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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권갑봉 權甲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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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권갑봉
한자명 權甲奉
본 관  
이 명 창씨명 : 안원수춘(安原秀春), 이표기 : 판갑봉(板甲奉), 권갑춘(權甲春)
출신지 경상북도 영주(榮州)
생몰년월일 1924. 12. 25 ~ 2002. 6. 7
운동계열 일본방면
관련 단체  
관련 사건  
주요 활동 1943년 일본 오사카, 누마즈 등에서 징용공들을 대상으로 조선독립을 선전 계몽
포상훈격(연도) 애족장(2014)

1924년 12월 25일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평은면(平恩面) 평은리(平恩里)에서 태어났다. 기독교(基督敎) 신자였다. 이명은 안원수춘(安原秀春)이며, 판갑봉(板甲奉) 또는 권갑춘(權甲春)으로도 표기되었다. 일본 오사카(大阪)로 건너가 간사이대학(關西大學)에서 1년을 수료하였다. 일제 말기 일본으로 징용되어 오사카시(大阪市) 이쿠노구(生野區) 다지마정(田島町)에 거주하면서 토공(土工)으로 일하였으며, 시즈오카현(靜岡縣) 누마즈시(沼津市)에 있는 비행장에서도 토공으로 일하였다.

토공으로 일하던 1943년 당시 일제가 패망하는 결정적 시기에 일제히 봉기하여 독립을 쟁취해야 함을 선전하고 동지를 규합하는 활동을 하였다. 일상생활 속에서 차별 대우를 경험하면서 민족적 반감을 품고 있던 중 1943년 여름부터 선배 정목모(正木某)로부터 계몽을 받고 같은 해 11월경부터 민족운동에 참여하였다. 동료 토공 등을 대상으로 “미국은 대공습을 단행하고 한국에 상륙하여 독립을 원조하므로 우리는 지금부터 단결을 강고히 하는 그 시기에 일제히 봉기해야 한다”라는 내용으로 계몽 선전을 하면서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하다가 1943년 12월 21일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44년 4월 20일 동료 토공 최명호(崔鳴浩)·김일수(金逸洙) 등과 함께 송치되었다. 1945년 3월 10일 와카야마구(和歌山區) 재판소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오사카부(大阪府) 사카이시(堺市)에 있는 형무소에서 옥고를 겪고, 8·15 광복 이후인 1945년 9월 8일 석방된 뒤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참고문헌|

「受刑人名簿」 ; 明石博隆·松浦總三 編, 『昭和特高彈壓史』 8, 太平出版社, 1976 ; 朴慶植 編, 『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 5, 1976 ; 권갑봉, 「명견 다쯔나미호와 나 “도사견의 황제”」, 『특수축산』 22,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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