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 金太權 |
한글명 | 김태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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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金太權 |
본 관 | |
이 명 | 이명 : 김진성(金鎭成), 김영(金榮), 평택학(平澤學) |
출신지 | 제주 |
생몰년월일 | 1910. 2. 3 ~ 1941. 9. 4 |
운동계열 | 일본방면 |
관련 단체 | 일본전국노동조합협의회(오사카), 일본공산당 |
관련 사건 | |
주요 활동 | 1932년 일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협) 출판 오사카(大阪)지부 가입, 1933년 6월 전협 화학 고베지구 서부지구준비회 책임자, 1934년 2월 전협 화학 고베 서부지구 재건 시도 |
포상훈격(연도) | 건국포장(2006) |
1910년 2월 3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구좌면(舊左面) 연평리(演坪里)에서 태어났다. 고등보통학교 보습과(補習科)를 졸업하였다. 이명은 김진성(金鎭成)·김영(金榮)·평택학(平澤學)이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정상중장(井上重藏)으로 고쳤다.
1929년 6월 일본으로 건너가 1932년 일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전협) 출판 오사카지부(大阪支部) 동성지구준비회(東成地區準備會) 결성에 참여하였다. 1933년 6월 고베(神戶)로 옮겨 전협 화학 고베지구(神戶地區) 서부지구준비회(西部地區準備會)에 가입하고, 7월에는 파업응원위원회의 조직을 시도하는 등 조선인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9월 니시카와(西川)의 추천으로 일본공산당에 입당하였고, 주로 전협 화학 서부지구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공산당 고베시(神戶市) 위원회 재건에 앞장서서 선전문 배포, 기념일 데모, 노동자 간담회 등을 개최하며 조직의 확대 강화에 노력하였다. 1933년 10월 25일 효고현(兵庫縣)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 노옥경찰서(蘆玉警察署)에서 취조를 받았다.
1934년 1월 23일 이른바 경찰범처벌령 위반으로 구류 10일에 처해졌던 가쿠다 요시노리(角田義憲)과 같은 방에 유치되어 있었는데, 가쿠다가 석방되자 그를 통해 전협 화학 고베 서부지구의 동지들에게 연락을 취하여 재건운동을 계속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가쿠다가 2월 4일 효고현 산노미야경찰서(三宮警察署)에 다시 검거되면서, 동지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연락문이 발각되었고 재건 활동을 하던 동지들도 붙잡혔다. 1934년 10월 15일 오사카공소원(大阪控訴院)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