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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김효식 金孝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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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한글명 김효식
한자명 金孝植
본 관  
이 명  
출신지 경상북도 영주(榮州)
생몰년월일 1920. 10. 18 ~ 미상
운동계열 학생운동
관련 단체 대구사범학교 다혁당
관련 사건 대구사범학교 비밀 결사
주요 활동 1941년 대구사범학교 다혁당(茶革黨)에 참가하여 활동함
포상훈격(연도) 애족장(1990)

1920년 10월 18일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가흥리(可興里)에서 출생하였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이던 1941년 2월 15일, 동교생 권쾌복(權快福)·배학보(裵鶴甫)·문홍의(文洪義)·서진구(徐鎭九) 등 15명과 함께 당시 대구부(大邱府) 대봉정(大鳳町)(현 대구시 대봉동)의 유흥수(柳興洙) 하숙집에 모여 항일 비밀 결사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하였다.

 

다혁당은 대구사범학교 문예부와 연구회를 구성하였던 학생들이 1941년 대거 졸업하면서, 이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결성되었다. 한국인으로서 자각과 함께 각 분야에 걸쳐 실력을 양성하고, 조국의 독립을 촉진하기 위해 투쟁할 것을 목표로 하였다. 또한 새로운 회원 가입을 인정하지 않고, 결성 당시 회원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조직적 특징을 가졌다. 당수로 권쾌복, 부당수로 배학보를 선정하고 총무·학술·문예·연구·경기부 등의 부서들 두었다.

 

다혁당의 연구 책임 겸 구기부의 농구부 책임을 맡았다. 다혁당 구성원들과 함께 1941년 3월부터 5월까지 여러 차례 비밀 회합을 통해 당원의 비밀 엄수와 절대복종, 주 2회 회합과 하급생 지도 등을 당 규약으로 정하는 동시에 당시의 운동 상황에 대해 분석하고 전망하였다. 이들은 민족 차별 교육에 반대하여 대구사범학교 연습과 학생(주로 일본인)과 심상과 학생(대부분 조선인)에 대한 차별 대우를 철폐시키는 방안도 토의하였다.

 

그러나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8기생으로 충남 홍성(洪城)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정현(鄭鉉)이 갖고 있던 『반딧불』이 일제 관헌에게 발각되면서 대구사범학교 비밀 결사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대구사범학교 관련자 300여 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2년여 동안 미결수로 고초를 겪다가 1943년 11월에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광복으로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반딧불』 [판형1]

 

⋮김일수⋮

|참고문헌|

「예심종결결정」, 대전지방법원, 1943. 2. 8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자료집』 13, 1977 ; 정세현, 『항일학생민족운동사연구』, 일지사, 1975 ; 대구사범심상과동문회, 『대구사범심상지』, 1991 ; 대구사범학생독립운동동지회, 『대구사범학생독립운동』, 1993 ; 김일수, 「1920~1930년대 전반기 경북지역 학생운동의 전개와 성격변화」, 『대구사학』 제51권 제1호, 1996 ; 변은진, 「일제말 전시파쇼체제하 학생민족운동의 전개와 민족주의적 성격」, 『국사관논총』 67, 1996 ; 이기훈, 「일제하 식민지 사범교육」, 『역사문제연구』 9, 2002 ; 허종, 「일제강점기 후반 대구사범학교의 학생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27집, 2006.
  • 『반딧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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