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동 金鎭東 |
한글명 | 김진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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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金鎭東 |
본 관 | |
이 명 | |
출신지 | 경기도 개풍(開豊) |
생몰년월일 | 1919. 4. 1 ~ 1995. 12. 18 |
운동계열 | 광복군 |
관련 단체 | 한국광복군 3지대 |
관련 사건 | |
주요 활동 | 한국광복군 초모활동 |
포상훈격(연도) | 애족장(1990) |
1919년 4월 1일 경기도 개풍군(開豊郡) 영남면(嶺南面) 용흥동(龍興洞)에서 태어났다. 1944년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합류하여 항일투쟁에 나섰다.
1944년 후반기 베이징(北京)·톈진(天津)·쉬저우(徐州)·상하이(上海) 등지에서 전개된 한국광복군 제3지대의 초모활동을 통해 박상기(朴相基)·문응명(文應明)·김영일(金永逸)·김문택(金文澤)·김용관(金容寬)·조장호(趙璋鎬)·백운룡(白雲龍) 등과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였다.
광복군 입대와 동시에 한국광복군훈련반(일명 한광반) 출신인 한성수(韓聖洙)의 인솔 하에 홍순명(洪淳明)·김영진(金永鎭) 등과 상하이로 침투해, 거점 확보 및 초모공작을 전개하여 10여 명의 한인 청년을 모집하였다.
1945년 3월 13일 새벽 반역자의 밀고로 한성수·홍순명·김영진·박윤석(朴允錫)·허암(許岩) 등이 체포되었다. 이 때 포위망을 뚫고 김국주 등과 근거지로 귀환하였다.
광복이 되자 한인 동포들의 보호를 목적으로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서는 이복원(李復源) 부지대장을 중심으로 난징(南京)·카이펑(開封)·칭다오(靑島) 등 주요지역에 특파단을 편성하였다. 이 때 쉬저우지구 특파단에 배속되어, 한인 동포 보호와 질서 유지 활동에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