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치호 林致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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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임치호
한자명 林致昊
본 관
이 명
출신지 경기 남양(南楊)
생몰년월일 1878. 4 ~ 1951. 9. 29
운동계열 미주방면
관련 단체 공립협회, 대한인국민회
관련 사건
주요 활동 대한인국민회 지방회 간부 및 중앙집행위원
포상훈격(연도) 애족장(2017)

경기도 남양(南楊) 대부(大阜) 영흥(靈興, 현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도)에서 태어났다. 1878년 4월에 출생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로스앤젤레스 로즈데일 공동묘지에는 1873년에 출생하여 1951년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08년 3월에 발행된 신문에는 31세로 소개되어 있다.

1905년 12월 21일 샌프란시스코회 회관을 위한 모금에 김운경·오원영·김경춘·이재수·전명운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1905년 이전 미국으로 이주하여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한 것으로 보여진다. 1906년 12월 공립협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에서 ‘회원 자격’으로 보고하고 있는 사실로 미루어, 그 이전부터 공립협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1907년 12월 솔트레이크지방회로 옮겼다.

1908년 3월 공립협회의 기관지인 『공립신보』를 한국에 널리 알리기 위해 ‘1인당 10부씩 발송’하자는 제의에 동참하였다. 『공립신보』의 식자기계 구입을 위해 금화 75원을 보태기도 하였다. 3월 말 솔트레이크지방 공립관에서 개최된 토론회의 연설자 중 한 명으로 참석하였고, 6월 바살니아로 옮겨 프레즈노 지방의 연합공립관 설립을 지원하였다. 7월 15일 핸포드 재류 공립협회원 23명 중 한 명으로 지방회 신설을 청원하였다. 10월 아세아실업주식회사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다. 아세아실업주식회사는 1908년 10월 21일 공립협회가 블라디보스토크에 본사를 둔 회사였다. 미국과 하와이에 지부를 설치하였으며, 연해주와 만주 일대에 독립군 기지 개척을 목적으로 하였다. 1909년 2월 국민회가 창립되면서 태동실업주식회사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08년 8월 프레즈노연합공립관 소속으로 이재수와 함께 포도 수확 일자리를 한인 동포들에게 주선하였다. 1909년 대한인국민회 솔트레이크시티 지방회 산하 와이오밍주 그린리버지방 임시파출소 사무원으로 선임되었다. 1911년 6월 네브라스카주 헤이스팅스에서 한인소년병학교 여름학기 군사훈련에 참여하였다. 1918년 5월 『신한민보』에서 식자기계 구입비 2천 원을 모집하기 위해 동맹자 500명을 모집할 때, 제5회 동맹자로 가입하였다. 1920년 7월 5일 캘리포니아주 윌로우스에서 한인비행사양성소가 개교식을 열 때, 간사로 활동하였다. 1920년 8월 차인재와 혼인했는데, 차인재는 1895년 수원에서 출생하여 이화고등보통학교를 나온 뒤 미국으로 이민, 대한인국민회 소속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21년 대한인국민회 맥스웰지방회 행사에서 환영사를 하였고, 1923년 맥스웰지방회 법무, 1924년 재무를 맡았다.

1932년 3월 산타나에서 애나햄으로 이사하여, 채소상점을 운영하였다. 1932년 5월 대한인국민회 상해사변임시위원부 산타나 지역 수전위원으로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나섰다. 1934년 8월 12일 흥사단에 입단하였다.

1935년 로스앤젤레스지방회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같은 해 로스앤젤레스 3·1국어학교 임원으로 선임되었다. 1936년 로스앤젤레스지방회 회장을 연임하였다. 그해 5월 대한인국민회 주최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재미한인사회 발전책 간담회에 남가주 대표 중 한 명으로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는 한인 1세 노인의 구제, 2세 청년의 단결과 교양, 대한민국 임시정부 후원 등이 논의되었다. 회장을 역임하는 동안 3·1절 기념식과 국치일 기념식 등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1940년 12월 20일 대한인국민회 제5차 대표대회에서 1941년도 중앙집행위원 15인 중 1인으로 선임되었으며, 교육위원으로도 선정되었다. 1942년 로스앤젤레스 지방회 감찰위원으로 선임되는 한편, 대한인국민회총회 후보집행위원을 역임하였다. 1943년 대한인국민회총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되는 한편, 중앙상무부 구제위원을 맡았다. 이때 송오균 등 11인과 함께 임시정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이승만에 대해 잘못된 신뢰를 갖고, 사람들의 바람을 묵살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좌절하고 있다는 소식을 통지하게 되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라는 내용의 전보를 보내기도 하였다. 1945년 대한인국민회총회 중앙감찰위원을 역임하였다.

1905년부터 1945년까지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자금 및 미국 한국인 사회를 위한 교육활동 등에 의연금을 출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곽금선⋮

|참고문헌|

『공립신보』.
『신한민보』.
국사편찬위원회 편, 『대한민국 임시정부자료집』 43, 2011.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8, 1974.
도산안창호선생전집편찬위원회 편, 『도산안창호전집 10』, 2000.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편, 『미주국민회자료집』 17,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