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진 鮮于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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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선우진
한자명 鮮于鎭
본 관 태원(太原)
이 명 왕일주(王一舟)
출신지 중국
생몰년월일 1921. 1. 8 ~ 2009. 5. 17
운동계열 광복군
관련 단체 한국광복군훈련반, 토교대, 한국광복군총사령부 경위대
관련 사건  
주요 활동 1944년 한국광복군훈련반 졸업, 1945년 광복군 경위대 대원으로 활동, 광복군 선전방송 참여
포상훈격(연도) 애국장(1990)

1921년 1월 8일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환런현(桓仁縣)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평안북도 정주(定州)이고, 본관은 태원(太原)이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왕이저우(王一舟)라는 중국식 이름도 사용하였다. 할아버지는 푸순(撫順)과 펑톈(奉天)에서 한의원을 경영하였고, 아버지는 환런(桓仁)에서 조선혁명군 총관으로 활동하였으며, 삼촌 선우기(鮮于基)도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4월 푸순에 있는 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하여 1936년 3월 졸업하였고, 이어서 푸순중학교에 들어가 1941년 3월 졸업하였다. 졸업 후 지린성(吉林省) 판스현(磐石縣)에 있는 친척집 상점에서 일하던 중 삼촌 선우기가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1942년 9월 삼촌에게 가기 위해 친구 김성찬(金成燦)과 톈진(天津)을 거쳐 구이더(歸德)에 도착하여, 한국인 약국에서 점원으로 일하였다. 그러던 중 린취안(臨泉)에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1944년 3월 약국 점원을 그만두고 린취안을 향해 떠났다. 그 과정에서 중국군 유격대에 붙잡혀 사령부가 있는 우로장(于老莊)으로 이송된 후 징모 제6분처 주임 김학규(金學奎)에게 인계되어, 일본군을 탈출한 한성수(韓聖洙)·이문화(李文華) 등과 만났다. 징모 제6분처는 1945년 3월 광복군 제3지대로 편제되었고, 초모한 대원들의 교육과 훈련을 위해 중국군 제10전구 사령관 탕언보(湯恩伯)와 교섭하여 린취안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제10분교에 한국광복군훈련반을 설치하였다. 

1944년 7월 한국광복군훈련반에 들어가 군사 교육과 훈련을 받고, 그 해 11월 졸업하였다. 1944년 11월 말 교관 신송식(申松植)의 인솔 하에 윤경빈(尹慶彬)·노능서(魯能瑞)·윤재현(尹在賢) 등 한광반 졸업생 36명과 함께 린취안을 출발하였다. 허난성(河南省) 난양(南陽)과 후베이성(湖北省) 라오허커우(老河口)를 거쳐 1945년 1월 3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충칭(重慶)에 도착하였다.

1945년 2월 20일 광복군의 조직체로서 충칭 교외에 있는 한인 청년들을 임시 수용하던 토교대(土橋隊)에 편성되었다가, 임시정부 청사 경비와 요인 경호를 담당하는 경위대(警衛隊)에 차출되었다. 또 광복군 총사령부 부관처 관리과 과원으로도 편제되었다.

1945년 6월 윤경빈·서상렬(徐相烈)과 내무부장 신익희(申翼熙)를 따라 류자완(劉家灣)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가서 한인 청년들을 인수하여 토교대에 편입시켰다. 광복군 총사령부 부관처 부위로도 소속되었고, 충칭의 중앙방송을 통해 광복군선전방송에도 참여하였다. 임시정부 주석 판공실장 민필호(閔弼鎬)의 주선으로 중국 중앙조사통계국의 정보원이 되었고, 이때 왕이저우(王一舟)라는 중국식 이름을 사용하였다.

광복 후 1945년 11월 5일 임시정부 요인들이 상하이(上海)로 이동할 때 경위대원으로 수행하였고, 11월 23일 제1진으로 환국하는 주석 김구(金九)와 부주석 김규식(金奎植) 등을 수행하며 귀국하였다.

귀국 후 경교장에서 김구 주석의 비서로 활동하였으며, 1948년 남북협상 때 김구를 보필하여 평양에 다녀왔다. 김구 서거 후,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를 창립하고 추모 사업에 진력하였다. 1970년에는 『백범 김구』를 편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한시준⋮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4·6, 1972·1975.
국사편찬위원회,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12, 2006.
한시준, 『한국광복군연구』, 일조각, 1993.
김광재, 『한국광복군』,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7.
선우진 지음, 최기영 엮음, 『백범 선생과 함께 한 나날들』, 푸른역사,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