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호 閔東鎬 |
한글명 | 민동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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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閔東鎬 |
본 관 | 여흥(驪興) |
이 명 | 호 : 효강(曉岡), 자 : 숙경(叔京) |
출신지 | 경북 청송(靑松) |
생몰년월일 | 1874. 9. 29 ~ 1938. 2. 18 |
운동계열 | 의병 |
관련 단체 | 청송의진 |
관련 사건 | 전기의병(심성지) |
주요 활동 | 1896년 청송의진에서 참모로 활동 |
포상훈격(연도) | 건국포장(1997) |
1874년 9월 29일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안덕면(安德面) 명당리(明堂里)에서 아버지 민치호(閔致澔)와 어머니 월성이씨(月城李氏) 사이에서 4남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조선조 세종 때 청송군 안덕면 당저리(棠底里)로 입향한 남은(南隱) 민흥(閔興)의 후예이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자는 숙경(叔京)이고, 호는 효강(曉岡)이다. 청송면(靑松面) 거대리(巨大里)에서 살았으며, 벼슬은 종사랑(從仕郎) 의릉참봉(懿陵參奉)을 역임하였다.
1896년 3월 일어난 청송(靑松)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그 해 3월 16일 대장기를 세우고 창의한 청송 부대는 의병장 심성지(沈誠之)를 비롯하여 부장 조성박(趙性璞)·중군장 김대락(金大洛)·좌익장 김상길(金相吉)·우익장 남두희(南斗凞)·사병도총 남승철(南昇喆)·의영도지휘사 서효원(徐孝源) 등을 추대하여 진용을 갖추었다. 그 뒤 청송의진에서는 군비의 효율적인 모집과 운용을 위해 4월 6일과 4월 29일 두 차례에 걸쳐 진용을 정비하였다. 4월 29일 청송의진은 참모 신동호(申東鎬)의 제안에 따라 진용을 재편성할 때, 조성로(趙性魯)·조성원(趙性源)·심능규(沈能奎)·조광규(趙光奎) 등과 함께 참모(參謀)로 선임되었다.
청송의진의 참모로서 그 해 5월 9일 흥해출진소(興海出陣所) 설치, 5월 13일 의성(義城) 연합 의병부대 결성, 그리고 5월 14일 감은리전투(甘隱里戰鬪), 5월 22일 영덕출진소(盈德出陣所) 설치 등에 참여하였다. 청송 의병부대가 의병 해산 조칙(詔勅)에 따라 진영을 해산하는 8월까지 활동하였다.
이후 행적은 알려진 바 없으며, 1938년 2월 18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