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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규현 金奎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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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규현
한자명 金奎鉉
본 관  
이 명  
출신지 경상남도 창원(昌原)
생몰년월일 1903. 1. 6 ~ 1933. 2. 19
운동계열 3.1운동
관련 단체  
관련 사건 진전면 만세시위
주요 활동 1919년 4월 3일 진전면 만세시위 참가
포상훈격(연도) 대통령표창(2007)

1903년 1월 6일 경상남도 마산부(馬山府) 표정(俵町)에서 출생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주소는 경남 창원군(昌原郡) 진전면(鎭田面) 곡안리(谷安里)였다.

창원군 진전면의 만세 시위는 3월 28일 진동면(鎭東面) 고현(高縣) 장날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한 후, 피신하였던 변상태(卞相泰)·권영대(權寧大)·권태용(權泰容) 등이 계획하였다. 4월 3일 진전면·진북면(鎭北面)·진동면의 3개면이 연합 만세 시위를 펼쳤다.

4월 3일 9시 회집 장소인 진전면 양촌리 냇가의 둑에 군중이 운집하여 독립 만세를 외치며 진동면으로 시위 행진을 시작하였고, 별도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 만세를 부른 진동면 주민들도 이에 가세하여 시위 군중이 5,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급보를 받고 출동한 헌병과 보조원 8명 및 재향군인 30여 명이 시위 군중과 충돌하였고, 마산에서 응원 출동한 일본군 야포대대 군인까지 합세하여 무차별 사격을 가하였다. 헌병과 군인의 무차별 탄압으로 8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고 부상자는 22명에 달하였다. 이날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6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고, 마산감옥에서 옥고를 겪은 뒤 1919년 10월 3일 출옥하였다.

1921년 11월 중앙학교(中央學校) 재학 중 학우들이 만세 운동을 위한 기(旗)와 탄원서를 제작할 때 장소를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다가 체포된 후 같은 해 12월에 석방된 사실이 확인된다.

진전면 만세 시위 보도(『매일신보』 1919.4.7) [판형2]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참고문헌|

『독립운동사』 제3권, 1971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국사편찬위원회, 제55권, 2003.
  • 진전면 만세 시위 보도(『매일신보』 1919.4.7)
  • 진전면 만세시위 참여자 심문 보도(『매일신보』 1920.10.12)
  • 진전면 만세시위 회집장소 양촌리 냇가 전경(경남 창원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