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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박승유 朴勝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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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박승유
한자명 朴勝裕
본 관 반남(潘南)
이 명  
출신지 서울
생몰년월일 1924. 8. 20 ~ 1990. 11. 2
운동계열 광복군
관련 단체 한국광복군
관련 사건 한국광복군
주요 활동 1944년 일본군 탈출, 광복군 제2지대 합류 이후 대적 심리전 참여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0)

1924년 8월 20일 경성부(京城府) 종로(鐘路) 사직동(社稷洞)에서 박부양(朴富陽)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할아버지는 ‘을사오적’이자, 1910년 강제 병합 시 내부대신 겸 내각총리대신 서리였던 박제순(朴齊純)이고, 아버지 박부양도 부친의 자작 작위를 계승한 친일파이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이던 1940년 11월 동급생 이철주(李鐵柱) 등이 결성한 비밀결사 MH회에 가입하였다. 1941년 이철주가 일제 경찰에 붙잡히면서 조직은 와해되었다. 1942년 경성법학전문학교에 진학하여 1944년 졸업하였다.

1944년 징집되어 그 해 10월 중국 저장성(浙江省) 이우(義烏) 주둔 일본군 제6군 소속 요코이(橫井) 부대에 배속되었다. 11월 25일 신의철(申義澈)·김권(金權)·김영관(金榮觀) 등과 탈출하여 충칭(重慶)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향하던 중 중국 유격대에 합류하였다. 이후 한국광복군에 인도되어 시안(西安)의 제2지대에 합류하였다.

광복군 복무 중 음악 소양을 활용하여 정훈과 대일 심리전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제2지대 징모 제3분처 소속으로 우시(無錫)·우후(蕪湖)·난징(南京) 일대에서 염전(厭戰) 가요와 투항 권고 방송 등을 통한 대적 심리전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박승유 광복군 활동 보도(『자유신문』 1946. 3. 17) [판형1]

 

⋮조유재⋮

|참고문헌|

「판결문」, 경성지방법원, 1942. 12. 2 ; 『조선총독부 관보』, 1942. 4. 7, 1944. 10. 23 ; 『강제동원자 명부』, 국가기록원 ; 『자유신문』, 1946. 3. 17 ; 『동아일보』, 1947. 3. 28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6권, 1975 .
  • 박승유 광복군 활동 보도(『자유신문』 1946.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