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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민영로 閔泳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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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민영로
한자명 閔泳魯
본 관  
이 명  
출신지 충북 괴산(槐山)
생몰년월일 1919. 2. 20 ~ 1950. 5. 1
운동계열 국내항일
관련 단체 조선학생동지회
관련 사건  
주요 활동 1939~1941년 조선학생동지회 결성 및 활동
포상훈격(연도) 대통령표창(2006)

1919년 2월 20일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괴산읍 서부리(西部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2월 22일 출생했다는 기록도 있다. 창씨명은 암본영로(岩本泳魯)이다. 1939년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재학 중 조선학생동지회를 결성하여 활동하다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39년 4월 7일 연희전문학교 상과(商科) 본과(本科) 1학년에 입학하였다. 연희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9년 12월 서울 사직동(社稷洞)에 있던 도정궁(都正宮)에서 동교생(同校生) 김상흠(金相欽)·서영원(徐泳源)·윤주연(尹柱淵)·김재황(金在璜)·이동원(李東元) 등과 도쿄 유학생 대표 백재호(白在鎬) 등 4명과 함께 항일결사인 조선학생동지회(朝鮮學生同志會)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국내의 주요 도시를 비롯해 도쿄 등 해외 유학생들 사이에도 하부조직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조선학생동지회에서는 1919년 만세운동과 같은 방식의 거족적인 독립운동을 계획하여 1942년 3월 1일 정오를 기해 국내외에서 일제히 「조선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를 위해 1940년 2월부터 1941년 7월 사이에 남한산성(南漢山城), 서대문구 냉천정(冷泉町) 약수터, 연희전문학교 뒷산, 경기 고양의 벽제관(碧蹄館) 등에서 여러 차례 모임을 가지면서 항일의식을 굳건히 하였는데, 여기에 참여하여 동지 규합과 조직 확대에 힘을 쏟는 한편 거사 계획을 준비하는 활동을 함께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던 중 1941년 7월 하부조직인 원산상업학교(元山商業學校) 조직원이 연락을 위해 서울로 오다가 일제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조직이 발각되었다. 이로 인해 같은 해 9월 중순 다른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함흥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후, 같은 해 12월 17일 함흥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43년 3월 17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미결구류 400일 통산)을 받았다. 연희전문학교는 1941년 9월 16일 부로 ‘일신상의 사정으로 인해 무기휴학’한 것으로 처리하였다.

출옥 후 일제에 의해 징병되어 1944년 1월 20일 부로 현역 이등병으로 일본군에 입영하였다. 마지막 행적은 1945년 1월 11일 부 통신까지 확인되는데, 당시 미얀마에 있는 삼18702병((森)18702(兵)) 부대 모리모토대(森本隊)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후의 행적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미얀마방면군적하사단유수명부(緬甸方面軍籍下師團留守名簿)」(1948. 12. 10)에 의하면 ‘소식불명’으로 처리되어 있다. 집안에서는 조선학생동지회에서 같이 활동했던 이동원(李東元·李世民)과 함께 일본군을 탈출하여 연합군에 가담해 활동하다가 피살당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참고문헌|

「신분장지문원지」 ; 「학적부」, 연희전문학교 ; 「臨時陸軍軍人居」, 괴산면장, 1945. 3. 1 ; 「緬甸方面軍籍下師團留守名簿」, 1948. 12. 10 ; 「朝鮮學生同志會略史」, 1969(자체 작성) ; 이심원, 「증언서」,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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