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연 河在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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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하재연
한자명 河在衍
본 관
이 명
출신지 경남 함양(咸陽)
생몰년월일 1866. 11. 29 ~ 1940. 7. 26
운동계열 3.1운동
관련 단체
관련 사건 1919년 함양군 만세운동
주요 활동 1919년 4월 2일 함양군 함양시장 만세시위 참가
포상훈격(연도) 대통령표창(2006)

1866년 11월 29일 경상남도 함양군(咸陽郡) 병곡면(甁谷面) 도천리(道川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일 함양군 함양시장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오후 3시경 경남 함양읍 시장에 유달리 많은 장꾼이 모여들었다. 정순길(鄭淳吉)·윤보현(尹普鉉)·정순귀(鄭淳貴)·노경식(盧璟植) 등 4명이 주도하여 태극기 등을 준비하였다. 거사 당일에는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주도 인물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준 다음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군중이 일제히 호응하여 만세를 고창하자 총검으로 무장한 일제 헌병이 달려와 주도 인물들과 시위 참여자를 무차별적으로 끌고 갔다. 남은 시위대는 이러한 폭력적 연행에 항의하며 오후 6시가 넘도록 시위를 이어가다가 해산하였다.

주도자들이 일제에 붙잡히자 이에 분개한 김한익(金漢益)은 다시 한 번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이후 4월 2일 김한익의 주도로 만세시위를 일으켰을 때 동생인 하재익(河在翼)과 아들 하승현(河升鉉)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당시 3천여 군중이 호응하여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니 다수의 일제 헌병이 무장을 하고 진압을 시작하였고, 주도 인물이었던 김한익 등을 끌고 갔다.

이에 격분한 시위대를 이끌고 오후 6시가 넘어가도록 일제 헌병분견소 앞에서 연행자에 대한 석방을 요구하였다. 석방 시위 도중 일제 헌병이 발포한 총격에 아들 하승현이 사망하였다.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듣고 격분하여 동생 하재익과 함께 일제 헌병들에게 달려들었다. 이때 하재익과 함께 일제 헌병이 쏜 총에 총상을 입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2.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3권,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