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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자료

    吳壯士脫獄顚末
    • 신문명
      독립신문
    • 발행일
      1922-12-13
    • 생산정보
      제148호


    지난 三月三十日 下午二時四十分頃 上海新關碼頭에서 同志 金益相氏로 더부러 敵將田中을 殺하야 國讐를 報하려다가 그룻 西洋人 스나이더氏의 夫人을 致死케 하고 잡혀 同地敵領事監獄에 갓쳐 잇던 吳成崙氏가 同監者田村忠一과 함게 脫獄한 事는 우리가 임의 아는 바이어니와 其後 田村이 不幸히 다시 잡혀 取調를 맛츠고 去月二十四日까지의 公判을 經하엿는대 同公判廷에 나타난 事實은 左와 如하더라(以下 上海日報譯)

    脫獄前萬般準備

    四人이 共謀하고 二人만 脫出하다

    陷井에 든 猛虎가 活路를 차즘 갓치 不幸히 사로잡혀 獄中의 人이 된 吳氏는 一端生路를 찻지 안을 수 업섯다. 同囚者는 吳氏外에 日人 藤田龜之助 小宮鹿藏, 田村忠一等 三人이 잇섯는대 그들은

    第一計로 吳氏의 手鉀足鎖를 벗기기로 할새 食盒의 蓋를 小刀로 짝은 後 門窗의 鐵絲를 감아 手鉀구멍에 너허 벗기기를 試驗하엿는대 첫번은 失敗하엿스나 맛츰내 成功하엿다

    四月二十七日에 그리하고 同二十八日에는 脫鉀脫鎖한 것을 押丁에게 露出치 안으려고 吳氏는 稱病하고 臥席하야 洗面과 沐浴을 停止하엿다.

    第二計는 街路에 面한 窗口의 鐵條를 빼려 하여 二十九日에는 小刀로 窗椽을 깍기 始作하엿스나 容易치 아니하여 민망할 즈음에 同囚者小宮은 木手의 經驗이 잇슴으로 차라리 木製의 出入門의 扉를 깍으면 容易히 成功하리라 하야 五月一日 洗面의 際에 押丁의 房에서 小砥石一個를 가지고 드러와 小刀를 가라가지고 忠一은 外來者를 監視하고 龜之助와 小宮은 替番하야 門扉를 깍아 맛츰내 成功하매 逃走하기 前까지는 發見되지 안키 爲하야 原狀대로 꿈엿다.

    第三計로는 衣裝에 着手할새 小宮과 田村은 獄衣뿐임으로 小宮은 吳氏의 中服을 着케 하고 田村은 藤田의 古洋服을 着케 하고 또 그 兩人은 鞋까지도 업슴으로 夜具의 裏로써 中鞋 모양으로 만드럿다 그날 밤 十時頃에 某日人이 겻房에 差入하는 機會를 타서 小宮은 그와 親交가 잇슴으로 本夜에 逃走할 일을 그에게 預示하엿더니 그는 ꡔ不過 二個月의 刑期를 두고 脫走함은 不利하다ꡕ고 回答하엿슴으로 小宮과 藤田는 脫走를 中止하엿다

    脫獄後諸般經過

    吳氏는 無事하고 忠一은 도루 잡혀

    五月二日 上午一時三十分頃에 館內가 寢寂함을 타서 吳氏와 田村은 各各 先後하야 切開한 門을 出하야 層階를 下하야 館庭을 通하야 裏門을 越하야 黃浦路에서 兩台의 人力車를 불너타고

    法租界 빠게-路五十九號에 갓다가 다시 寶康里八號(거말)에 가서 一宿하고 朝飯後 田村은 路費 四十五元을 밧어 가지고 吳氏와 作別한 後 火車로써 杭州에 가서 中服을 買托하고 二三日 留宿하고 나서는 旅費가 盡하엿다 農家에 托하야 雇僱이라도 하려 하나 日人인 때문에 그도 못되고 五月五日에 不得已 上海로 도라올새 宿泊費 六元을 支拂치 못하야 旅館下人을 다리고

    杭州驛에서 火車 타고 上海로 도라와서 吳淞路某典當舖에서 닙엇던 中服을 八元에 典當하여 杭州旅費六元을 무러 주고 그날 밤은 新公園附近麥田에서 지낸 後 六日 아츰에는 鴨綠路附近元村自轉車店에 가서 自轉車一臺를 살 것갓치 하다가 그대로 타고 龍華에 至하야 二十八元짜리를 四元에 賣却하여 가지고 다시 嘉興까지 가서 멧날을 묵고는 手中에 一分도 업게 되메 進退兩難이 되여

    嘉興市內에는 더 滯在할 수 업슴으로 다시 上海로 도라올새 五月二十日에 上海에 到着하기까지 三日間은 徒步로써 아모 食物을 엇지 못하고 夜間에는 麥田에서 지내면서 개천물로 飢渴을 멋추엇다. 歸滬한 當日 下午七時頃 虯江路瑞樂里十八號美川(在監時에 相知한 者)의 家를 訪問하엿스나 美川은 外出하엿슴으로 其家에게 再訪을 約하고 도라왓다가 同夜十時頃 再次 가서 맛참내 다시 잡히게 되엿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