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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권갑동 權甲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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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권갑동
한자명 權甲東
본 관
이 명
출신지 전라북도 고부(古阜)
생몰년월일 1883 ~ 미상
운동계열 의병
관련 단체
관련 사건 후기의병
주요 활동 1909년 고부에서 군자금 모금 등 의병에 참여하여 활동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5)

1883년경 전라북도 고부군(古阜郡) 답내면(沓內面) 서산리(西山里, 현 정읍시 이평면 팔선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 당시 28세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당하고 대한제국의 군대까지 해산되자,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였다. 1908년 이후에는 전라도 지역의 의병 투쟁이 활발하였다. 의병들은 삼남 지방을 누비며 반일 활동과 더불어 친일 세력인 일진회와 밀정 등을 처단하였다. 의병들은 유격전에 능숙하여 주간에는 군청 등 관서의 동정을 정찰하고 기회를 잡으면 기습 공격으로 총기와 탄약 및 물자를 빼앗았다. 전라도의 순사주재소는 거의 습격을 당하였다고 한다. 의병들은 일제의 침탈을 저지하려고 침략 기구와 일본인 이민자를 쫓아내는 데 적극적이었다. 이와 같은 반일 투쟁의 열기는 1909년까지 지속하였다. 일본 측 기록에는 “전라남북 양도는 전년부터 계속 소란이 그치지 않았다. 특히 남도에서 더욱 심하였다” 라고 남았다.

당시 고부 지역 의병들의 활약상을 살펴보면 군용금 모금, 결세 탈취, 헌병분견소 공격, 일본인 가옥 습격 등이 드러난다. 1909년 2월 23일 김명원(金明元) 등 의병 8명과 함께 고부군 답내면에서, 같은 달 고부군 오금면에서 군자금을 모으는 활동을 벌였다. 체포된 후 1910년 6월 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3년 형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서진교⋮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 1, 1974 ;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독립운동사자료』 13, 1984 ; 국가보훈처 편, 『독립유공자공훈록』 12, 1996.
  • 정미의병
  • 판결문(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 191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