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명 金國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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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국명
한자명 金國明
본 관
이 명
출신지 평북 선천(宣川)
생몰년월일 1869 ~ 미상
운동계열 3.1운동
관련 단체
관련 사건 선천면 만세시위
주요 활동 1919년 3월 1일 선천군 선천면 만세시위 참여
포상훈격(연도) 애족장(2010)

1869년경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군산면(群山面)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일에는 선천군 안에서 만세 시위가 계획되어 있었다. 민족대표 중 한 사람인 이승훈(李昇薰)은 3월 1일 만세 시위를 준비하면서 미국 북장로교 선교회에서 설립한 신성중학교(信聖中學校)의 교사 홍성익(洪盛益)에게 신성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참여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홍성익은 학교 교원과 교회 목사들과 접촉하면서 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학생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복사하고 태극기를 준비하는 등 비밀리에 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1일 12시 독립선언식을 가진 학생들과 교원들이 교문을 나서 행진하면서 선천의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다. 파리강화회의의 소식을 듣고 강대국이 민족자결을 지지하니 이내 독립할 수 있다고 평소 믿고 있었으므로 만세 시위가 일어나자 이에 동참하였다. 시위 행렬은 이내 1,000여 명을 넘어섰다. 행렬이 군청과 경찰서를 향하면서 이를 두려워한 군경이 출동하여 진압을 시작하였다. 결국, 저항하는 군중과 충돌이 일어났고, 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그를 포함한 약 60여 명의 시위 참여자가 붙잡혔다.

1919년 5월 2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판결에 불복해 상고하였으나,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참고문헌|

「김국명 판결문」, 고등법원, 1919.6.28.
『독립운동사』 2권, 국가보훈처, 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