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글자크기조절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교선 金敎善

Profile Image
기본정보
한글명 김교선
한자명 金敎善
본 관
이 명
출신지 충청남도 천안(天安)
생몰년월일 1892. 6. 6 ~ 1970. 7. 25
운동계열 3.1운동
관련 단체
관련 사건 병천면 만세시위
주요 활동 1919년 4월 1일 천안군 병천면 만세시위 주도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0)

1892년 6월 6일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수신면(修身面) 발산리(鉢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28세였다. 같은 마을에 사는 이순구(李旬求)와 함께 고종 장례식 참여를 위해 3월 1일에 상경하였다가 만세 시위를 목격하고 돌아왔다.

3월 말 홍일선(洪鎰善)이 찾아와 4월 1일 병천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벌일 예정이니 동참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마을의 유지인 박영학(朴永學), 수창리에 거주하는 한동규, 성남면의 이백하 등에게 동참할 것으로 권유하여 수락을 받았다.

3월 30일 저녁에 박영학·이순구·한동규 등과 함께 발산리 마을 뒷산에 올라가 횃불을 놓고 다 함께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 소리에 주민들이 호응하여 횃불을 지피고 함께 만세를 불렀다. 또한, 마을을 돌면서 주민들을 직접 설득하고 동의를 얻어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인원들과 함께 새벽까지 횃불을 올리면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만세 시위가 끝난 후, 복다회리에 거주하고 있는 김상훈(金相勳)을 찾아가 다시 만세 시위를 벌일 것을 협의하였다. 김상훈은 유중권과 조인원이 주도하는 용두리의 만세 운동과 합류하자는 의견을 개진하였다.

다음날인 3월 31일 오후, 발산리 마을 주민들과 횃불로 신호를 받은 이웃 마을의 주민들이 발산리의 뒷산에서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부르기로 계획하였다. 이때 마침 병천의 만세 운동을 계획하던 연락원을 통해 병천 장날인 4월 1일로 계획된 병천 장터 만세 운동에 동참하자는 소식이 들어왔다. 3월 31일 저녁부터 글씨를 꽤 쓴다고 알려진 주민 10명과 함께 밤을 새워 만세 운동에 사용할 격문 수백 장을 작성하였다. 다음 날 이 격문을 길목에서 배포하였고, 거사가 계획된 병천장에 가는 사람들에게 만세 운동에 동참할 것을 피력하였다.

4월 1일, 병천 아우내 장터에는 약 3,000명의 주민이 모였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점에 홍일선·한동규·이백하·이순구 등과 함께 이미 계획한 대로 아우내 장터 입구에 섰다. 오후 1시에 조인원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유관순은 장대에 매단 큰 태극기를 들었다. 이때 조인원·유중권 이소제 부부·김상헌·김주헌·김상철 등과 함께 시위 대열에 앞장섰다.

헌병이 장터 시민들의 기세에 눌려 주재소 안으로 철수하자 주재소 뒤로 돌아가 천안으로 연락하는 전화선을 절단하였다. 조병호는 주재소 앞까지 압박해 들어가 주재소 안에서 총을 들고 밖을 내다보던 헌병 야마모토(山本)의 뺨을 때렸다. 조인원은 격분한 주민들을 향해 살생하지 말 것을 외쳤으나, 헌병이 쏜 총에 맞아 조인원을 포함한 시위 군중이 쓰러졌다. 오후 2시경 일본군이 헌병에 합류하여 시위 군중을 향해 사격을 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발포 당시 대부분의 주도자가 붙잡혔으나, 다행스럽게도 피신하여 4월 7일까지 버텼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피해받는 사실을 더 이상 관망할 수 없어, 자수를 선택하였다.

1919년 5월 21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같은 해 7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도 기각되자 상고하였다.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을경⋮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제5집, 1972.
국회도서관 편, 『한국민족운동사료』(삼·일운동편기일), 1977.
이정은, 『유관순 - 불굴의 민족혼, 영원한 빛』,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4.
김교선, 「수신면민을 동원했던 〈김교선〉」, 『신동아』 3월호, 1969.
충남역사문화연구원 편, 『충남을 빛낸 독립운동가』(전2권), 충청남도, 2012.
「포상자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 김교선
    김교선
  • 판결문(공주지방법원, 1919.5.21)
    판결문(공주지방법원, 1919.5.21)
  • 판결문(경성복심법원, 1919.7.4)
    판결문(경성복심법원, 1919.7.4)
  • 판결문(고등법원 형사부, 1919.9.11)
    판결문(고등법원 형사부, 1919.9.11)
  • 천안 만세 시위 보도(『매일신보』 1919.4.6)
    천안 만세 시위 보도(『매일신보』 191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