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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발 金景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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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명 | 김경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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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명 | 金景發 |
| 본 관 | |
| 이 명 | |
| 출신지 | 경북 영덕(盈德) |
| 생몰년월일 | 1864 ~ 미상 |
| 운동계열 | 3.1운동 |
| 관련 단체 | |
| 관련 사건 | |
| 주요 활동 | 1919년 3월 19일 경북 영덕군 창수면 만세시위 참가 |
| 포상훈격(연도) | 애족장(2006) |
1864년경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신리동(新里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9일 창수면 창수동(蒼水洞)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영덕 지역의 3·1운동은 3월 18일 영해 장터에서 시작되었다. 영해 장터의 만세 시위는 3월 18일 오후 1시경부터 시작되어 이튿날까지 계속되었다. 장터에 모인 군중은 독립 만세를 외치고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하였다. 시위하던 군중은 영해경찰관주재소·영해공립보통학교·영해공립심상소학교·영해면사무소·영해우편소 등을 습격하여 기물을 파손하기도 하였다. 이후 만세 시위 운동은 군내 총 9개 면 가운데 영덕면·남정면(南亭面)·지품면(知品面)·영해면(寧海面)·병곡면(柄谷面)·창수면 등 6개 면에서 일어났다. 영덕, 특히 영덕 북부의 영해면·창수면·병곡면의 시위는 경상북도 내에서도 가장 격렬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3월 19일 권재형(權在亨)·이현우(李鉉祐)·박치운(朴致雲)·이현설(李鉉卨)·이현석(李鉉奭) 등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창수경찰관주재소 부근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를 습격하여 벽과 천장 등을 파괴하였으며, 건물 내 집기와 공문서 등을 파손하였다. 또한, 주임순사와 한국인 순사보들이 마을 사람들의 집에 숨겨둔 여러 잡품과 서적을 찾아 파괴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에 체포되어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방해, 건조물손괴, 기물손괴, 공문서훼기, 상해,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