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기 鄭在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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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정재기
한자명 鄭在蘷
본 관 청주
이 명 자 : 성로(成老), 호 : 성재(省齋)
출신지 경북 성주(星州)
생몰년월일 1851. 9. 11 ~ 1919. 4. 9
운동계열 3.1운동
관련 단체
관련 사건 을사늑약, 파리장서운동
주요 활동 1905년 을사늑약 반대상소 서명, 1919년 파리장서 서명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1)

1851년 9월 11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수륜면(修倫面) 수성리(水成里) 지촌(枝村)에서 아버지 정세용(鄭世容)과 어머니 옥산(玉山) 장씨(張氏)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자는 성로(成老), 호는 성재(省齋)이다. 조선 중기의 저명한 유학자인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후손이다. 외삼촌인 장승택(張升澤)에게서 수학하였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종에게 을사오적 처단과 을사늑약 파기를 요청하는 상소를 올리고자 하였다. 한계(韓溪) 이승희(李承熙) 등 영남 유림 300여 명이 「청주적신파늑약소(請誅賊臣罷勒約疏)」를 올리는데, 연명자로 참여하였다. 이승희는 같은 해 12월 상경하여 상소를 제출하였다.

1916년 조선 중기 의병장 강대적(姜大適)의 시문집인 『구주선생문집(鷗洲先生文集)』이 간행될 때, 권말에 발문을 쓰며 강대적 의병장의 정신을 높이 기렸다.

1919년 3월 유림계의 독립청원운동인 파리장서운동(巴里長書運動)에 참여하였다. 유림들은 3월 1일 서울 등지에서 천도교·기독교 주도로 만세운동이 시작되고 김윤식(金允植) 등이 「독립불원서(獨立不願書)」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였다는 소문이 들리자, 유림계의 의견을 규합하여 자신들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표명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3월 하순경 김창숙(金昌淑)이 파리장서운동의 서명자를 규합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성주에 오자 이에 동참하기로 결정하였다.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이 작성한 「통고국내문(通告國內文)」에도 조카 정종호(鄭宗鎬)와 함께 서명하였다.

같은 해 4월 2일 성주군 만세운동 탄압과정에서 송우선(宋祐善)·송훈익(宋勳翼)·송문근(宋文根) 등이 붙잡혀 파리장서운동이 일제 측에게 발각되자, 파리장서 서명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었다. 4월 8일 성주경찰서에서 호출장을 보내 자진 출두를 명령하였다. 이에 “내가 만약 소환에 응하면 전후로 죄를 추궁하기를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짐승들의 감옥에서 자진(自盡)하는 것보다는 내 몸을 온전히 하여 죽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라며 거부의 뜻을 밝힌 뒤, 다음날인 1919년 4월 9일 자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우석⋮

|참고문헌|

慶尙北道警察部, 『高等警察要史』, 1934(안동독립운동기념관 편, 『국역 고등경찰요사』, 2010).
心山記念事業準備委員會 編, 『躄翁一代記』, 太乙出版社, 1965.
鄭宗鎬, 『磊軒先生文集』 下, 1980.
郭鍾錫, 『俛宇集』 4, 亞細亞文化社, 1984.
儒林團獨立運動實記 編纂委員會, 『國譯 儒林團獨立運動實記』, 대보사, 2001.
서동일, 『1919년이라는 문턱과 파리장서운동』, 선인,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