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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현창 金顯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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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현창
한자명 金顯昶
본 관  
이 명  
출신지 충청남도 예산
생몰년월일 1912. 2. 17 ~ 1951. 2. 13
운동계열 국내항일
관련 단체  
관련 사건  
주요 활동 1930년 12월 공주 사립영명학교에서 일인 교사 배척운동, 1932년 11월 극단 만경좌(萬鏡座)의 친일 선동 연극활동에 항의 하다가 체포
포상훈격(연도) 건국포장(2010)

1912년 2월 17일 충청남도 예산군(禮山郡) 오가면(吾可面) 원천리(元泉里)에서 태어났다. 1930년대 충남 지역에서 항일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30년 12월 4일 오후 2시 공주군(公州郡) 소재 사립영명학교(私立永明學校) 4학년생으로 재학 중에 황재의(黃在義)·김기영(金基英)·최경욱(崔景昱) 등과 함께 친일 교육을 일삼는 일본인 교사들을 배척하기 위해 동맹휴교를 전개하다가 퇴학당하였다.

 

1932년 11월 26일 경성에서 운영되고 있던 극단 만경좌(萬景座)가 예산면 (禮山面) 예산리(禮山里)에 내려와서 「동방(東方)이 밝아온다」라는 제목으로 연극을 하였다. 연극 내용은 만주(滿洲) 한인들이 중국 마적단에게 심하게 박해를 당하고, 일본 제국군대가 마적단을 물리치고 한인들을 구원,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관람한 후인 11월 27일 강봉주(姜鳳柱)·김만복(金萬福)·이광섭(李光燮)·윤수덕(尹壽德)·이동순(李東順) 등과 함께 이강오(李康午)의 집에 모여 만경좌가 상연하고 있는 연극은 한인들의 친일 사상을 조장하고 민족 의식을 소멸시키는 내용이므로 이를 극단에 엄중 항의하기로 결의하였다.

 

11월 27일 서용하(徐龍河)·강봉주 등과 함께 극단원 이태홍(李泰洪) 등을 찾아가서 한국 민족으로서 민족 감정이 있는 한인들이 일본 군대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한국 민족의 수치라며 극단 활동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극단에서 이에 응하지 않자, 서동칠(徐東七) 등 극단원 등을 다시 이강오의 집에 데리고 와서 극단 활동을 중단할 것을 거듭 요구하다가 예산경찰서 소속 일본 경찰에게 붙잡혔다.

 

1932년 12월 16일 조사를 받기 위해 홍성지청(洪城支廳)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2월 27일 함께 활동하던 윤영순(尹瑛淳)이 체포되자 공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33년 2월 17일 공주지방법원으로부터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이후의 활동은 자료의 한계로 확인하기 어렵다. 1951년 2월 13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군훈장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참고문헌|

「판결문」, 공주지방법원, 1933. 2. 17 ; 「신분장지문원지」 ; 『동아일보』, 1930. 12. 7, 1932. 12. 5·21, 1933·1. 1·2. 14 ; 『조선일보』, 1930. 12 . 6 ; 공주영명중·고등학교, 『영명100년사』, 2007.
  • 1. 김현창 관련 동아일보 기사(1932.12.05)
  • 2. 김현창 공주지방법원 판결문(1933.02.17)
  • 3. 김현창 관련 동아일보 기사(193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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