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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헌술 金憲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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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헌술
한자명 金憲述
본 관  
이 명  
출신지 경상북도 영일(迎日)
생몰년월일 1924. 10. 5 ~ 1988. 3. 6
운동계열 일본방면
관련 단체 동아연맹
관련 사건 교토중학사건(京都中學事件)
주요 활동 1940~1942년 일본 교토중학 재학 중 독립을 위한 준비와 함께 동지 규합과 민족의식 고양을 위해 활동했으며 1942년 10월 동아연맹에 가담함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0)

1924년 10월 5일 경상북도(慶尙北道) 영일군(迎日郡) 기계면(杞溪面)(현 포항시 북구) 용기리(龍基里)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금산헌술(金山憲述)로 고쳤다.

 

일본 교토중학교(京都中學校) 재학 중인 1941년 5월, 친구 김영규(金永圭)와 함께 일제의 민족차별에 분개하며 민족의 자유와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독립의 실현이 급선무라는데 뜻을 모았으며 항일투쟁을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같은 해 6월부터 9월까지 중학교 교실과 진여정(眞如町) 낙락장(洛樂莊)에서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독립운동의 지도자가 되기 위한 수양을 쌓되 일본과의 일전에 대비하여 군사교육을 받기로 계획을 세우고, ‘천황제’에 반대하는 김영규의 이야기에 호응하였다. 이어 1942년 2월 별당정(別堂町)에서 김영규 등과 만나 동지 규합을 결의하고, 학우 또는 동향 지기들에게 일제의 식민통치와 민족차별의 부당성을 폭로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양하기로 논의하였다.

 

이어 1942년 10월 동아연맹(東亞聯盟)에 가담하여 동 연맹의 합법성을 배경으로 반군국주의 의식 앙양과 동지 규합 활동을 하였다. 1942년 10월 7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1943년 2월 4일 기소되었다. 같은 해 6월에 교토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과 불경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후쿠오카형무소(福岡刑務所)에서 옥고를 겪었다.

 

1985년 8월 발행된 『정경문화』에 후쿠오카형무소에서의 수감생활과 복역 중에 만난 윤동주(尹東柱)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해당 잡지에서 「내가 마지막 본 윤동주(尹東柱) : 필자가 옥중(獄中)의 윤시인과 나눈 대화와 시인의 마지막 감방생활을 생생하게 증언(証言)」이라는 제목으로 회고를 남겼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방광석⋮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 3, 1978 ; 朴慶植 編, 『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 4·5, 東京:三一書房,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