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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도일 金道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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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도일
한자명 金道一
본 관 김해(金海)
이 명  
출신지 충청남도 서산(瑞山)
생몰년월일 1886. 7. 7 ~ 1919. 5. 24
운동계열 3.1운동
관련 단체  
관련 사건 대호지면 만세시위
주요 활동 1919년 4월 4일 대호지면 만세시위 참여
포상훈격(연도) 애국장(2004)

1886년 7월 7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재 당진군) 마중리에서 태어났다.

만세시위 집결지 대호지면사무소(충남 당진) [판형2]

대호지면의 만세 시위는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 유생들과 천도교(天道敎) 세력이 연합하여 치밀하게 추진되었다. 이 지역은 구한말부터 천도교도(옛 동학교도)가 많아 항일사상이 강한 고장이었다. 고종의 인산(因山)에 참례하고 귀향한 남주원(南柱元) 등 도호의숙의 유생들과 송전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천도교 세력 및 대호지면장 이인정(李寅正)·이대하(李大夏)·송재만(宋在萬) 등 면사무소 직원들은 당시 5일장이 열리던 정미면(貞美面) 천의장터를 만세 운동 장소로 결정하고, 4월 4일 대대적인 만세 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하였다.

주민들의 참여는 면사무소의 공식적인 행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인정 면장은 각 마을의 구장(區長)들에게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의 문서를 발부하여 “4월 4일 면내 가호당 주민 1명씩 출석하여 도로 보수에 참여하라”라는 내용을 주민들에게 전달하였다. 4월 4일 아침 농기구를 지참한 600여 명의 주민이 대호지면사무소에 집결하였다. 이인정과 유생들이 도로 보수는 위장된 목적이었고, 실제 목적은 만세 시위임을 밝히고,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공감하여 주민들과 함께 독립 만세를 고창하면서 7킬로미터 떨어진 천의장터로 향하였다.

천의장터에서 정미면의 주민까지 1,000여 명으로 불어난 군중과 함께 시장 곳곳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만세 시위를 제지하는 천의주재소와 지원 나온 당진경찰서의 경찰들이 당황하여 발포하자, 이들에 대항하여 천의주재소를 습격하는 데 참여하였다.

만세 시위 직후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의 명목으로 경찰에 붙잡혔다. 주재소 습격의 주모자 급으로 지목되어 5월 10일 공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어 옥고를 겪게 되었다. 동월 21일 같은 죄목으로 기소되었으나, 그동안 계속된 고문으로 24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재판부는 동월 26일 사망으로 공소권을 소멸시켰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참고문헌|

공주지방법원 검사국, 『형사사건부』, 1919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권, 국가보훈처, 1971 ; 박상건 편저, 『唐津地域 抗日獨立運動史』, 唐津文化院, 1991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편, 『충남의 독립운동가』 1권, 2011.
  • 만세시위 집결지 대호지면사무소(충남 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