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현 張奎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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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장규현
한자명 張奎賢
본 관
이 명 김윤식(金允植)
출신지 미상
생몰년월일 미상 ~ 1908. 2. 11
운동계열 의병
관련 단체 양봉익 의병부대
관련 사건 후기의병(양봉익 의병부대)
주요 활동 1908년 양봉익 의병부대에서 정찰·첩보 활동 전개
포상훈격(연도) 애국장(1996)

출생시기와 출신지, 집안내력과 성장과정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명은 김윤식(金允植)이다. 1908년 양봉익(梁鳳翊) 의병부대에 들어간 후, 상인 신분으로 위장하고 정찰·첩보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수비대에게 붙잡혀 희생되었다.

1907년 정미의병이 일어난 후, 관북지역에서는 이른바 산포수를 중심으로 조직된 의병부대가 항일투쟁에 합류하였다. 함남 삼수(三水)·갑산(甲山)·장진(長津) 일대를 중심으로 주로 활동한 산포수의병은 사냥을 업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강력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1908년 일제가 공포한 ‘총포급화약류단속법(銃砲及火藥類團束法)’으로 인해 소지하고 있던 무기류를 압수당하면서 생계의 위협을 받게 된 다수의 산포수들이 이에 반발하며 의병부대에 동참해 활동하였다.

양봉익은 산포수 출신 의병장으로 1908년 2월 150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함남 장진군(長津郡) 일대와 삼수군·후창군(厚昌郡)의 접경지대인 수채동(水采洞)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또한 1908년 3월에는 ‘갑산유장진창의대장(甲山留長津倡義大將)’ 명의로 서간도 한인사회의 지도자인 ‘관리사(管理使) 도주(都主)’에게 무기구입을 후원해 달라는 문서를 발송하기도 하였다.

1908년 2월 9일 장진군을 정찰하러 갔다가, 장진군에서 10리 정도 떨어진 강가에서 의병에 대한 정보를 조사하기 위해 출장 나와 있던 함남경찰서 순사부장 후지에 가쓰지로(藤江勝次郎)과 수비대 일행과 마주치게 되었다. 이에 몸을 피하고자 하였으나, 결국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조사를 당하였다. 이때 자신을 김윤식이라는 상인이라고 진술하였지만, 결국 가지고 있던 서류와 허리띠에 찬 식량이 발견되면서 의병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후 일제 경찰로부터 양봉익 의병부대의 동정과 내부의 분위기, 무기와 식량 사정 등에 대해 중점적으로 심문을 받았다. 같은 해 2월 11일 양봉익 의병부대에 협조하던 서홍순(徐弘淳)·남호권(南浩權)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일제 순사들과 더불어 신흥장(新興庄)에 도착하였다. 서홍순·남호권은 일제 경찰들이 자신들을 붙잡기 위해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고 도주하였지만, 결국 추격전 끝에 붙잡히고 말았다. 이후 두 사람은 포박당한 채 심문을 받다가 탈출하고자 하였지만, 결국 일제 수비대에게 총살당하였다. 이때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서 역시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붙잡혀 총살당하여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참고문헌|

「暴徒 情報의 件」, 1908. 2. 27, 『暴徒에 關한 編冊』.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독립운동사자료』 9,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