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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자료

    最後의 定罪 (李垠의 娶仇女)
    • 신문명
      독립신문
    • 발행일
      1920-05-08
    • 생산정보
      제74호


    今日부터 英親王이라고 尊稱하기를 廢하리라, 英親王이던 李垠은 無父無國의 禽獸인 故로.

    罪惡 만흔 李朝의 歷史는 今日로써 永遠히 定罪함을 밧앗도다. 光武帝의 時機를 得한 崩御와 義親王의 稀罕한 義擧는 全國民에게 多大한 感動을 주어 五百年 過去의 無限한 罪惡을 容恕하고 沒落의 彼等을 爲하야 一掬의 同情의 淚를 灑하게 하더니 아아 已矣로다, 賊子李垠으로 하야 李朝는 永遠한 定罪와 咀呪를 受하엿도다.

    大韓民族의 最大한 仇讎가 誰뇨, 天도 아니오 地도 아니오, 實로 五百年의 李朝로다. 立國의 初부터 明에 對하야 臣事함으로써 民族의 榮譽를 더럽히고, 尊中華思想을 中心으로 하는 崇文偃武를 勵行하야 自家의 萬年을 圖하랴다가 民氣를 銷滅하고 國力을 凋殘하야 壬辰의 倭亂의 慘禍를 招하고, 丙子胡亂에도 國民이 死로써 國威를 保하려 하는 忠義의 氣魄이 잇슴에 不拘하고 自家의 安全을 圖하야 南漢山城下의 盟을 作하야 두번재 民族에게 奴隸의 羞恥를 加하고, 爾來로 或은 黨爭을 助長하며, 奸輩를 用하고 忠義有爲의 士를 誅하야 政治가 紊亂하고 産業은 頹廢하며 貪官汚吏와 憑公營私之輩가 國內에 遍滿하야 民을 더할 수 업시 弱하고 愚하고 貧하고 惡하게 한 뒤에 마츰내 乙巳의 恥와 庚戌의 辱을 當하야 이에 半萬年連綿하던 歷史를 斷絶하고 二千萬神聖民族에게 島蠻의 奴隸의 苦를 嘗케 하엿도다. 아아 이것이 李氏 二十八代 五百餘年의 罪惡이 아니고 무엇이뇨 이를 생각할 때에 現在 獨立의 光復을 爲하야 血을 流하는 吾輩는 切齒함을 禁치 못하도다.

    歷代李朝中에도 가장 罪惡이 大한 者는 大院王明成后 其他 多數의 賊類에게 圍繞되엿던 光武帝時代니 日本이 聰明하게 世界의 大勢를 看破하고 翻然히 明治의 維新을 斷行할 때에 攘夷鎖國과 天主學撲滅의 愚策凶策으로 國家中興의 機를 失한 者는 大院王이오, 馬關條約의 結果로 獨立帝國의 承認을 得한 後에도 淫泆을 爲事하고 奸(확인요한자 : 女+呈)의 徒를 左右에 置하야 國力의 充實을 等閑히 하고 外勢를 誘入한 것은 光武帝와 明成后의 罪라. 金玉均一派의 開進運動, 獨立協會의 維持運動을 뉘가 撲滅하엿나뇨.

    우리 民族의 血과 汗으르 된 歷史의 모든 光榮과, 燦爛한 文化의 集積과 優秀한 國民性과, 모든 富力과, 知力과, 元氣가 다 李氏의 手中에셔 銷盡하엿도다. 얼마나 만흔 忠臣의 血 愛國者의 淚, 英雄의 恨이 李氏의 宗廟를 에워싸고 慟哭하리오.

    旣往 지은 罪는 無可奈何라 하더라도 庚戌八月二十九日에 웨 光武와 隆熙가 一死로써 그네의 祖上이 그리도 崇拜하던 明崇禎의 後라도 따르지 못하고 羞辱의 陋命을 苟且히 保存하엿스며, 그는 못하엿더라도 民國元年 三月一日에 웨 그네 祖上의 犧牲이 된 人民으로 더부러 獨立萬歲를 부르고 敵의 凶刃에 殉國치 못하엿스며, 그는 못하엿다 하더라도 曾前大韓帝國皇太子로 하여곰, 二千萬民族이 敵刃에 피를 흘니며 祖國의 光復을 爲하야 奮鬪하는 한창 中間에, 國讎요 君讎요 父讎인 倭主의 一族인 女兒와 不義의 婚姻을 못하게 하지 못엿나뇨.

    垠이 伊藤賊에게 끌리어 敵京으로 갈 때에는 十二歲의 幼年이라, 同胞는 그의 質로 잡혀감을 슬퍼하엿거니와 只今은 임의 二十五六歲의 成年이니 그를 知覺이 不足한 兒孩라 하야 容恕할 수 업도다. 救國日報는 憤慨하야 니르되 「아비가 죽으매 動哀할 줄을 모르고 兄(義親王)이 잡히먜 動悲할 줄을 모르고 이제 仇人을 娶하니 垠은 그 禽獸로다」 하엿도다.

    아아 渠는 果然 禽獸로다. 禽獸가 아니고 엇지 참아 그 父皇과 母后를 弑하고 그 皇位를 奪하고 그의 同族을 殘害하는 仇人의 女를, 그의 二千萬兄弟와 姊妹가 祖國을 爲하야 血戰하는 此日에, 娶할 心腸이 生하리오.

    五百年李氏의 罪惡은 垠에 至하야 그 極에 達하엿도다. 永遠한 定罪와 咀呪의 印을 첫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