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복순 朴福淳 |
한글명 | 박복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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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朴福淳 |
본 관 | |
이 명 | |
출신지 | 전북 익산 |
생몰년월일 | 1888 ~ 미상 |
운동계열 | 의병 |
관련 단체 | 유지명 의병부대 |
관련 사건 | 유지명 의병부대 |
주요 활동 | 유지명 의병부대에서 활동 |
포상훈격(연도) | 애족장(1995) |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두남면(斗南面) 장정리(長頂里)에서 태어났다. 190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22세로, 1888년생으로 추정된다. 도자기를 만들면서 생계를 유지하였으며, 유지명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8월 일제가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시키자, 9월 유지명(柳志明)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전북 여산勵(山, 현 익산) 등지에서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았다. 전북 용담(龍潭, 현 진안)·고산(高山, 현 완주)·은진(恩津, 현 논산)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1907년 12월 5일 밤 동지 41명과 여산 순사분파소 등을 습격하여 군수품을 노획하는 등 군수품 모집에 주력하다가 붙잡혔다.
1909년 6월 1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