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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천 金在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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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명 | 김재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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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명 | 金在天 |
| 본 관 | |
| 이 명 | |
| 출신지 | 경기 용인(龍仁) |
| 생몰년월일 | 1881. 1. 26 ~ 미상 |
| 운동계열 | 의병 |
| 관련 단체 | 이익삼 의병부대 |
| 관련 사건 | |
| 주요 활동 | 이익삼 의병부대 참여 |
| 포상훈격(연도) | 애족장(2016) |
1881년 1월 26일 경기도 용인군(龍仁郡) 포곡면(蒲谷面) 유실(有室)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8년 11일 이익삼(李益三)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의병활동을 하였다.
당시는 고종이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인하여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임을 당하고,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당한 것을 계기로 전국적인 의병항쟁이 전개되던 시기였다. 정미의병으로 불리는 이시기 의병항쟁에는 유생·농민·포수·광부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하였지만 특히 강제 해산된 군인 출신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이익삼 또한 원래 대한제국군의 하사(下士)였다. 고향인 용인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7년 8월 군대 강제 해산의 소식을 듣자 봉기하여 일제에 대한 항일 무장 투쟁에 나섰다.
1908년 11월 무렵부터 동향(同鄕)의 정기인(鄭基仁) 등과 함께 이익삼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양지·용인·죽산·이천·음죽·양성·안성·남양·수원 등지에서 주로 군자금과 군수품 조달 활동을 하였다. 1908년 11월 20일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蒲谷面) 두계위리(杜溪尉里)에서 정기인(鄭基仁) 등과 함께 조종언(趙鍾彦)에게서 5원을 징발하였다. 이후 의병 활동을 지속하다가 1909년 11월 26일 정기인 등과 함께 양지주재소 순사대에 붙잡혔다. 1910년 1월 24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