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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경희 金慶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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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경희
한자명 金慶熙
본 관  
이 명  
출신지 제주도
생몰년월일 1896. 11. 30 ~ 1952. 8. 3
운동계열 3.1운동
관련 단체  
관련 사건 조천면 만세시위
주요 활동 1919년 3월 21일 제주 조천면 만세시위 참가
포상훈격(연도) 대통령표창(1993)

1896년 11월 30일 전라남도 제주도(濟州島) 신좌면(新左面) 조천리(朝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조천리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제주도에서 가장 먼저 만세 시위가 일어난 곳은 신좌면 조천리였다. 조천 유림 가문의 김시범(金時範), 김시은(金時殷)은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독립을 선언하는 시위운동이 발발하고 있음을 듣고, 조천 지역에서도 만세 시위를 개시하기로 하였다. 3월 16일 서울에서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 4학년에 재학하던 김시범의 조카 김장환(金章煥)이 만세 시위에 참가해 활동하다가 독립선언서를 갖고 조천리로 귀향하였다. 김시범과 김시은은 김장환으로부터 서울에서의 시위 상황을 전해 들었다. 이튿날인 17일 김시범과 김시은·김장환은 조천리 미밋동산(味毛峙)에서 거사하기로 발의하고 동지 규합에 나섰다. 거사에 동참할 동지를 규합할 때 고재륜(高載崙)·김용찬(金容燦)·김형배(金瀅培)·황진식(黃鎭式) 등과 함께 시위에 함께할 것을 찬성하였다. 또 시위 날짜를 제주도 내에서 명망이 높았던 유학자 김시우(金時宇)의 기일인 3월 21일로 정하였다.

3·1독립운동 기념탑(제주) [판형2]

3월 21일 오전 10시경 김시범·김시은 등 주도자와 함께 인근 주민, 서당 학생 등 150여 명과 함께 미밋동산으로 향하였다. 오후 3시경에 미밋동산에서 김시범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500~600여 명의 시위 대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조천 비석거리까지 행진하는 데 참여하였다. 행진 도중 신촌리에서 조천주재소 및 제주경찰서에서 출동한 일제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현장에서 김시범·김시은 등 시위 주도자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였으나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하면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참고문헌|

「판결문」, 大邱覆審法院, 1919.5.29. ; 「수형인명부」, 大邱覆審法院, 1919.5.29 ; 「집행원부」, 大邱覆審法院, 1919.5.29 ; 『매일신보』 1919.5.1 ; 『독립운동사』 제3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 李龍洛, 『三·一運動實錄』, 三·一同志會, 1969 ; 金東栓, 「濟州人의 3·1運動과 그 영향」, 『耽羅文化』 16, 1996.
  • 미밋동산 3·1운동 만세시위지에 전시된 독립운동가 묘비(제주)
  • 판결문(대구복심법원, 1919.5.29)
  • 제주소요공판 보도(『매일신보』 1919.5.1)
  • 3·1독립운동 기념탑(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