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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노능서 魯能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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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노능서
한자명 魯能瑞
본 관  
이 명 서준철(徐俊哲)
출신지 평남 용강(龍岡)
생몰년월일 1923. 9. 1 ~ 2014. 4. 9
운동계열 광복군
관련 단체 한국광복군
관련 사건 독수리작전
주요 활동 1944년 일본군을 탈출한 이후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 1945년 독수리작전 훈련 후 국내정진군 전라도반에 배속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0)

1923년 9월 1일 평안남도 용강군(龍岡郡) 대대면(大代面) 덕동리(德洞里)에서 태어났다. 서준철(徐俊哲)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법과를 중퇴하고 고향에 머물다가, 1944년 1월 학도지원병으로 평양의 일본군 제30사단 제50치중병(輜重兵) 부대를 거쳐 중국으로 건너갔다.

1944년 5월 18일 장쑤성(江蘇省) 쉬저우(徐州)에서 승영호(承永祜)·차약도(車若島)와 함께 탈출하여 중국군에 합류하였고, 1944년 6월 안후이성(安徽省) 린취안(臨泉)의 중앙육군군관학교 분교 내 한국광복군훈련반(韓光班)에서 훈련받았다.

이후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배치되어 적 후방에서의 심리전·선전전과 초모활동(招募활동)에 종사하던 중, 독수리 작전(Project Eagle) 훈련을 받고 무전반에 배치되었다. 1945년 8월 신국빈(申國彬)·김상을(金商乙)과 국내정진군(國內挺進軍) 전라도반 제1조에 배속되었다.

1945년 8월 18일 미군 대표를 비롯하여 광복군 제2지대장 이범석과 대원 김준엽·장준하 등과 함께 미군 수송기편으로 서울 여의도비행장에 착륙, 일본군의 항복을 접수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항복 명령을 받지 못했다’는 일본군 측의 거부에 시안(西安)으로 다시 돌아왔다. 12월 2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제2진과 함께 광복군총사령부 경위대 비서 자격으로 귀국하였다.

대한해운공사에 입사하여 도쿄지점장과 뉴욕지점장, 이사 등을 역임하고, 미국으로 이민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김준엽 장준하와 함께(좌측 노능서) [판형1]

 

⋮조유재⋮

|참고문헌|

「한국광복군총사령부명단」, 1977, 국가기록원 소장자료(BA0239772) ; 「4) 報告:今番國內進入經過에 關한 件」, 1945. 9. 8,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13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서울신문』, 1945. 12 . 3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6권, 1975 ; 김광재, 『한국광복군』,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7 ; 정병준, 『광복 직전 독립운동세력의 동향』,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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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엽 장준하와 함께(좌측 노능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