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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박정선 朴正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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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박정선
한자명朴正善
본 관밀양(密陽)
이 명호 : 연암(淵菴), 자 : 이정(而貞), 이명 : 박쾌선(朴快善)
출신지경남 산청
생몰년월일1879. 6. 16 ~ 1956. 2. 6
운동계열3·1운동
관련 단체 
관련 사건 
주요 활동1919년 3월 파리장서에 서명
포상훈격(연도)건국포장(2005)

1879년 6월 16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산인면(山仁面)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경남 산청군(山淸郡) 신등면(新等面) 평지리(坪地里)이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子)는 이정(而貞), 호(號)는 연암(淵菴), 이명(異名)은 박쾌선(朴快善)이다. 아버지는 유학자인 매옥(梅屋) 박치회(朴致晦)로 『매옥집(梅屋集)』을 남겼으며, 어머니는 나주 정씨이다. 『성재집(性齋集)』을 간행한 만성(晩醒) 박치복(朴致馥)이 중부(仲父)이다. 박치복은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등 영남 유림(儒林)들과 교유 관계였다. 집안의 영향을 받아 향리에서 한학자로서 활동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소식을 듣고 골방에서 15일 간 금식하였다고 한다. 1919년 유림 대표의 한 사람으로 이른바 파리장서(巴里長書)에 서명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유림들 또한 일본의 침략을 전 세계에 폭로하고 독립을 호소하는 「독립청원서」(일명 「파리장서」)를 작성하여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萬國平和會議)에 보내기로 결의하였다. 영남 유림을 대표하는 곽종석,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과 호서 유림을 대표하는 지산(志山) 김복한金(福漢) 등이 주도하였다. 「독립청원서」에는 총 137명의 유림 대표들이 연서하였는데, 이때 곽종석의 문인(門人)으로서 서명에 참여하였다. ‘제1차 유림단사건’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은 한국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은 물론 국내 유림들에게도 각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1919년 4월 12일 경상북도 성주(星州)의 만세운동과 관련되어 경찰에 체포된 송회근(宋晦根)에 의해 사건의 전모가 발각되면서 붙잡혀 고초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참고문헌|

경상북도 경찰부, 『고등경찰요사』, 1934(안동독립운동기념관 편, 『국역 고등경찰요사』, 안동독립운동기념관 자료총서 3, 2010) ; 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독립운동사자료』 제4권, 1974 ; 파리장서비건립위원회, 『한국유림독립운동 파리장서략사』, 1973 ; 임경석, 「파리장서 서명자 연구」, 『대동문화연구』 38,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