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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 : 1936-03-15 ~ 193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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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 : 1936 년 03 월 15 일 기사 18 건

    번호 신문명 기사제목 기사내용
    1 한민 創刊辭


    歲月은 永遠에서 永遠으로 살같이 흐르고 있다. 歷史의 바퀴도 흐르는 歲月과 함께 끊임없이 돌고 있다. 그 가운데서 우리 人生은 살기 爲하여 좀 더 잘 살기 爲하여 努力하고 奮鬥하고 進化하고 있다. 人類의 歷史는 좀 더 잘 살기 爲한 鬥爭의 記錄이다. 이 鬥爭에 勝利의 月桂冠을 奪得한 者는 제가 굴리던 歷史의 바퀴를 燦爛히 꾸미었고 이참에 敗한 者는 도리어 그 바퀴에 갈리어서 다시는 何等의 記錄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中古以前의 우리 祖上은 自己네의 잡았던 歷史의 바퀴를 確實히 燦爛하게 굴리었다. 그들은 凱旋將軍이었다. 그들은 果然 잘 살았었다. 그들은 시베리아 滿洲들로부터 濟州島 漢拏山까지 廣大한 땅 위에 나라를 세웠었다. 남부럽지 아니한 文物과 制度를 갖추고 精銳한 軍備까지 兼하여 東으로 倭를 壓倒하고 西로 隋, 唐의 百萬大軍을 殲滅하였다. 이에 四海가 瞻仰하고 諸隣이 畏懼하여 所過의 無敵이었다. 어느 때는 南疆의 兄弟가 江南들에 大徐國을 建設하여 海外發展에 努力한 일도 있고 또 어느 때는 北疆의 兄弟가 山海關을 넘어 中原大地에 深入하여 遼, 金, 淸 等의 나라를 세우고 四萬萬漢族을 號令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中古以後의 우리 祖上은 多部分이 昏暗하였다. 그들은 完全한 敗北者이었다. 그러하되 自己네들이 敗北者임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였다. 그 얼마나 가엷은 일이랴! 그들은 임금에게 忠誠할 줄을 알되 나라가 무엇인지 몰랐다. 父母에게 孝道할 줄을 알되 民族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오직 明, 淸이 있는 것만 알고 世界가 있는 것을 몰랐다. 倭奴라는 것은 의례히 蔑視할 物件이라고만 생각하고 壬辰의 恨을 씻어 볼 것은 꿈도 꾸지 아니하였다. 江華島의 法兵船(프랑스 병선)과 大同江의 美軍艦이 그들에게 世界를 認識할 만한 注意를 喚起하였으나 그들은 이것을 拒絶하고 그대로 눈을 감고 살아왔다. 그 結果는 畢竟庚戌의 慘禍까지 招致하여 그들은 生의 戰場에서 살아지는 同時에 한껏 子孫萬代에 羞辱을 끼치고 말았다.

    只今 우리는 如斯히 中斷된 그 恍惚하고 꽃 답던 歷史의 軌道를 無窮한 將來에 延長하며 또 虛無하게 잃어버린 그 燦爛하고 榮光스럽던 歷史의 바퀴를 다시 찾아서 이 軌道 위로 굴리고자 奮起하였다. 上古에 우리 祖上이 이루어 놓은 그 거룩한 事業을 現世에서도 이루고자 奮起하였다. 다시 말하면 우리도 사람다운 사람노릇을 하며 남과 같이 살아보기 爲하여 奮起하였다. 이것을 爲하여는 水火地獄도 不避할 것이며 粉骨碎身도 辭讓치 아니할 것이다. 이것을 爲하여 決死的 鬥爭을 함은 人類의 當然한 權利며 義務다. 묻노니 敢히 이 權利를 抛棄할 者가 누구며 相當한 義務를 履行치 아니하고 能히 이 權利를 獲得할 者 이 또 누구냐?

    資本 帝國主義가 勃興하기 始作한 뒤부터는 侵略과 掠奪의 方式이 가장 科學的으로 가장 組織的으로 가장 緻密하고도 狡滑하게 行하여 正義 人道의 假面下에서 弱肉强食의 惡則은 漸漸 尖銳化하며 深刻化하여왔다. 過去의 掠奪者는 人의 國을 倂呑함에 그 統治權을 强取할 뿐이더니 現代 帝國主義者는 이것만에 滿足하지 아니하고 그 民族까지 滅하고 만다. 그러나 銃과 劍으로써 이 目的을 到達하랴. 하지 아니하고 政治的 壓迫과 經濟的 搾取에 依하여 被征服者를 自滅하게 하나니 이는 비록 그 國을 倂할지라도 그 族을 不滅하면 그 國이 畢竟復興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現代에 處한 우리는 國이 無하면 族을 保하기 不能하고 族을 保치 못하면 生을 得하기 末由하다. 然則 우리 革命運動의 究竟目的이 生을 求함에 不外한 것은 三尺童子라도 明知하는 바이거늘 今日 所謂 某某主義者 輩는 生을 求하면서도 國을 忽視한다. 이것은 葬禮를 行하는 者가 屍體를 忘却함과 같으니 이것이 所謂本領을 이른 運動이다.

    보라. 半島江山 三千里의 慘憺한 情境을! 强盜 日本에게 韓國이 倂呑된 뒤 三十年에 敵은 上下一致하여 各層各階級이 우리를 一齊히 進攻하고 있다. 敵의 齷齪스런 滅種政策은 各方面으로 우리 政治를 蹂躪하며 우리 經濟를 破滅하며 우리 文化를 抹殺하여 우리를 무덤의 길로 驅逐하니 우리는 남과 같은 榮華를 누리기는 姑捨하고 最小限度의 生存도 圖하기 不能하다. 이것은 우리가 共同히 體驗하고 있는 바이니 다시 事實을 列擧하고 統計數字를 提示하여 證明할 必要를 感치 아니한다. 다만 우리가 討論하는 要點은 如何한 手段이라야만 敵의 모든 侵奪勢力을 能히 撲滅하고 잘 살아 갈 수가 있으랴 함에 있다.

    敵을 撲滅함에는 두말할 것 없이 革命的 手段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敵에게 哀乞하여 祖國을 光復할 수도 없고 敵에게 請願하여 生存權을 獲得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革命的 手段으로 敵을 撲滅하고 政治·經濟·敎育의 均等을 基礎로 한 民主共和의 完全한 獨立國家를 建設치 아니하면 幸福스러운 生活을 할 수 없다. 萬一 三千萬의 巨大한 韓國民族이 다른 諸民族과 共榮을 圖치 못하면 그 世界는 到底히 平和로운 世界가 될 수 없다. 假使 남들이 指鹿爲馬로 강잉히 그 世界를 平和롭다 할지라도 우리와는 何等의 關係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自身의 完全한 生存權을 享有치 못하면 世界의 幸福을 論할 餘裕가 없다. 韓人으로서 이것을 非難하며 拒否할 者가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想像하지 못할 바이다. 그러나 우리의 運動界는 混沌하고 複雜하여 只今 邪說이 橫行하니 어찌 寒心치 아니하랴!

    現在 우리 陳中에는 數種의 魍魎이 出沒하고 있다. 첫째는 우리 民族의 力量이 不足하니 敵의 諒解下에 合法的 運動을 繼續하여 階段的으로 獨立運動을 成功하자는 邪說을 流布하여 永遠히 敵의 奴隸가 되려 하는 者이다. 이 部類에 屬하는 魍魎輩는 海外에 比較的 稀少하며 또 容易히 그 正禮를 감추지 못함으로 그 害毒을 受하는 者가 도리어 적다. 그러나 第一 危險한 것은 우리 陣中에 潛伏하여 歷史的으로 系統的으로 組織的으로 우리 陳線을 가장 混亂하게 하며 莫大한 毒素를 不絶히 放射하면서 있는 저 民族運動의 假面을 쓰고 贋造한 祖國光復의 屛風속에서 統一의 喇叺을 불면서 其實은 全民族을 끌어서 赤俄의 傀儡를 만들고자 하는 魍魎輩이니 우리는 이것을 크게 警戒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들은 國民代表會로써 統一을 假借하여 民族陣營을 破壞코자 하였으며 單一戰線의 招牌를 들고 獨立黨 促成會를 造成하였다. 國民代表會에 속아본 眞正한 獨立運動者는 彼等의 陰謀를 發見하자 卽時彼等과 關係를 斷絶하였다. 彼等은 이것을 奇貨로 엮어 留滬 韓人獨立運動者同盟을 亂組하여 그 名稱을 盜用하였고 이제 또다시 그와 같은 手段으로 大活動을 繼續하고 있다. 이것이 어찌 一時一隅의 偶然한 事實이랴! 內地에서 新幹會 北滿에서 親民府 南滿에서 國民府 等이다. 그 毒素로 因하여 消滅되고 그 外에도 內外地의 大小民族陣營이 또한 그 毒素로 因하여 破壞된 것이 非一非再하다. 그들은 자라와 같이 時機를 엿보아 自己에게 利하면 목을 내밀어 公共然하게 赤俄를 祖國이라고 絶叫하며 民族運動者打倒를 主張하며 世界革命만을 謳歌하며 日本無產者와 握手하기를 懇切히 鼓吹하되 萬一 時勢가 不利하면 突然히 목을 움츠리고 民族運動으로 保護色을 삼은 뒤에 四方에 出沒하면서 傳統的으로 預備하였던 그 毒素를 다시 펴서 우리 鬥士들을 昏迷케 한다. 그리하여 健忘症이 많은 우리 同志들은 畢竟 過去의 쓰라린 經驗을 一切忘却하고 그 妖言邪說에 또 속고 만다. 아아 是可 忍인된 孰不可忍가!

    本報는 이에 느낀 바 있어서 毅然히 出世하였다. 비록 우리 同人의 力量이 不足하며 才質이 ●薄하니 切迫한 環境은 우리 同人으로 하여금 다시 더 沈默하기를 許치 아니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一切를 不顧하고 見義思勇의 一片赤誠으로 憤然히 蹶起하였다. 우리는 上述한 모든 邪說을 排擊하고 우리 革命의 眞正한 理論을 把握하며 提倡하여서 우리 光復運動의 耳目이 될 責任을 自負하고 꾸준히 努力奮鬥하기를 滿天下同志 앞에 힘 있게 盟誓한다. 우리 同人이 비록 不似하나 우리의 熱血과 自信과 勇氣만은 우리의 祖宗이 陰祐하며 우리의 先烈이 愛護할 것이니 우리의 前途는 光明하고 坦坦하다. 進하여 取하매 何强을 挫치 못하며 退하여 守하매 何物을 畏하랴! 海內外의 眞正한 韓人 참으로 祖國光復을 뜻하고 民族復興을 꾀하는 우리 同志는 누구든지 또한 親愛的 指敎와 熱情的 後援을 우리에게 주리라고 深信 하는 우리는 아름다운 結果를 맺기 爲하여 最後까지 勇往邁進하기를 이에 다시 讀者諸位께 言明한다.

    2 한민 祝韓民創刊之號

    輸忠扶正個我后人

    3 한민 臨時政府의 積極活躍

    軍事施設과 外交進行에 全體閣員이 苦心努力함
    世界의 風雲은 날로 緊迫하여져서 우리가 期待하는 大戰의 爆發이 目睫에 달린 것을 看破한 우리 臨時政府에서는 우리의 運命을 決할 全國民의 總動員에 應付할 準備를 銳意로 進行하고 있는바 其中에도 軍事의 施設과 外交의 進行을 더욱 必要하게 생각하므로 此에 對하여 全體 閣員이 一意로서 積極勵行하는 중이라 한다.

    4 한민 韓國國民黨의 大活動

    黨勢는 날로 擴張되고 活動은 더욱 猛烈하다
    韓國國民黨에서는 理事長 金九(김구)氏 以下諸幹部人員들이 全體黨員을 督勵하여 黨의 工作을 銳意 進行中인데 黨員이 날로 增加되어 黨勢는 益益擴張되고 友邦들의 同情과 信川은 날로 깊어가므로 黨의 主腦人物들은 猛活躍을 開始하여 氣勢가 크게 떨친다 하는바 非常時期를 爲하여는 벌써 某種의 計劃을 樹立하고 着着進行中이라 한다.

    5 한민 三一節 紀念狀況

    臨時政府와 其他에서 宣傳文을 配付하고 韓國國民黨에서는 紀念式을 盛大히 擧行
    民族革命黨에서도 韓族會名義로
    本月 一日 三一節에 우리 臨時政府와 韓國國民黨과 韓人愛國團 其他某某團體에서 各其 三一節에 對한 宣傳文을 印刷하여 配付하고 韓國國民黨에서는 그날 上午 十時 XX에 全體黨員이 모여 盛大한 紀念式을 擧行하였다는데 探聞한 바에 의하건대 이러하다.
    그 式場 內外에 裝飾한 香氣로운 꽃은 恨많은 韓人에게도 봄消息을 傳해주는듯 滿場의 人士는 歡喜에 넘치었고 四壁에 붙은 壯嚴한 標語는 卽刻에 倭敵을 殺盡할 듯 끓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革命兒의 鐵腕은 더 한층 움직였다. 이 刹那에 主席의 引導로 寂寞을 破하고 우렁차게 흘러 나오는 愛國歌의 合唱은 嚴肅하고 壯快함이 雲霄를 찌를 듯하였다. 노래가 끝난 뒤에는 祖國光復을 爲하여 殉死한 先烈을 追慕하며 現在 國內에서 鐵窗生浩을 하고 있는 同志를 생각하여 暫間默想하고 繼續하여 熱烈한 演講이 있었는데 그 中에 車利錫(차리석)氏의 「三一運動 當時의 情形」에 對한, 嚴恒燮(엄항섭)氏의 「臨時政府由來」에 對한 眞摯한 熱辯은 聽衆에게 莫大한 쎈세이션을 주어 式은 大盛況裏에 마쳤다 한다.
    또 같은 날 下午 二時에는 民族革命黨에서 ○○地方의 韓族會의 名義로써 XX에서 三一紀念式을 擧行하였는데 그 儀式과 口號가 全部 該黨의 規定에 依한 까닭에 非黨員으로 參加하였던 小數僑民은 不平을 말하는 者가 많았다 하며 當時에 金科奉(김과봉) 金尙德(김상덕) 李益星(이익성) 三氏의 演辭가 있었던바 其中에 金科奉(김과봉)氏의 三一運動에 對한 過激한 言論은 三一運動을 慶祝하러 온 聽衆을 도리어 不快하게 했다. 그 모듬의 怪異한 現象은 愛國歌는 안부르고 革命歌를 부른 것이라 한다.

    6 한민 美洲國民會의 壯한 歷史

    二十七年間을 하루같이 倭胞의 公共事業에 專力
    距今 三十餘 年 前부터 우리 靑年들이 學業을 目的하고 渡美하기 시작하여 開發會社의 農夫로 募集되어 『하와이』와 墨西哥(멕시코)에 와 있다가 다시 美洲로 건너온 同胞가 많아짐을 따라 生疏한 땅에 와서 生道가 末由하고 또는 迷路에 들어 自救之策이 없는 同胞를 위하여 指導와 救濟의 事業을 아니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紀元 四二三五年 卽 西曆 一九○三年에 親睦會가 組織되고 二年 後에 다시 共立協會로 變하였다가 四二四二年에 『하와이』에 있던 合成協會와 前興會와 合하여 國民會가 組織되고 그 이듬해에 다시 美洲에 있던 大同輔國會와 合하여 大韓人國民會라 하였으니 이것이 今日까지 美洲의 우리 韓人社會를 支配하고 있는 中心機關이다
    이 國民會의 全盛時代에는 全美洲는 勿論이요 멀리 遠東俄領(러시아령)에도 三十餘 個所의 支會가 設立되어 一時는 在外同胞의 總機關이 되었다. 이 會에서 하는 事業은 新到同胞의 各項便宜를 供給하고 殖產과 敎育을 主重하는 外에 祖國과 光復事業에 熱中하여 金錢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三一運動 以後 우리 臨時政府에 對한 그 誠意를 보아도 그들의 가슴에 타오르는 愛國思想을 足히 證明할 수 있다.
    더욱이 그들의 事業을 繼續할 第二世國民 敎育에 置重하는 中에도 國語普及을 熱心으로 하는것은 가장 敬賀할 일이다.
    今年度 總會任員은 總會長과 副會長은 仍任된 바 總會全體任員의 姓名은
    總會長 崔鎭河(최진하)
    副會長 任正九(임정구)
    總務 廉萬錫(염만석) 書記 金勛(김훈)
    財務 李超(이초) 學務 黃思宣(황사선)
    法務 車義錫(차의석) 救濟 申翰(신한)
    實業 梁柱恩(양주은)
    等 諸氏오. 그리고 總會長이 다시 就任하는 席上에서 發表한 今年度 行政方針은 左와 같다.
    一. 老年同胞의 救護
    二. 二世國民의 敎養
    三. 臨時政府의 擁護

    7 한민 布哇(하와이)國民會의 會務發展

    在留同胞들의 福利를 爲하여 幹部 諸氏가 不斷히 苦心勉力
    『하와이』 는 六千의 우리 同胞가 居留하는 곳이다. 同志會 愛國婦人會 團合會 敎會 基督學院等 各團體와 機關이 많이 있고 全體僑胞의 行政機關으로는 國民會가 있으니 國民會가 年前에 獨立團으로 더불어 統一組織을 이루는 後부터는 더욱 擴大되고 融和한 中에서 一新한 面目으로써 在留同胞의 公共事務를 爲하여 一般職員이 不眠不休로 苦心 勉力하여 잘 進行中이다. 今年度의 任員改選을 行한 結果原任 總會長 林成雨(임성우)氏는 解任되고 總會長 以下 諸任員이 左와 如히 當選되었다.
    總會長 趙炳堯(조병요)
    總務 朴尙河(박상하) 書記 黃仁煥(황인환)
    財務 朴成雨(박성우) 法務 金元用(김원용)
    學務 鄭斗玉(정두옥) 聯務 李正健(이정건)
    靑年 揚裕贊(양유찬) 實業 權道仁(권도인)
    社交 朴鳳楫(박봉즙) 外交 趙濟彥(조제언)
    『하와이』에 居留하는 同胞는 大部分이 開發會社 時代에 돈벌이를 目的하고 와가지고는 갖은 苦生을 하면서 生活의 根據를 이루고 敎育事業에 置重한 고로 지금은 比較的 進步된 社會를 形成한바 往往히 意外의 過多한 金額을 負擔하게 되어 物力이 많이 減損되는 일도 없지 아니하나 一體의 公益事業과 光復運動의 金錢을 아끼지 아니하니 臨時政府에 對한 義務를 行하는 것과 이따금 某種의 特務事業의 資金을 調達한 것 等이 一例가 될 것이다.

    8 한민 猛血團員被逮의 裏面

    韓奸漠奸의 搖尾盡思으로 倭警은 無難히 四人을 逮捕
    本埠를 根據로 한 黑色份子와 및 그와 合流하는 몇사람은 天眞爛漫한 熱血的 靑年을 糾合아야 猛血團을 組織한 後에 本埠僑胞中 若干의 金錢이라도 있는 者에게는 不問曲直하고 威脅恐喝로서 金品을 强要하다가 上月 二十二日에 그 團員 柳瀅錫(유형석)이 敵에게 被逮되고 그 後 本月 五六 兩日에 繼續하여 該團員 韓道源(한도원) 金勝恩(김승은) 金昌根(김창근) 吳冕植(오면식) 等이 被拘된 바 그 後 四人의 被逮되던 特別한 經緯만을 말하려 한다. 본대 猛血團에서는 該團의 所定한 工作을 實行하는 同時에 南方에 가 있는 某氏를 電促하여 그가 왔으나 住所의 秘密로 因하여 彼此에 만날 길이 없으므로 該團員 韓道源(한도원)이 某氏를 찾고자 그의 親한 者의 집을 찾아간즉 마침 主人이 出他한지라. 韓은 面曾할 時間을 指示해 달라고 글자를 적어놓고 왔다. 그 뒤 本月 五日에 韓이 다시 간즉 그 者는 없고 當夜 十一時에 虹口靺咖啡店에서 面談하자고 글자를 적어 놓았다. 그래서 韓은 某咖啡店에 갔으나 그를 만나자는 者는 보지도 못하고 倭警察에게 拘捕되고 말았다 한다. 意外에 힘 안들이고 韓을 拘捕한 倭警察은 該團員을 全部 一網打盡할 計劃을 세우고 活動을 開始하려 하였으나 中國公安總局에 交涉하면 무슨 障礙가 있을까 하여 閘北分局長 梁哥(倭女와 산다는 말도 있음)를 利用하였다. 梁哥는 그 날 새벽 세시에 部下 五人을 倭警에게 주어 제 管轄도 아닌 南市에 와서 金勝恩(김승은)을 逮捕하고 그 밝는 날 곧 六日 下午 一時許에 또 같은 手段으로 倭警察을 協助하여 南市 江陰街第一茶樓에서 吳冕植(오면식) 金昌根(김창근) 二人을 逮捕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金의 猛烈한 對抗으로 倭놈도 數人이 重傷되었으나 도리어 中國察側에 重傷者가 더 많이 났으며 甚히 危篤한 境遇에 까지 이르렀다 한다.
    그런데 倭新聞의 報道에 依하면 吳는 有吉暗殺未遂案과 玉觀彬(옥관빈) 等 暗殺案에 關聯이 있다 하며 또 金昌根(김창근)은 李泰瑞(이태서) 暗殺事件의 直接下手者라고 하니 만일 그것이 事實이라 하면 이번에 이러한 일로 倭에게 잡힌 것은 可惜한 일이라 하겠다.

    9 한민 社告

    本寺에서 이제 이 新聞을 發行함에 對하여 우리의 그 먹은 뜻은 크나 지금 敵에게 부대껴 지내는 現象이니만치 모든 事情이 지극히 艱苦하여 小形의 新聞이나마 本來는 二月에 發行하려던 創刊號도 豫期한 대로 되지 못하고 지금에야 비로서 첫 號를 發行하였으나 亦是 不備한 點이 많음을 스스로 느끼는 바입니다. 本社의 事業이 發展되고 各般事情이 許하는 限에 있어서는 本報를 大規模로 하여 每日刊으로라도 할 計劃이지만은 아직도 ●般이 草創한 時期요 또 各項事情이 許諾지 않으므로 當分間은 不定期刊으로 하여 可及的 자주 發行하려 하지만 不得已하면 다만 一月에 一號를 發行하면서라도 本報의 初志만은 貫轍하려 하오니 海諒하시기 바라오며 또 本報는 韓國民族의 純正한 基本精神을 發揮하며 祖國光復事業의 指路者가 되어 忠實한 任務를 克盡하기로 自誓하오니 滿天下에 散在한 愛國同胞는 本報에 對하여 萬斛의 同情을 表하여 주시고 이를 북돋으고 물 부어서 本報로 하여금 健全한 發展을 遂하여서 우리 民族의 代言者가 되며 運動界의 䁱鍾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祈望하는 바이외다. 精神上과 物質上 各方面으로 援助하여 주실 것은 勿論이려니와 아름다운 記事의 材料가 될만한 좋은 消息과 紙面을 充實히 할 貴한 作品도 많이 供給하여 주시는 것을 萬端으로 歡迎하는 바이외다. 다시 한 말씀 告하는 것은 本報를 本是 純國文으로 하려 하였으나 아직 國文活字가 完備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漢文을 ●用 해온 바 앞으로 國文活字가 完備되는 대로 純國文으로 發行할 것을 預告하여 두나이다.

    10 한민 韓民社

    우리는 革命的 手段으로써 원수 日本의 모든 侵奮勢力을 撲滅하고 國土와 主權을 完全光復하자. 그리고 政治 經濟 敎育의 均等을 基礎로 한 新民主共和國을 建設하여 國民各個의 均等生活을 確保하자.
    國家主權光復의 革命的 意識이 强한 同志는 다 한 旗幟下에 모여 力量을 總集中하자.
    嚴密한 組織下에서 民衆的 反抗과 武力的 破壞를 積極進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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