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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관학 金寬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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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관학
한자명 金寬學
본 관  
이 명  
출신지  
생몰년월일 미상 ~ 1922. 10
운동계열 만주방면
관련 단체  
관련 사건  
주요 활동 1922년 대한통의부 의용대 제7중대원으로 활동.
포상훈격(연도) 애국장(1995)

출생지 및 출생 연도 모두 미상이다. 1922년 8월 류허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에서 서간도 통일 독립군단으로 결성된 대한통의부(통의부)에 참가하여 통의부 의용군 제7중대원으로 활동하였다. 일제가 1920년 10월 ‘훈춘사건’(琿春事件)을 조작하여 남북만주에 일본군을 대거 투입하여 대대적인 독립군 토벌을 단행하면서 서북간도의 많은 독립군 단체가 근거지를 잃고 흩어졌고 수많은 한인이 학살당하는 ‘경신참변(庚申慘變)’을 겪었다.

「한인사회당 역원선거의 건」(1920.3.31) [판형3]

이후 서간도 각지에 새로이 근거지를 구축한 독립군 단체들은 더 이상 소규모의 단일 부대로는 효율적인 항일전을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독립군 단체의 통합을 모색하였다. 1922년 봄 남만 지역의 서로군정서·대한독립단·광한단 등의 대표들이 모여 남만통일회의를 결성하고 통합조직체로서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를 조직하였다. 얼마 뒤인 그해 8월 22일 환런현(桓仁縣) 마권자(馬圈子)에서 서로군정서·대한독립단·한교회·광복군총영·평안북도독판부 등 8개 단체의 대표가 모여 대한통군부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대한통의부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각 독립군 단체의 대원들을 통합하여 통의부 의용군으로 재편하였다. 초기 의용군은 김창환(金昌煥)을 사령관으로 하고 1개 대대 아래 5개 중대와 독립 중대인 유격대 및 헌병대의 7개 중대로 편제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벌였다.

통의부가 조직되고 군사 조직으로 의용군이 편성되면서 통의부에 참여하여 의용군 제7중대원이 되었다. 의용군은 남만 각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벌이는 가운데 1922년 8월에서 11월 사이 주로 류허현 대항구(大荒溝)·소황구(小荒溝)·삼도구(三道溝)·야저구(野猪溝)·입자구(砬子溝)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과 밀정 처단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해 10월 하순 의용군 제7중대장 김우권(金宇權)의 지휘를 받아 중대원 11명과 함께 류허현 방면으로 행군하였다.

김관학 순국 보도(『독립신문』 1922.11.30) [판형4]

날이 어두워지면서 대원 모두가 야저구의 김교성(金敎成) 집에 투숙하였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8시경 고모토(河本)라는 일본 밀정이 지도하는 중국 산림대 400여 명이 의용군이 묶고 있던 김교성 집을 포위하고 기습 공격하였다. 집 밖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의용군으로부터 일본군이 습격한다는 급보를 받은 나머지 대원들은 급히 집에서 나와 산으로 피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미 이중으로 포위되어 의용군은 불리한 위치에서 중국 산림대와 총격전을 벌였다. 총탄이 빗발치는 속에서 중대장 김우권이 앞장서 용감히 싸웠으나 중상을 입었고 자신을 구하려는 부하들에게 ‘나를 구하려다 모두 몰살할 것이니 너희는 군인 정신을 발휘하라’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결하였다. 중국 삼림대에게 포위당한 가운데 용감하게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의용군 7중대 부사(副士) 김하성(金河成), 참사(參士) 왕유박(王瑜璞), 대원 한정도(韓正道)·전명근(田明根)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그 사이 나머지 대원 4명은 중상을 입은 이상룡(李相龍)·김정산(金正山)·신정순(申禎淳)을 부축하여 오후 10시경에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였다. 1922년 11월 30일 자 『독립신문』에서 “지난달 하순에 중국 산림대와 교전 중 전사하였다”라는 보도로 미루어 1922년 10월 하순경에 순국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참고문헌|

「高警 제9156호 鮮人ノ行動ニ關スル件」,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鮮人과 過激派』 1, 1920.3.31 ; 「機密 제23호 韓人社會黨役員選擧ノ件」,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9, 1920.4.3 ; 「普通受 제158호-公 제146호 不逞鮮人ノ跋扈狀況竝取締方ニ法關スル件」,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 34, 1922.11.17 ; 「普通受 제20호-本公 제13호 不逞鮮人情報送付ノ件」,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 35, 1923.1.16 ; 「南滿我軍의 遭難慘報」, 『독립신문』 1922.11.30.
  • 「한인사회당 역원선거의 건」(1920.3.31)
  • 김관학 순국 보도(『독립신문』 1922.11.30)
  • 「鮮人에 관한 건」(1920.4.17)
  • 「선인의 행동에 관한 건」(1920.4.3)
  • 김관학 순국 보도(『독립신문』 1922.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