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린 崔永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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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최영린
한자명 崔永麟
본 관
이 명
출신지 미상
생몰년월일 미상 ~ 1922. 10. 9
운동계열 만주방면
관련 단체 서로군정서
관련 사건
주요 활동 1922년 서로군정서 대원으로서 일제 경찰과 교전
포상훈격(연도) 애국장(2009)

출신지와 출생시기 등은 자료의 한계로 알 수 없다. 1920년대 초반 남만주(南滿洲)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만세운동 직후 부민단(扶民團), 교육회, 자신계(自新契)가 통합하여 남만주 류허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에서 한족회(韓族會)가 결성되었다. 한족회는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무기를 조달하고 독립군 대원을 모집하였다. 1919년 4월 한족회에서는 독립전쟁을 수행할 기관으로 군정부(軍政府)를 조직하였다. 군정부 총재는 이상룡(李相龍)이 선임되었다. 한족회에서 설치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는 군사교육을 통해 독립군 대원을 양성하였다.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됨에 따라 1919년 11월 군정부는 군정서[서로군정서]로 개편되었다. 서로군정서 주요 구성원은 최고 책임자인 독판(督辦) 이상룡, 부독판 여준(呂準), 참모부장 김동삼(金東三), 사령관 지청천(池靑天) 등이었다. 서로군정서는 남만주와 한반도 북부지역에서 일제 기관을 공격하는 한편,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고 친일행위자를 처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일제는 평안북도 신의주(新義州) 대안(對岸)인 지안현(輯安縣) 유수림자(楡樹林子) 주선구(朱線溝)에 소재한 서로군정서 지부(支部)를 습격하기 위해 초산경찰서(楚山警察署) 순사부장이 지휘하는 무장경관대를 파견하였다. 1922년 10월 8일 일제 무장경관대는 압록강을 건넜다. 10월 9일 새벽 서로군정서 지부(支部)인 배영창(裴永昌)의 집을 포위하였다. 이에 동지들과 함께 폭탄을 투척하며 일제 무장경관대와 교전하다가 동지 2명과 함께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최병도⋮

|참고문헌|

『동아일보』, 1922. 10. 13.
『매일신보』, 1922. 10. 13.
박환, 「西路軍政署의 成立과 그 活動」, 『韓國學報』 55, 일지사,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