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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고총권 高寵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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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고총권
한자명 高寵權
본 관 제주
이 명  
출신지 전북 익산
생몰년월일 1867. 11. 26 ~ 1959. 4. 1
운동계열 3.1운동
관련 단체  
관련 사건 여산면 3.1운동
주요 활동 1919년 3월 10일 익산군 여산면 만세시위에 참여
포상훈격(연도) 대통령표창(1992)

1867년 11월 26일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황화면(皇華面) 마전리(麻田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문을 수학하고, 향리에서 농사를 짓다가 1895년 4월 동학(東學)에 입교하였으며 후일 천도교인이 되었다.

1919년 3월 1~2일경에 전주 천도교구실을 통해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이에 3월 3일 익산 천도교구실 임원들과 함께 익산군 만세 시위를 조직하기로 하고 거사 일을 제1세 교주 최제우의 순도일인 3월 10일로 정하였다. 기독교인과의 연대를 모색하면서 이때 각 면의 연락 책임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망성면(望城面) 및 금마면(金馬面)의 연락과 동원 책임을 맡았다.

3월 3일 여산면(礪山面) 여산리(礪山里)의 노상에서 행인들에게 “지금 우리 민족대표로 천도교인, 기독교인, 불교인 33인이 합동하여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였다. 우리도 독립만세를 부르자”라고 하며, 3월 10일 만세 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어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동지인 박영진(朴永鎭)과 정대원(丁大元)이 경찰에게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피신하였다. 2개월여 도피 생활을 하다가 집에 돌아왔다가 체포 기소되었다.

1919년 7월 4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선고받았다. 이후 태형의 여독으로 2년여 동안 거동을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1946년 3월 1일 개최된 기미독립선언기념 익산군민대회에서 ‘기미 독립운동에 활약한 공적’으로 표창장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승태⋮

|참고문헌|

「판결문」,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 1919.7.4 ; 김진호·박이준·박철규, 『국내 3·1운동』 II-남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독립선언서」(보성사판)
  • 판결문(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 1919.7.4)
  • 신막 구거리 여산 3·1운동 만세시위지(전북 익산)
  • 여산 독립만세 운동 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