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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권성하 權成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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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권성하
한자명 權成夏
본 관 안동(安東)
이 명 자는 태언(泰彦), 호는 양파(良坡)
출신지 경북 청송(靑松)
생몰년월일 1852 ~ 1914. 3. 25
운동계열 의병
관련 단체  
관련 사건 감은리전투
주요 활동 1896년 청송의진 우익장으로 감은리전투 참전
포상훈격(연도) 건국포장(2004)

1852년경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청송면(靑松面) 부곡리(釜谷里)에서 아버지 권재기(權載紀)와 어머니 안동 김씨安東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태언(泰彦)이며, 호는 양파(良坡)이다. 1889년(고종 26)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임명되었으나 낙향하여 부곡리에 거주하였다.

1896년 3월 16일 창의장 심성지(沈誠之)를 비롯한 청송 지역의 유생들이 결성한 청송의병에 참여하였다. 1896년 3월 안동의병의 소모장 유시연(柳時淵)이 청송에 들어오면서 안동 등지에서 거의(擧義)를 촉구하는 격문(檄文)이 전해지자 청송의 유림은 토적복수(討賊復讐)의 기치를 걸고 의병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이에 청송 유림 200여 명과 함께 청송향교에서 거의를 결의하고 심성지를 대장으로 추대하여 진용을 편성하였다. 이때 우익장(右翼將)에 선임되었다.

1896년 5월 13일 청송의병은 인근에서 의병을 조직한 김상종(金象鍾)의 의성의병과 김하락(金河洛)의 이천의병과 연계하여 연합 의병부대를 결성하였다. 5월 14일 감은리전투(甘隱里戰鬪)를 전개하자, 전투에 참전하였다. 청송의병은 흥해와 영덕에 각기 흥해출진소(興海出陣所)와 영덕출진소(盈德出陣所)를 설치하였다. 5월 22일 청송의병의 우익장으로서 후방장 장무호(蔣武鎬), 참모 조광규, 종사관 심모(沈某), 서기 윤효업(尹孝業) 등과 함께 영덕출진소 포군 3초를 이끌고 영덕의병을 지원하려고 출진하였다. 그날 저녁 지품(知品)에 도착하였으나 이미 영덕의병은 원척(元陟)에서 관군의 공격을 받고 12명이 부상한 채 물러난 뒤였다. 이에 부득이 영덕출진소를 이끌고 다시 회진하고 말았다. 이후 같은 해 5월 25일 청송의병은 관군의 추적과 고종의 해산 칙유(勅諭)에 따라 본진의 해산을 결의하고 8면(面)으로 진을 나누어 외방장(外防將)을 중심으로 하는 면군체체(面軍體制)로 전환하였다. 이때 부내(府內) 지역의 외방장을 맡아 의병 활동을 이어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참고문헌|

沈誠之, 『赤猿日記』 ; 청송군, 『청송군지』, 1990 ; 청송군, 『청송의 독립운동사』, 2004 ; 권대웅, 「1896년 靑松義陣의 조직과 활동」, 『한국근현대사연구』 제9집, 한국근현대사연구회, 1998.
  • 기념비가 건립된 감은리전투지(경북 청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