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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도중삼 都仲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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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도중삼
한자명 都仲三
본 관  
이 명  
출신지 충남 당진
생몰년월일 1878 ~ 1907. 11. 17
운동계열 의병
관련 단체 정정현 의병부대
관련 사건 후기의병
주요 활동 1907년 11월 정정현 의병부대에서 활동
포상훈격(연도) 애국장(2003)

충청남도 면천군(沔川郡, 현 당진시) 승선면(昇仙面) 가재리(佳才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78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07년 11월 정정현(鄭定鉉)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고, 각국 공사들도 한국을 떠났다. 또, 1906년 2월에는 통감부(統監府)를 설치하고,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한 것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곧이어 한일신협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의 법령제정권·행정권·관리임명권 등을 강탈하였으며, 그 부속 밀약에 의거하여 군대마저 해산시켰다. 이에 각지에서 의병투쟁이 재개되었고, 해산 군인들이 각 지역의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그 규모와 전투력을 한층 향상시켰다.

이처럼 의병항쟁이 한창 전개되던 때인 1907년 10월 이경칠(李敬七)의 권유를 받고 경기도 수원(水原) 일대에서 활동하던 정정현 의병부대에 가담하였다. 10월 9일 의병 55명과 함께 수원에서 충남 당진(唐津)까지 배로 이동하여 당진분파소(唐津分派所)를 습격하는 작전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11월에는 충남 예산군(禮山郡) 신례원(新禮院)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의병 모집 활동을 전개하던 중, 당진 남원포(南元浦)에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07년 11월 17일 홍주분견소(洪州分遣所)로 압송되어 가던 중, 면천군 마산면(馬山面)의 산 속에서 포승줄을 끊고 탈출하다가 붙잡혀 희생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일제의 도중삼 참살 보고(1907. 11. 25) [판형1]

 

⋮이정윤⋮

|참고문헌|

「홍비수 제1664-1호, 폭도 참살의 건 보고」, 1907. 11. 19, 『폭도에 관한 편책』 ; 김상기, 「한말 당진지역 의병의 항일투쟁」, 『한국근현대사연구』 제41집, 한국근현대사학회, 2007.
  • 일제의 도중삼 참살 보고(1907.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