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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 : 1936-03-15 ~ 193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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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 : 1936 년 03 월 15 일 기사 18 건

    번호 신문명 기사제목 기사내용
    한민 臨時政府의 積極活躍

    軍事施設과 外交進行에 全體閣員이 苦心努力함
    世界의 風雲은 날로 緊迫하여져서 우리가 期待하는 大戰의 爆發이 目睫에 달린 것을 看破한 우리 臨時政府에서는 우리의 運命을 決할 全國民의 總動員에 應付할 準備를 銳意로 進行하고 있는바 其中에도 軍事의 施設과 外交의 進行을 더욱 必要하게 생각하므로 此에 對하여 全體 閣員이 一意로서 積極勵行하는 중이라 한다.

    한민 美洲國民會의 壯한 歷史

    二十七年間을 하루같이 倭胞의 公共事業에 專力
    距今 三十餘 年 前부터 우리 靑年들이 學業을 目的하고 渡美하기 시작하여 開發會社의 農夫로 募集되어 『하와이』와 墨西哥(멕시코)에 와 있다가 다시 美洲로 건너온 同胞가 많아짐을 따라 生疏한 땅에 와서 生道가 末由하고 또는 迷路에 들어 自救之策이 없는 同胞를 위하여 指導와 救濟의 事業을 아니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紀元 四二三五年 卽 西曆 一九○三年에 親睦會가 組織되고 二年 後에 다시 共立協會로 變하였다가 四二四二年에 『하와이』에 있던 合成協會와 前興會와 合하여 國民會가 組織되고 그 이듬해에 다시 美洲에 있던 大同輔國會와 合하여 大韓人國民會라 하였으니 이것이 今日까지 美洲의 우리 韓人社會를 支配하고 있는 中心機關이다
    이 國民會의 全盛時代에는 全美洲는 勿論이요 멀리 遠東俄領(러시아령)에도 三十餘 個所의 支會가 設立되어 一時는 在外同胞의 總機關이 되었다. 이 會에서 하는 事業은 新到同胞의 各項便宜를 供給하고 殖產과 敎育을 主重하는 外에 祖國과 光復事業에 熱中하여 金錢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三一運動 以後 우리 臨時政府에 對한 그 誠意를 보아도 그들의 가슴에 타오르는 愛國思想을 足히 證明할 수 있다.
    더욱이 그들의 事業을 繼續할 第二世國民 敎育에 置重하는 中에도 國語普及을 熱心으로 하는것은 가장 敬賀할 일이다.
    今年度 總會任員은 總會長과 副會長은 仍任된 바 總會全體任員의 姓名은
    總會長 崔鎭河(최진하)
    副會長 任正九(임정구)
    總務 廉萬錫(염만석) 書記 金勛(김훈)
    財務 李超(이초) 學務 黃思宣(황사선)
    法務 車義錫(차의석) 救濟 申翰(신한)
    實業 梁柱恩(양주은)
    等 諸氏오. 그리고 總會長이 다시 就任하는 席上에서 發表한 今年度 行政方針은 左와 같다.
    一. 老年同胞의 救護
    二. 二世國民의 敎養
    三. 臨時政府의 擁護

    한민 布哇(하와이)國民會의 會務發展

    在留同胞들의 福利를 爲하여 幹部 諸氏가 不斷히 苦心勉力
    『하와이』 는 六千의 우리 同胞가 居留하는 곳이다. 同志會 愛國婦人會 團合會 敎會 基督學院等 各團體와 機關이 많이 있고 全體僑胞의 行政機關으로는 國民會가 있으니 國民會가 年前에 獨立團으로 더불어 統一組織을 이루는 後부터는 더욱 擴大되고 融和한 中에서 一新한 面目으로써 在留同胞의 公共事務를 爲하여 一般職員이 不眠不休로 苦心 勉力하여 잘 進行中이다. 今年度의 任員改選을 行한 結果原任 總會長 林成雨(임성우)氏는 解任되고 總會長 以下 諸任員이 左와 如히 當選되었다.
    總會長 趙炳堯(조병요)
    總務 朴尙河(박상하) 書記 黃仁煥(황인환)
    財務 朴成雨(박성우) 法務 金元用(김원용)
    學務 鄭斗玉(정두옥) 聯務 李正健(이정건)
    靑年 揚裕贊(양유찬) 實業 權道仁(권도인)
    社交 朴鳳楫(박봉즙) 外交 趙濟彥(조제언)
    『하와이』에 居留하는 同胞는 大部分이 開發會社 時代에 돈벌이를 目的하고 와가지고는 갖은 苦生을 하면서 生活의 根據를 이루고 敎育事業에 置重한 고로 지금은 比較的 進步된 社會를 形成한바 往往히 意外의 過多한 金額을 負擔하게 되어 物力이 많이 減損되는 일도 없지 아니하나 一體의 公益事業과 光復運動의 金錢을 아끼지 아니하니 臨時政府에 對한 義務를 行하는 것과 이따금 某種의 特務事業의 資金을 調達한 것 等이 一例가 될 것이다.

    한민 猛血團員被逮의 裏面

    韓奸漠奸의 搖尾盡思으로 倭警은 無難히 四人을 逮捕
    本埠를 根據로 한 黑色份子와 및 그와 合流하는 몇사람은 天眞爛漫한 熱血的 靑年을 糾合아야 猛血團을 組織한 後에 本埠僑胞中 若干의 金錢이라도 있는 者에게는 不問曲直하고 威脅恐喝로서 金品을 强要하다가 上月 二十二日에 그 團員 柳瀅錫(유형석)이 敵에게 被逮되고 그 後 本月 五六 兩日에 繼續하여 該團員 韓道源(한도원) 金勝恩(김승은) 金昌根(김창근) 吳冕植(오면식) 等이 被拘된 바 그 後 四人의 被逮되던 特別한 經緯만을 말하려 한다. 본대 猛血團에서는 該團의 所定한 工作을 實行하는 同時에 南方에 가 있는 某氏를 電促하여 그가 왔으나 住所의 秘密로 因하여 彼此에 만날 길이 없으므로 該團員 韓道源(한도원)이 某氏를 찾고자 그의 親한 者의 집을 찾아간즉 마침 主人이 出他한지라. 韓은 面曾할 時間을 指示해 달라고 글자를 적어놓고 왔다. 그 뒤 本月 五日에 韓이 다시 간즉 그 者는 없고 當夜 十一時에 虹口靺咖啡店에서 面談하자고 글자를 적어 놓았다. 그래서 韓은 某咖啡店에 갔으나 그를 만나자는 者는 보지도 못하고 倭警察에게 拘捕되고 말았다 한다. 意外에 힘 안들이고 韓을 拘捕한 倭警察은 該團員을 全部 一網打盡할 計劃을 세우고 活動을 開始하려 하였으나 中國公安總局에 交涉하면 무슨 障礙가 있을까 하여 閘北分局長 梁哥(倭女와 산다는 말도 있음)를 利用하였다. 梁哥는 그 날 새벽 세시에 部下 五人을 倭警에게 주어 제 管轄도 아닌 南市에 와서 金勝恩(김승은)을 逮捕하고 그 밝는 날 곧 六日 下午 一時許에 또 같은 手段으로 倭警察을 協助하여 南市 江陰街第一茶樓에서 吳冕植(오면식) 金昌根(김창근) 二人을 逮捕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金의 猛烈한 對抗으로 倭놈도 數人이 重傷되었으나 도리어 中國察側에 重傷者가 더 많이 났으며 甚히 危篤한 境遇에 까지 이르렀다 한다.
    그런데 倭新聞의 報道에 依하면 吳는 有吉暗殺未遂案과 玉觀彬(옥관빈) 等 暗殺案에 關聯이 있다 하며 또 金昌根(김창근)은 李泰瑞(이태서) 暗殺事件의 直接下手者라고 하니 만일 그것이 事實이라 하면 이번에 이러한 일로 倭에게 잡힌 것은 可惜한 일이라 하겠다.

    한민 社告

    本寺에서 이제 이 新聞을 發行함에 對하여 우리의 그 먹은 뜻은 크나 지금 敵에게 부대껴 지내는 現象이니만치 모든 事情이 지극히 艱苦하여 小形의 新聞이나마 本來는 二月에 發行하려던 創刊號도 豫期한 대로 되지 못하고 지금에야 비로서 첫 號를 發行하였으나 亦是 不備한 點이 많음을 스스로 느끼는 바입니다. 本社의 事業이 發展되고 各般事情이 許하는 限에 있어서는 本報를 大規模로 하여 每日刊으로라도 할 計劃이지만은 아직도 ●般이 草創한 時期요 또 各項事情이 許諾지 않으므로 當分間은 不定期刊으로 하여 可及的 자주 發行하려 하지만 不得已하면 다만 一月에 一號를 發行하면서라도 本報의 初志만은 貫轍하려 하오니 海諒하시기 바라오며 또 本報는 韓國民族의 純正한 基本精神을 發揮하며 祖國光復事業의 指路者가 되어 忠實한 任務를 克盡하기로 自誓하오니 滿天下에 散在한 愛國同胞는 本報에 對하여 萬斛의 同情을 表하여 주시고 이를 북돋으고 물 부어서 本報로 하여금 健全한 發展을 遂하여서 우리 民族의 代言者가 되며 運動界의 䁱鍾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祈望하는 바이외다. 精神上과 物質上 各方面으로 援助하여 주실 것은 勿論이려니와 아름다운 記事의 材料가 될만한 좋은 消息과 紙面을 充實히 할 貴한 作品도 많이 供給하여 주시는 것을 萬端으로 歡迎하는 바이외다. 다시 한 말씀 告하는 것은 本報를 本是 純國文으로 하려 하였으나 아직 國文活字가 完備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漢文을 ●用 해온 바 앞으로 國文活字가 完備되는 대로 純國文으로 發行할 것을 預告하여 두나이다.

    한민 韓民社

    우리는 革命的 手段으로써 원수 日本의 모든 侵奮勢力을 撲滅하고 國土와 主權을 完全光復하자. 그리고 政治 經濟 敎育의 均等을 基礎로 한 新民主共和國을 建設하여 國民各個의 均等生活을 確保하자.
    國家主權光復의 革命的 意識이 强한 同志는 다 한 旗幟下에 모여 力量을 總集中하자.
    嚴密한 組織下에서 民衆的 反抗과 武力的 破壞를 積極進行하자.

    한민 그리운 祖國은 燦爛한 光復의 길로

    民衆은 鬥爭에 激烈하고 倭敵은 防備에 헤매인다
    一九三六年의 危機를 넘고 저 資本帝國主義列强은 極端의 苦悶을 하며 모든 被壓迫民族은 이 危機로써 自己네 祖國光復의 絶好의 機會라고 認하고 猛烈히 活動하고 있으니 이는 敵의 危機가 我의 好機가 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敵이 崩壞할 時期에 이르지 아니하면 我의 猛活動도 完全한 成功을 收하기 難하니 歐戰後의 愛爾蘭(아일랜드)이 그러하였고 또 我에게 好機가 來하더라도 이에 應付할 만한 組織과 計劃이 無하면 亦是 失敗되고 마나니 歐戰後의 猶太(이스라엘) 建國運動이 그러하였다. 무릇 侵略國과 殖民地間의 鬥爭은 반드시 文化 軍備 財政 그것만으로 決定되지 아니한다. 萬一 이것만으로 決定된다하면 日本에 對한 우리의 鬥爭은 成功할 希望이 渺然하다. 壓迫國을 打倒하는 被壓迫國의 勝利의 揵徑은 自身의 緻密한 計劃과 强有力한 組織으로써 敵이 그 被壓迫 民族을 緊縛한 그 鐵鎖의 弱한 구석을 찾아서 猛烈히 끊어버리면 그 壓迫國은 마치 모래로 洪水를 막는 것과 같이 애만 쓰고 거꾸러질 뿐이다. 보라 美國의 모든 條件이 英國 보다 優越한 까닭에 完全한 獨立國을 建設한 것이 아니며 俄國(러시아) 無產階級의 모든 條件이 勃興期에 있는 該國의 帝國主義 보다 優越하여 로마노프王朝를 打倒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제 强盜 日本은 沒落期에 있어서 最後의 喘息을 하고 있다. 그 自身이 內包하고 있는 모든 矛盾은 漸漸 尖銳化하여 右翼分子는 軍人中의 不平分子와 結托하여 날로 跋扈를 極하고 있으며 表面으로 鎭壓된 듯한 無產大衆의 革命的氣勢는 地下에서 높아가고 있나니 右翼의 發動으로 이루어진 二二六叛亂中에 多數한 赤色分子가 被逮된 것은 이것을 證明한다. 이와 같은 左右翼의 同床異夢的 合奏曲에 極端의 不安을 느끼고 있는 日本은 九一八事變 以後로 國聯과 海軍會議에서 斷然脫退하고 中國의 市場을 獨占하고자 하다가 列强의 猜忌를 받아 國際的으로 狐立하매 世界에 對한 戰爭을 覺悟하고 孤注一擲의 決心으로 最大冒險을 하고 있다. 그러나 日本도 그 本來의 目的이 單純히 제 內部의 矛盾을 緩和하며 歐美列强의 國際間軋轢을 잘 利用하여 大陸政策을 徐徐히 實行하라 하던 것이 九一八事變으로 弄假成眞이 되며 右翼의 過早한 發動으로 이제는 對華侵略을 積極實行하지 아니할 수 없게 되었다. 그 結果로 日本이 亡할 危險이 있는 것을 日本自身이 모르는 바 아니나 그래도 國際的 關係를 多少融和시켜서 저희의 準備를 좀 더 充實히 하고자 過渡期의 傀儡物을 造出한 것이 軍部任命의 廣田內閣이다. 從此로 所謂天皇은 헛개비에 不過하게 되었으니 日本파시스트의 計劃은 廣田內閣으로써 政府內外에 있는 從來의 高等官을 全部 驅逐하고 그 代에서 派送한 人物을 選任하며 甚하면 所謂天皇까지 廢하고 秩父宮이라는 것으로 搆政을 시키고 또 財閥의 財產을 强押하며 增稅를 斷行하며 公債를 濫發하여 그 所得으로써 軍備를 大擴張하고 그 다음에는 파시스트가 眞面目을 내놓고 軍政을 全部 專橫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미 神으로 崇拜하던 所謂天皇의 威信이 一落千丈하여 叛徒가 그 勅語를 방귀같이 알게 되었고 또 軍人이 全部 紀綱을 잃고 叛亂일으키기를 恆茶飯으로 하니 그 國家가 表面으로 一時小康을 얻는다 하여도 何時何地 에서든지 槍劍만 있으면 叛亂을 또 일으킬 것은 分明하다.
    이와 같은 現象에 處하여 苦悶과 恐慌과 發惡을 거듭하고 있는 强盜日本의 우리를 얽고 있는 鐵鎖는 漸漸 弱하여진다. 우리가 찾고자하던 그 弱한 구석은 눈으로 볼 수도 있고 손으로 더듬을 수도 있다. 이에 우리 祖國은 光復의 길로 漸漸 가까이 向하게 된다. 淸晨의 寂寞을 破하고 莊嚴하게 울려오는 聚軍 喇叭소리 四方에서 猛烈히 일어나는 革命의 烽火이는 우리에게 絶好한 機會의 來到함을 報하며 組織있는 戰鬥를 재촉한다.
    이에 順應하기 爲하여 光復運動最前綫에 站在한 眞摰한 鬥爭分子는 우리의 陣營을 爭化하여 過去의 失敗를 다시 거듭하지 아니하고자 臨時政府와 國民黨을 强化或新組織하였다. 이 黨政機關을 領導하는 光復運動의 先輩들은 最後의 覺悟로써 犧牲的貢獻을 하고 있으며 熱烈한 靑年同志는 決死的 精神으로 奮鬥하며 不休的 努力으로 이 黨政機關을 支持하고 內外의 鬥爭民衆은 希望과 慰安과 感謝로써 熱烈히 이것을 擁護한다. 이는 海外에 表現된 반가운 現象이어니와 그 鬥爭民衆은 海內에서도 海外와 互應하여 猛烈히 敵을 向하여 衝鋒을 하고 있다. 滿洲方面으로 進攻하는 獨立軍의 動作은 더욱 活氣를 呈하고 있으니 지난 四日에 李鶴鎬(이학호) 吳昌信(오창신) 兩武裝同志가 不幸히 楚山에서 俘虜가 되었으니 그 後에도 더욱 猛烈히 進攻함은 事實이다. 本月 七日에는 京城飛行場格納庫에서 불이 나서 敵의 軍用及旅客用 飛機 十餘台가 燒盡하였는데 그 原因은 아직 未詳하나 이것이 排日分子의 行動임은 推測할 수 있다. 또 같은 날에 倭總督府는 十三道 警察部長을 京城에 召集하고 非常時에 善處할 要訣을 주었다 하며 同時에 地域的으로 警備動員計劃을 세우기로 하였는데 爲先咸平黃等北部五道에 對한 計劃은 完成하였다. 이것은 非常時 或 戰時에 處하여 警察을 軍事化하는 計劃이라 한다. 이 外에 또 놈들은 저의 陸軍省으로부터 機關銃 五十挺을 받아서 國境에 配合하였다 한다. 또 그 警察部長會議에서는 自今 以後로는 左翼分子의 活動은 큰 危險이 없을 것인즉 光復運動取締에 對하여 全力을 다하자고 決定되었다 한다. 이로써 外人이라도 韓人의 鬥爭이 如何한 方面에서 如何히 强進함을 아는 同時에 倭敵이 防備하기에 헤매는 것을 웃을 것이다. 우리 黨政의 組織은 더욱 强固嚴密하며 民衆은 鬥爭巨熖은 날로 盛하며 倭敵은 마디마디 끊어지려 하는 鐵鎖를 얽어 매고자 死力을 다한다. 이것이 倭敵의 危機요, 韓人의 好機니 우리 韓人은 이때에 마땅히 燦爛한 祖國光復을 爲하여 한손에 長劍을 빼들지 않을 수 없으며 將來의 榮華로운 勝利를 爲하여 祝盃를 높이 들지 아니할 수 없다. 우리의 앞길은 광명하고 우리에게는 成功이 있을 뿐이니 아무 주저할 것이 없다.

    한민 列國의 對日聯合戰線

    沒落期에서 最後發惡을 하고 있는 日本帝國主義를 打倒하기 爲하여 世界의 列强이 聯合陳線을 形成하는 傾向이 有함은 一般이 共知하는 바이거니와 其中에도 英·俄(영국·러시아)의 合作은 漸漸顯著하다. 向者倫敦에서는 先皇의 葬禮에 參與하였던 俄外長을 英皇이 親히 接見하고 長時間의 密談을 行하는 同時에 一邊兩國政府間에는 空軍에 對한 默契가 成立됨을 報하더니 最近에는 滿洲에서 英·俄(영국·러시아)兩國間에 情報交換에 對한 密約을 締結하였다한다. 이 密約이 成功된 後에 俄國(러시아)은 滿洲에 있는 領事館을 次第로 撤廢하는 中인데 傳하는 바에 依하면 그 密約의 內容은 如左하다 한다.
    滿洲에 있는 英國總領事館은 蘇俄(러시아)가 滿洲에서 總領事館을 撤廢한 後에 蘇俄(러시아)에 對하여 左에 關한 諸項을 履行하기를 承諾하였으며 또 日本의 對華侵略政策에 對하여도 兩國의 大使館及總領事館은 各其嚴密히 調査硏究하며 彼此에 率直한 情報의 交換을 行하기를 密約하였다 한다.
    一. 蘇俄(러시아)情報員의 保護
    二. 日·滿(일본·만주)間의 政治 經濟狀況調査報告
    三. 在滿 日本軍의 行動調査報告
    英·美(영국·미국) 兩國間에도 共同步調를 取하기로 內約되어 比律賓(필리핀)과 新嘉坡(싱가포르)가 서로 呼應하여 鞏固한 軍事根據地를 만들며 香港(홍콩)의 英國當局은 非常時의 必要를 爲하여 廣東當局과 더불어 兩地의 共同防守를 約하고 甚至於 廣九鐵路를 ●漢鐵路에 接軌하여 非常時의 聯絡을 取하려하나 此에 對하여는 廣東當局에서 아직 考慮中에 있다고 한다.

    한민 申采浩(신채호)氏 長逝

    大運 敵刑務所에서 五年間이나 服役하고 있던 丹齋 申采浩(신채호)氏는 腦溢血로 지난 二月 二十二日에 不幸히 逝去하였다. 그는 일찍이 大韓每日申報의 主筆로서 많은 功績이 있고 合倂 當時에 中國에 와서 著書와 其他의 運動을 하였는데 中年에 無政府主義者들과 關係되어 某種의 行動을 하다가 그만 逮捕되어 役七年의 判決을 받았던 것이다.

    한민 罪惡滿盈의 韓奸李雄輩(이웅배)

    李雄(이웅)이란 者의 本名은 林炳雄(임병웅)이며 又一 假名은 王中一(왕중일)이니 그놈은 일찍이 北間島에서 恩眞中學을 畢業하고 그 後에 卽時 北平으로 와서 某大學에서 約 一年間 肄業하다가 忽然히 異想天開의 大抱負를 가지고 距今 六七年前에 山東省으로 가서 獨立運動을 팔고 마침 金錢을 挾雜한 까닭에 그 者가 五年前에 上海에 왔을 적은 우리 民團에서 嚴懲하고자 그 者를 잡으려 하였으나 그 者는 慌怯해서 卽時逃走하였다. 逃走한 그 者는 豺狼의 맘을 버리지 못하고 昨夏에 또 南京에 들어가서 毒計를 試驗하다가 다 失敗하고 北方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昨年 十二月 初旬에 또 다른 韓奸 鄭鳳珍(정봉진) 又名茂林(무림)이란 者를 데리고 上海에 와서 好華로운 旅館 新亞酒樓에 投宿하였다. 鄭哥는 日本士官學校 出身이라하며 數年前에는 劉珍年의 幕下가 된 일도 있다고 한다. 그 者들은 그 旅館에서 韓國獨立運動者를 害하며 또 中國의 抗日分子로 假裝하고 倭敵의 公私機關을 破壞하는 체하여 中·日(중국·일본)間에 問題를 ●起하여 倭敵에게 要挾할 口實을 주려하였다. 그러나 天幸으로 그者들은 同月 十五日早朝에 公共●界警察에게 拘捕되어 預定하였던 陰謀는 事前에 防止하게 되었다. 그 者들은 卽時 倭領館으로 引渡된바 그 當時에 炸彈十枚와 日貨 二千六百元까지 押收를 當하였다 한다. 傳說에 依하면 그 者들이 天津方面에서 南에 向할 때는 所持品이 炸彈卌枚와 現金(日貨) 一萬二千元이 있었다 한다. 倭領館에 引渡된 後에 鄭哥는 平素聯絡이 있던 關係上 一週만에 出獄되고 李哥만은 始終實吐를 않고 도리어 逆襲을 한 까닭에 拘捕된 지 約一個月만에야 出獄하였으니 萬一 그 者가 일찍이 倭軍部側의 使命을 가지고 온 것을 言明하였더라면 李哥도 速히 出獄 되었을 것이다. 李哥는 出獄하면서 卽時 南京으로 가서 같은 故鄕에서 같은 學校에 다니던 某某와 함께 尖角營六號에 居住하면서 所企의 奸計를 試驗하려다가 當局의 嚴重한 警戒으로 束手無策의 境에 處하매 近日에는 京滬 津浦兩鐵路上으로 僕僕出沒하고 一定한 場所에 長住하지 아니 한다는데 그의 親友되는 者들은 忽然히 李雄(이웅)을 저희 스스로 嚴重處治하여 다스리지 못하게 된 것처럼 擴大宣傳을 하는 듯하나 最近에도 그 者를 본 사람이 있다 하니 우리는 어느 말을 믿을런지 아직 判斷하기 괴롭거니와 그 者의 蹤跡을 確實히 判斷하지는 못할 때는 그 무리의 譎計의 有無를 더욱 警戒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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