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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락 金承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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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명 | 김승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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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명 | 金承洛 |
| 본 관 | |
| 이 명 | 전일평(錢一平), 김광휘(金光輝) |
| 출신지 | 평북 박천(博川) |
| 생몰년월일 | 1901 ~ 1933. 6 |
| 운동계열 | 중국방면 |
| 관련 단체 | 상해한인반제동맹 |
| 관련 사건 | 조선공산당 재건 계획 |
| 주요 활동 | 1932년 6월 상해한인반제동맹 가입, 조봉암 등과 조선공산당 재건 활동 |
| 포상훈격(연도) | 애족장(2010) |
1901년경 평안북도 박천군(博川郡) 덕안면(德安面) 동팔동(東八洞)에서 태어났다. 중국에서 활동 시 전일평(錢一平) 혹은 김광휘(金光輝)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1928년 8월 광저우(廣州) 황포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을 졸업한 후, 중국공산당 홍군(紅軍)에서 활동하였다. 1929년 8월에는 장시성(江西省) 더안현(德安縣)에서 홍군군사훈련부(紅軍軍事訓練部) 교관으로 복무하였고, 1930년 8월에는 후베이성(湖北省) 양신현(陽新縣) 홍군 독립제3단 참모장이 되었다.
1932년 상하이(上海)로 가서 프랑스 조계 거뢰달로(巨賴達路)에 거주하며, 6월 중국공산당 상해한인지부 및 상해한인반제동맹(上海韓人反帝同盟)에 가입하였다. 특히 상해한인반제동맹에 가입한 이래 핵심 당원으로 활약하였다. 당시 조봉암·홍남표 등은 상해한인반제동맹을 조직하고, 당 재건 및 재승인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32년 9월 말 조봉암이 일제 영사관경찰에 붙잡히고, 이어서 10월 초순 강문석(姜文錫) 등 4명과 함께 프랑스 조계 안에서 체포되었다. 12월 3일 국내로 압송되어 신의주경찰서로 신병이 인도되었다.
1933년 2월 23일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신의주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었고, 3월 2일 신의주지방법원의 예심에 회부되었다. 1933년 6월경 사망하였다.
한편 자료에 따르면 신의주형무소에 수감 중 3월 8일 급성폐렴으로 병감에 수용되어, 3월 24일 사망하였다는 의견도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