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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박재화 朴在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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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박재화
한자명朴在華
본 관함양(咸陽)
이 명박재수(朴在授), 자 : 치실(致實)
출신지경북 의성(義城)
생몰년월일1890. 11. 18 ~ 1928. 8. 2
운동계열국내항일
관련 단체단지결사대
관련 사건단지결사대
주요 활동1919년 단지결사대(斷指決死隊), 1921년 흥업단(興業團)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
포상훈격(연도)애족장(1999)

1890년 11월 18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조문면(召文面, 현 금성면) 대리리(大里里)에서 박세환(朴世煥)과 부림 홍씨(缶林 洪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함양(咸陽)이며, 이명은 박재수(朴在授), 자는 치실(致實)이다.

만세운동 직후인 1919년 9월 9일 황용기(黃龍起)·이시우(李時雨) 등과 함께 만주 서간도 방면 이도구(二道溝) 유동(楡洞) 총천구(葱川溝) 일대에서 약 8백명 규모의 단지결사대(斷指決死隊)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결사대의 주요 활동은 자산가들에게 1천원 내지 5백 원의 기부금 모집 통문을 총무부장 황용기 명의로 작성하여 군자금을 징수하는 것이었다. 자산가들로부터 징수한 군자금은 함경북도 무산(茂山)을 통해 국내로 진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는데 사용하고자 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1921년 (음)10월 대구 달성정(達城町) 권정락(權政洛)의 집에서 홍종락(洪鍾洛)의 권유로 만주 지린성(吉林省) 푸쑹현(撫松縣) 소재 독립군 단체인 길림성군정서(吉林省軍政署) 부속 흥업단(興業團)에 가입하여 국내에서 독립군자금 모집을 위한 활동을 하였다. 흥업단은 1920년 윤세복(尹世復)·김호(金虎)·김혁(金爀) 등의 주도로 설립되었다. 표면상으로는 산업진흥과 이주민의 친목을 도모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실제 목적은 항일무장 독립투쟁을 위한 독립군 기지 건설과 군자금 징수에 있었다. 흥업단에서는 중국 동북 3성 일대를 무대로 청년들의 군사훈련과 군자금 징수를 위해 국내로 특파원을 파견하였다. 1921년 말 흥업단장 김호가 이만준(李萬俊) 등 단원 4명을 국내로 파견하였는데, 이들은 밀양과 양산·대구를 거점으로 활동하면서 경상남북도 일대에서 군자금 징수에 착수하였다.

이때 흥업단에 가입하면서부터 경북 청도(淸道)·영천(永川)·달성 등지에서 자산가들로부터 군자금을 징수하는데 적극 참여하였다. 그러던 중 1922년 1월 홍종락과 이재술(李再述) 등이 군자금 징수를 위해 봉화(奉化)로 가던 중 경북 군위(軍威)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조직이 발각, 관련자들이 대거 붙잡혔다. 이때 일제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의성군 금성면(金星面) 학미동(鶴尾洞)으로 피신한 후 은둔하였다. 1928년 8월 2일 사망하였다. 1985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소재 만감정(晩鑑亭) 경내에 「의사 함양 박공 기적비」가 세워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참고문헌|

「판결문」, 대구지방법원, 1923. 10. 16 ; 慶尙北道警察部, 『高等警察要史』, 1934(안동독립운동기념관 편, 『국역 고등경찰요사』, 안동독립운동기념관 자료총서 3, 2010 ; 「조선독립단지결사대의 행동에 관한 건」·「증거품 취급에 대한 지나관헌에 교섭방법에 관한 건」, 1919. 9. 16·19,『불령단관계잡건-조선인의 부·재만주의 부 12』,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동아일보』, 1922.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