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글자크기조절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민춘기 閔春基

Profile Image
기본정보
한글명 민춘기
한자명 閔春基
본 관 여흥(驪興)
이 명  
출신지 경북 청송(靑松)
생몰년월일 1922. 5. 19 ~ 2018. 5. 16
운동계열 일본방면
관련 단체  
관련 사건  
주요 활동 1942년 일본 오사카에서 항일비밀결사 조직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5)

1922년 5월 19일 태어났으며,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안덕면(安德面) 명당리(明堂里) 출신이다.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창씨명은 송강춘기(松岡春基)이다.

1939년 4월 일본 오사카(大阪)로 건너가 신문배달부 등으로 일하면서 간사이공학교(關西工學校)와 교토(京都)의 세이호중학(聖峰中學) 등에서 고학을 하였다. 이 사이에 교토조선인유학생회(京都朝鮮人留學生會)에 가입하여 선배들로부터 민족적인 계몽을 받아 한국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위한 중견지도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1941년 6월부터 오사카 기타구(北區)에서 신문배달부로 일하고 있던 중, 그 해 8월에 오사카공학교(大阪工學校)에 다니던 정규식(鄭圭植)이 신문배달부로 들어오자 서로 동지가 되어 함께 민족운동에 노력하기로 약속하였다.

1942년 1월 조선민족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수련하기 위해서는 학업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교토의 도시샤중학(同志社中學) 4학년에 편입하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하였으며, 정규식 역시 실패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함께 고권삼(高權三)의 『조선근대정치사(朝鮮近代政治史)』, 쑨원(孫文)의 『삼민주의(三民主義)』, 나가노(中野正則)의 『내가 본 만선(我が觀たる滿鮮)』 등을 읽으면서, 중국 혁명의 아버지 쑨원의 삼민주의에서 착안하여 삼천만 한국 민중을 자각 분기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로 하였다.

1942년 8월 우유배달을 하던 최문전(崔文典)이 같은 신문사에 들어오자 동지로 가담시켜 함께 비밀결사를 조직하기로 하였다. 같은 해 9월 오사카의 사쿠라미야공원(櫻宮公園)에서 회합하여 “조선민족해방을 위해서는 참정권 획득 등의 정치투쟁과 같은 미온적 운동으로는 목적을 관철시킬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청년층 가운데 의식분자를 결집하여 독립혁명의 중핵모체가 될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내외(內外)에서 조국독립에 정진하고 있는 동지, 특히 만주지방을 본거로 활동하고 있는 김일성군(金日成軍), 대도군(大刀軍)과 연계하여” 일본의 국력이 쇠퇴해지는 호기(好機)에 민중봉기를 통해 독립을 완수하기로 근본 방침을 정하였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동지를 규합하고 동포를 지도 계몽할 것을 당면한 활동 목표로 설정하였다. 특히 삼천만 동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도 동지로 규합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방침 아래 오사카 인근의 조선인 고학생 문원영방(文原英邦)·이남걸(李南杰) 등 다수의 청년 학생에게 민족의식을 계몽하여 규합하고, 국내의 뜻있는 동지와도 연락을 취하면서 비밀결사를 조직하려고 준비하였다. 대구사범학교(大邱師範學校)에 다니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1941년 8월에 퇴학당한 서산옥제(西山玉濟)가 1942년 9월 오사카를 방문하자, 함께 연합하여 독립 혁명의 중핵 모체가 될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립군과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던 중 일본 경찰에 조직이 발각되어 1942년 10월 15일 붙잡혔다. 1943년 2월 17일 정규식·최문전 등과 함께 오사카지방재판소 검사국으로 송국되었다. 오랫동안 고문과 취조를 받은 후 같은 해 10월 9일 정식으로 기소되어, 11월 18일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오사카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45년 광복 후인 1945년 10월 9일 형 집행이 정지되어 풀려났다.

1977년 9월 5일부터 4박 5일 동안, 일본의 효고모국방문추진위원회(兵庫母國訪問推進委員會) 위원장이 되어 여름방학을 이용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在日本朝鮮人總聯合會) 계통의 청년 학생 13명을 인솔하여 한국을 방문하였다. 대부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교토대학(京都大學), 규슈대학(九州大學) 등의 재학생 또는 졸업생들로서, 처음으로 조국의 발전상을 돌아보기 위해 서울의 주요 대학과 경주(慶州), 울산(蔚山) 등지를 방문한 것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변은진⋮

|참고문헌|

「在所證明書」, 오사카형무소, 1995. 4. 20 ; 『매일경제신문』, 1977. 9. 7 ; 朴慶植 編, 『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 5, 東京:三一書房, 1975 ; 明石博隆·松浦總三 共著, 『昭和特高彈壓史』 8, 東京:太平出版社, 1976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3, 1977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3, 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