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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숙 崔貞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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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명 | 최정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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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명 | 崔貞淑 |
| 본 관 | 탐진(耽津) |
| 이 명 | |
| 출신지 | 제주(濟州) |
| 생몰년월일 | 1902. 2. 10 ~ 1977. 2. 22 |
| 운동계열 | 3.1운동 |
| 관련 단체 | 제주여자청년회 |
| 관련 사건 | 1919년 서울 만세운동 |
| 주요 활동 |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 만세시위 참여 |
| 포상훈격(연도) | 대통령표창(1993) |
1902년 2월 10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제주면(濟州面) 삼도리(三徒里)에서 아버지 최원순(崔元淳)과 어머니 박효원의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아버지는 평북 희천군수와 창성군수를 역임하였고, 광복 이후 초대 제주지방법원 법원장을 지냈다. 서울 진명여학교를 마치고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였다.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인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1일 재동여자보통학교에서 교생실습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불참하고 기숙사에서 쉬고 있던 중, 밖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이에 참여하였다. 기숙사에 있던 최용숙(崔容淑)·한화순(韓化順) 등 동창생들과 더불어 밖으로 나와 시위대에 합류한 후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학생들을 포함한 3,000~4,000명의 시위대와 함께 탑골공원에서 나와 만세를 부르며 종로(鍾路)와 무교정(武橋町, 현 무교동 일대)을 거쳐 대한문 쪽으로 행진하였다. 이어서 대한문과 덕수궁 앞을 지나 서대문정(西大門町)·서소문정(西小門町)·장곡천정(長谷川町)을 거쳐 본정(本町) 방향으로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붙잡혀 오랜 기간 예심을 거친 결과 1919년 8월 30일 경성지방법원으로 공판 회부가 결정되었다. 같은 해 11월 6일 오세창(吳世昌)·박규훈(朴圭壎)·안규용(安圭瑢) 등과 함께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미결구류일수 중 90일 본형 산입),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1921년 제주에서 강평국(姜平國) 등과 함께 여성 강습소인 여수원(女修園)을 개설하였고, 1927년에는 제주여자청년회를 조직하고 집행위원을 맡았다. 1942년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제주에 정화의원을 개원하고, 무료의료봉사 등을 통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
1954년에는 신성여자고등학교 초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또한 대한적십자사 제주지사 부지사장, 제주도중등교육회 회장, 대한결핵협회 제주도지부장으로도 활동하였다. 1964년 교육자치제 시행 이후에는 초대 제주도교육감으로 선출되어 4년 동안 재직하였다. 1966년 5·16민족상이 제정된 후, 제2회 교육부문 본상을 수상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