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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보 : 1913 년 08 월 13 일 기사 56 건
손이 동경(도쿄)에 저달한 후에 입을 닫고 무슨 말을 발하지 않으며 다만 기회를 만들어 미국을 한 번 심방하겠다고 말함.
양자강 좌우에 풍진을 일으켜 원세개의 전제정부를 전복코자 하던 손일선, 황흥, 장춘헌, 진형명 등이 다 목숨을 도망하여 나라 밖에 있으매 중화민국 임시총통 원세개는 희색이 양양하고 욕심이 발발하여 이 기회를 이용하여 중국 십팔성에 황제가 되고자 한다는 의논이 분분.
손일선이 일본에 도착한 후에 정부 당국자는 비록 냉대하나 일반 인민은 크게 환영하여 관곡히 대접하는 중 한 무리의 지사들은 손일선을 더욱 사랑하여 다시 활동케 하기를 운동 중.
머리 아프고 현기나는 사람들은 약을 먹지말고 안경을 쓰시오. 신경제조 파경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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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경주군 서면 방안동에서 살던 이원일이 지금 어느 곳에서 유하는지 아시는 동포는 본인에게로 기별하여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본래 우리 동포 김영순의 아들로 부모된 자가 등한이 버림으로 인하여 처음에 토인종의 집에 가서 기르고 다시 백인의 구세군 교회의 보호를 받고있는 김학준은 나이 이제 열아홉이나 조선말을 한 마디도 모르는 고로 매양 조선 사람을 만나면 피차에 다른 나라 사람보다 더 설어하므로 본항에 있는 동포들이 섭섭히 여기는 자가 많더니 본월 九일 오후에 김학준이 본보 사장을 찾아보고 슬픈 기색으로 말하기를 나는 본래 조선 아이로 어찌하다가 국어를 배우지 못하고 외국말만 알아 우리 동포와 통정을 못하니 이는 이 아이의 지극히 슬퍼하는 바이라. 아이가 이제 거의 二十 세가 되였음에 자기 나라를 위하여서도 능히 일분의 의무를 담당할 터인데 나는 말을 모르고 본국 풍속을 모르매 나의 충성을 나의 나라에 향하여 다하지 못하고 다만 남의 나라를 위하여 성명(性命)을 살게 되였으니 나를 위하여 길을 열어주어 미국으로 가게 하여주면 캘리포니아 남방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한인 학생에게 국어를 배우며 또한 성서학원에 가서 성서를 공부할 터인데 이 두 가지는 나의 지극히 한하고 지극히 원하는 바이라. 대개 선비와 차비는 그동안 벌어놓았고 또 학교 정도도 二년 전에 소학교를 마쳤노라 하는 고로 본보 사장은 기쁜 마음으로 환영하여 우선 자기의 원하는 대로 주선하여 주기를 허락하고 또한 부모국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필요를 말하였더라. 김학준의 부친은 곧 김영순이니 현금 마위(마우이)에 있다 하며 그동안 다시 장가들어 실가를 다시 이루었는데 학준은 의연히 버려두고 거두지 않으며 또 그 아내가 데리고 들어온 딸 둘은 시방 본항 왜슬리홈에 있다 하더라.
에와 경찰구역과 호항(호놀룰루) 경찰구역은 양 구역 대표의 합동청원을 의지하여 두 구역을 합하여 오아후부라 칭함을 승인함. 민선을 의지하여 오아후 구역 경찰부장은 하일청 씨로 서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