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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자료

    尹奉吉(윤봉길) 義士의 略傳
    • 신문명
      한민
    • 발행일
      1936-04-29 大韓民國
    • 생산정보
      第二號


    東洋天地를 震動하던 俄日戰爭(러일전쟁)(러일전쟁)은 當時 滿洲鐵路經營權을 貪내던 美國大統領 루스벨트 氏의 斡旋으로 媾和條約을 締結하고 韓國에 對한 日本의 自由行動을 承認하게 되니 從此로 五千年 相繼하던 榮譽로운 韓國의 運命은 風前의 燈火가 되어 朝不保夕의 悲境에 陷하였다 비록 國內에서는 無數한 愛國志士들이 慷慨한 戰鬥를 하였으며 國外에서는 李雋(이준)鬥士가 熱血로써 韓國의 抑寃을 海牙(헤이그)에 訴하였고 이어서 安重根(안중근)義士가 日月을 꾀일만한 義氣로써 哈爾濱(하얼빈)에서 敵魁를 快殺하였으나 日本의 勢力은 膨脹하고 奸細의 跋巵는 日甚하며 帝國主義列强은 韓國을 爲하여 귀를 막아서 畢竟 正義라는 것은 韓人과는 何等의 相關없는 名詞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慈悲하신 祖宗은 罪孼만은 이 子孫을 永遠히 버리지 아니하시매 無窮花 花園에 香氣가 가득하고 伽倻山 그늘에 端光이 비치어 忠南 禮山郡 德山面 杮梁里에 一位 英俊豪邁하고 義氣가 絶倫한 天下無敵의 大勇士가 出生하니 이가 곧 尹奉吉(윤봉길)義士다. 때는 隆熙 二年 戊申 五月 二十二日이니 海牙(헤이그)事件이 나던 다음 해요 伊藤(伊藤博文)(伊藤(伊藤博文)博文)暗殺事件과 李完用(이완용)暗殺事件이 연이어 나던 前해다. 이와 같이 邦國에 多事하고 世上에 波蘭(폴란드) 많은 때에 尹義士가 出生하게 됨은 實로 時勢가 英雄을 기다린 까닭이라 하겠다. 그러나 襁褓에 든 이 아기가 後日에 잃어버린 國家를 光復하게 하고 쓰러진 民族을 復興시키기 爲하여 殺身成仁하므로써 敵의 肝膽을 서늘하게 하고 世界의 耳目을 震動할 줄이야 어찌 夢想이나 하였으랴. 이 아기가 漸漸 자라매 聰明이 過人하고 才德이 兼備하여 凡人으로는 따르지 못할 點이 많은지라. 七歲에 私塾에 入學하여 工夫하기 始作할 새 不滿幾月에 師父와 先輩는 義士를 指稱하여 才童이라 하였다. 春風和氣와 같은 義士의 親切한 態度에는 秋霜烈日과 같은 急激하고도 剛直한 大無畏의 精神이 潛在하니 남들이 義士를 別名하여 가로되 『살가지』(狸)라 하였다.
    어렸을 적부터도 同侔들과 다투어 敗한 때가 없었으며 歐打를 當할지라도 끝까지 睡罵로써 反抗하되 울지 아니하였다. 甚至於 先生님이 종아리를 때리려 하여도 두 눈을 크게 뜨고 안차게 쳐다만 보고 잘 順從치 아니하였다. 十五歲 時에 學業이 벌써 成熟하여 文理를 通하게 되매 作書做詩에 造詣가 相當하였나니 다음의 詩는 그 해에 父老들의 試驗에 應하여 落韻成詩 한 것이다. 『不朽聲名十氣明 十氣明明萬古晴 萬古晴心都在學 都在學行不朽聲』十六歲에는 一年間 新學間을 自修하고 十七歲 以後에는 數年을 繼續하여 育英事業 및 農村啓發에 努力하였다. 天이 有意하여 이미 英雄을 韓國에 주었으니 어찌 無心하랴 義士의 年紀가 비록 幼稚하나 그는 蓋世의 義氣와 拔山의 武勇이 있는지라 五千年의 燦爛한 祖國의 榮華와 先民의 偉業을 追慕하여 어린 가슴을 태웠으며 三島의 小賊이 無窮花 三千里에 橫行하며 神聖한 倍達族이 死線에 徬徨함을 目到하고 붉은 피를 끓였다. 和暢한 봄東山에서 목메어 나오는 저 杜鶰聲을 듣고 피눈물은 얼마나 흘리었으며 蕭瑟한 金風에 淒涼하게 울리어 오는 저 벌레소리를 듣고 긴 한숨은 얼마나 지었으랴. 그러나 救國救民의 大志를 품은 義士는 兒女態度를 더 길게 갖지 아니하였다. 漸漸 長成하여 年紀가 二十三歲에 至하매 義士는 恍然大覺하여 自己의 人生權을 定하였다. 『眞正한 生은 鐵拳으로 敵을 撲滅함에서 求할수 있다. 敵의 毒手에서 坐而待死 하는 것은 自殺만도 못한 것이다. 人生이 一老하면 鐵拳은 無所用이요 더구나 棺속의 鐵拳은 썩을 것밖에 없다』 이것이 그의 人生觀이다. 이 覺悟를 가진 義士는 平日 귀에 暗暗錚錚하던 臨時政府를 찾아 鴨綠江을 通過하였다. 悠悠한 江流는 그의 遠大한 뜻을 더욱 굳게 하였으며 一輪의 皓月은 그의 明朗한 氣節을 더욱 뚜렷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알 사람이 그 누구였더냐. 그의 굳센 맘속에는 한 모퉁이에 川邊의 細柳와 같이 부드러운 구석이 있었으니 孝誠이 至極하고 慈愛가 深切한 義士로써 늙은 父母와 弱한 妻子를 다 속이고서 가만히 情든 故國을 떠날 적에 뼈 끝에 사무치는 말할 수 없는 心情이 없었으랴만 한 家族을 사랑하는 맘보다 그 民族을 사랑하는 맘이 더 컸던 까닭에 義士는 모든 것을 一刀로 끊었다. 그러나 古來로 英雄에 多寒士라. 義士인들 어찌 이를 免하랴.
    一雙의 鐵拳이 義士의 全財產이었나니 萬里遠程에 오른 異域孤客은 向할 바가 없었다. 그러나 百折不屈하는 義士는 靑島까지 와서 선뜻 某倭人의 洗濯店에 雇傭이 되었다. 燕雀方安知鴻鵠之志랴. 倭人은 제일 잘해 주기만 바랬지만 義士는 이 집에서 上海까지의 旅費를 準備하였다. 이듬해 五月 八日에 드디어 夢寐에도 憧憬하던 上海에 當到하니 龍飛大海하고 虎入高山이라. 英雄이 비로소 大志를 試驗할 땅에 이르니 當時 義士의 歡喜야 붓으로 形容하여 무엇하리오. 그러나 산설고 물선 이 땅에서 누가 그 壯志를 알고 歡迎하여 줄 것이냐. 街路에 徬徨하게 된 義士는 다시 貧窮에 몰리어 어느 때는 工廠의 職工도 되었으며 어느 때는 街頭의 小眅도 되었으되 義士는 이로써 志를 喪치 않고 오직 自信과 快樂으로 기쁘게 날을 보내며 때 오기만 기다렸다. 見義思勇은 그의 氣槪라. 工廠에 있을 적에도 많은 工友를 爲하여 無理한 廠主에게 反抗하다가 解履를 當한 일도 있었다.
    同心相照의 兩個 英雄의 相逢은 드디어 驚天動地의 大事業을 做出하여 祖國의 옛 榮華를 다시 빛내게 하였다. 義士의 企待가 헛되지 아니하여 畢竟 金九(김구)先生을 만나니 英雄이 能知英雄之志라. 一言에 心志가 相通하여 義士는 이듬해 卽 十四年 그가 二十五歲 되던 해 四月 二十六日에 韓人 愛國團에 加入하는 同時에 中國을 侵略하는 敵魁屠戮하기를 太極旗下에서 壯嚴하게 宣誓하고 同月 二十九日에 虹口公園에서 뜻대로 成功하고 現場에서 敵의 捕虜가 된 뒤 同年 十一月 十八日에 上海로부터 倭國에 護送되고 同十二月 十九日에 金澤陸軍刑場에서 從容하게 就義하였다. 所志를 完成하고 痛快하게 世上을 떠난 義士야 무슨 遺恨이 있으랴만 뒤에 남아있는 우리는 片刻이라도 어찌 義士의 恩功을 잊을 수 있으며 本國에 계신 그의 父母와 妻子며 또 그 아우들을 생각지 않을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