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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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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옥 金址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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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지옥
한자명 金址玉
본 관  
이 명  
출신지 평안남도 안주(安州)
생몰년월일 1914. 11. 8 ~ 1972. 11. 17
운동계열 광복군
관련 단체 한국광복군
관련 사건  
주요 활동 한국광복군 제3지대 북평지구 공작대 특파원으로 활동
포상훈격(연도) 애국장(1990)

1914년 11월 8일 평안남도 안주군(安州郡) 안주면(安州面) 건인동(建仁洞)에서 출생하였다. 한국광복군 제3지대 베이징(北京)지구 공작대 특파원으로 베이징(北京)·톈진(天津) 등지에서 지하공작을 펼쳤다.

 

타이위안시(太原市)에서 한국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金學奎)을 만나 화북지구 공작책에 임명된 김광언(金光彦)은 1945년 초부터 베이징 지구에서 ‘나고야(名古屋) 사건’ 연루 인물인 목연욱(睦然旭)·김옥경(金玉卿)·김환(金煥) 등을 모집한 뒤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의 한국광복군 제3지대 본부로 인솔해 왔다. 이때 이들과 함께 김광언의 인도로 푸양의 광복군 제3지대 본부로 이동하였다.

 

당시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서는 입대 청년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한국광복군훈련반(韓國光復軍訓練班)(이하 한광반)을 설치하는 한편 자체 군사 훈련도 병행하였다. 그리하여 참모 김용민(金容旻)의 기획으로 전이호(金履鎬)·차약도(車若島) 등을 훈련교관에 임명하여 자체적으로 군사 훈련을 실시하였다. 이들은 제3지대 본부에서 정보수집과 유격활동에 필요한 훈련을 받은 다음 이전 활동지역으로 파견되어 지하공작대원으로 활동하였다.

 

베이징 지구의 경우, 지득성(智得成) 중심의 거점과 더불어 그의 자택을 포함하여 정민태(鄭民泰)가 경영하는 김광언의 거점인 덕경루반점(德慶樓飯店)·동아병원(東亞病院)·백학천(白鶴天) 자택·정기엽(鄭基燁)의 하숙집 등 20여 개소가 있었다. 이와 같은 거점을 발판으로 하는 첩보활동은 일본군 내부와 왕징웨이(汪精衛) 괴뢰정권 군대는 물론 각 사회단체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수집한 첩보는 부근의 중국군 유격대를 통해 연합군에게 제보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유격대의 기습작전과 연합군 공군의 일본군 군사시설·철도·항만·선박 등에 대한 폭격이 실시되었다.

 

특히 베이징의 ‘대륙극장 폭파사건’에 김광언·김철수(金鐵壽)·김동훈(金東薰)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5년 3월 10일 일본군의 이른바 ‘육군 기념일’ 행사의 하나로 베이징 대륙극장에서 일본군 위문공연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왕징웨이 괴뢰군의 장교로 가장한 김철수와 전기 수리공으로 가장한 김동훈 등이 극장 안에 시한폭탄을 장치하여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이었다. 베이징 일원에 초비상령이 내려졌으나, 대원들과 함께 무사히 톈진(天津)으로 피신하였다.

 

이후 1945년 8월 초 김학규 한국광복군 제3지대장이 윔스(Clarence N. Weems) 대위와 OSS작전 준비 관계로 충칭(重慶)으로 갈 때, 박노일(朴魯一)·이건국(李建國) 등과 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1945년 광복 직후 중국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들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광복군을 중심으로 군사특파단이 설치되었을 때, 베이징지구 특파단 부단장으로 한인 교민들의 생명과 재산 보호, 일본군 내 한적사병(韓籍士兵)의 인수에도 힘썼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병기⋮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6권, 1975 ; 대한독립항일투쟁총사편찬위원회 편, 『대한독립항일투쟁총사』 하, 육지사, 1989 ; 한시준, 『한국광복군연구』, 일조각,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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