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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노순경 盧順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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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노순경
한자명 盧順敬
본 관 풍천(豊川)
이 명 이명 : 노순교(盧順敎)
출신지 황해 송화(松禾)
생몰년월일 1902. 11. 10 ~ 1979. 3. 5
운동계열 3.1운동
관련 단체  
관련 사건 서울 만세시위
주요 활동 1919년 12월 2일 서울 만세시위 참여
포상훈격(연도) 대통령표창(1995)

1902년 11월 10일 황해도 송화군(松禾郡) 풍해면(豊海面) 성하리(城下里)에서 출생하였다. 관립무관학교 교장·헌병대장·육군연성학교 교장 등 대한제국 육군의 요직을 역임한 노백린(盧伯麟) 장군의 둘째 딸이다. 노순교(盧順敎)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1919년 정신여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였다.

이갑성(李甲成)·함태영(咸台永)을 비롯한 세브란스 인사들이 1919년 만세운동 준비과정에 깊이 간여했으므로 세브란스의 간호사들 또한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세브란스 간호사들은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도 하였지만, 붕대 등 의료용품을 지참하고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적십자사 활동도 병행하였다.

1919년 12월 2일 서울 훈정동(薰井洞) 종묘(宗廟)에는 많은 군중이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당시 18세로 세브란스병원에서 간호사로 함께 근무하던 박덕혜(朴德蕙)·이도신(李道信)·김효순(金孝順)과 함께 오후 7시경 훈정동에 모였다. 당시 박덕혜는 21세였고, 나머지는 모두 동갑내기로 아직 어린 나이였다. 흰색 옷감에 붉은 글씨로 ‘조선독립만세(朝鮮獨立萬歲)’라고 쓴 깃발을 흔드는 김효순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면서 모여 있던 2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부르고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때 출동한 경찰에 의해 시위 현장에서 붙잡혔고, 약 2주 뒤인 1919년 12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0년 4월 28일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상순⋮

|참고문헌|

「판결문」, 경성지방법원, 1919. 12. 18 ; 「신분장지문원지」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매일신보』, 1919. 12. 20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5, 1972 ; 김승태·유진·이항 엮음, 『강한 자에는 호랑이처럼 약한 자에는 비둘기처럼』,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2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사학과, 『세브란스독립운동사』, 역사공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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