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원 羅尙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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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나상원
한자명 羅尙元
본 관  
이 명  
출신지 미상
생몰년월일 미상
운동계열 만주방면
관련 단체 대한군정서(북로군정서)
관련 사건 청산리대첩
주요 활동 1920년 대한군정서 제1중대 특무정사로 청산리대첩 참전
포상훈격(연도) 애국장(1995)

출신지와 생몰년은 미상이다. 대한군정서 대원으로 청산리전투에 참전하였다.

1920년 당시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일명 북로군정서) 간부였다. 대한군정서는 1919년 8월 북간도(北間島)의 항일 무장단체인 중광단(重光團)과 대한정의단(大韓正義團) 등이 발전적으로 해체되어 조직된 단체이다. 총재 서일(徐一), 부총재 현천묵(玄天默), 군사령관 김좌진(金佐鎭) 등이 포진한 대한군정서는 1,600명에 달하는 대원과 1,300정의 총, 150정의 권총, 수류탄 80여 개를 보유한 북간도 최대의 항일 무장투쟁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성장을 경계한 일제는 대한군정서의 활동을 포함한 북간도 지역 한인 무장 단체를 제거하고자 1920년 10월 이른바 간도 출병을 단행하였다. 이에 대한군정서와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등으로 구성된 독립군 연합부대는 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과 결전을 준비하였다. 1920년 10월 16일 대한군정서 부대원 1,800여 명이 허룽현(和龍縣) 싼두오거우(三道溝) 청산리 백운평(白雲坪)에 매복하여 일본군과의 격전에 대비하였다.

청산리전투에서 강화린(姜華麟)이 이끄는 대한군정서 제1중대 특무정사(特務正士)로 활약하였다. 특무정사는 현재의 주임상사이자 당시 일본군 특무조장(特務組長)에 해당하는 지위였다. 특무활동은 최소한의 인적·물적 희생을 담보로 최대한의 투쟁효과를 고양하는 것이 그 목적으로, 구체적 임무는 주요 요인 암살, 군자금 모금, 대민 공작 등이었다. 따라서 청산리전투 당시 전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공작 활동을 수행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더욱이 이 시기 북로군정서 예하 총 4개 중대 중 1중대와 3중대의 2개 중대에만 특무정사가 편제된 것으로 보아 매우 특수한 공작 활동 내지는 대민 전략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여러 독립군의 분투에 힘입어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 새벽에 걸친 청산리전투은 독립군의 대승으로 종결되었다. 1922년 9월 11일 대한독립군 북만주(北滿洲) 통신부 소속 이중실(李仲實)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발송한 사후 보고에 김좌진 등과 더불어 특무정사로 주요 승전 장교단으로 언급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순섭⋮

|참고문헌|

「受20669號, 公 第259號, 朝鮮側警察カ鮮人金順等ヲ拘引セルニ關スル件」, 1921. 6. 27.
『독립신문』, 1921. 2. 25.
우남이승만문서편찬위원회, 『雩南李承晩文書: 東文編』, 중앙일보사, 1998.
국사편찬위원회 편,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별책2, 2009.
박환, 『滿州韓人 民族運動史硏究』, 一潮閣, 1991.
김재승, 『만주벌의 이름 없는 전사들』, 혜안, 2002.
박환, 『만주지역 한인민족운동의 재발견』, 국학자료원,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