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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신 崔德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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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명 | 최덕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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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명 | 崔德新 |
| 본 관 | 해주(海州) |
| 이 명 | |
| 출신지 | 평북 의주(義州) |
| 생몰년월일 | 1914. 9. 17 ~ 1977. 12. 1 |
| 운동계열 | 광복군 |
| 관련 단체 | 광복군 |
| 관련 사건 | 제2차 세계대전 |
| 주요 활동 | 중국 국민당의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국민혁명군 복무 중, 광복군 총사령부에서 근무,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무부 비서 등으로 활동 |
| 포상훈격(연도) | 대통령표창(1963) |
1914년 9월 17일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월화면(月華面) 마룡리(麻龍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아버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 최동오(崔東旿)이다.
최동오가 만세운동 이후 일제의 추적을 피해 중국으로 망명하였으므로, 유년기에 중국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베이핑(北平, 현 베이징)에서 소학교를 마치고, 난징(南京)에서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일찍이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하여 중국 국민당의 육군군관학교(陸軍軍官學校) 10기로 입학해 1936년 졸업하고 국민혁명군(國民革命軍) 장교로 복무하였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국민혁명군 소속 인사로서 중국인 간부들과 함께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 참여하여 선전과장을 역임하였다. 1943년 연합국의 요구에 따라 국민혁명군이 인도·버마(미얀마) 전선에 원정군을 파견할 때 정보장교로 참전하여 전선에서 일본군 정보수집 및 분석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944년 충칭(重慶)으로 귀환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 비서로 활동하였다. 그해 6월부터 조소앙(趙素昻)·김원봉(金元鳳) 등 임시정부 대표들과 함께 한국광복군을 중국 국민당 통제하에 두던 9개 준승의 개정을 추진한 결과, 같은 해 9월 8일 국민당으로부터 한국광복군의 통제권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하에 두는 확약을 받았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국민혁명군 참모장교로 광둥(廣東) 일대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접수하고 병력의 무장해제를 담당하였다. 이후 광둥에 광복군 잠편지대가 결성되자 지대장을 맡아 한국인 교포의 신변 보호와 귀국 절차 원호, 일본군 내 한국인 사병의 신병 인도, 한국인 친일부역자의 재산 몰수 등을 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