경성(京城) 부근은 정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